2-4-3. 데스튀트 드 트라시




이렇게 “비판, 실증주의, 형이상학”이란 근대 에피스테메의 삼중 쌍을 아주 안정적이게, 극적이게 구성해낸 러셀에 대해서 무슨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첫째로, 러셀이 저지른 철학의 초역사성의 주장에 대한 비판이 있을 수 있으나, 이는 생략하겠다.

둘째로, 이것이 어쩌면 근대 에피스테메의 가장 큰 발현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푸코는 고전시대 에피스테메에서 재현의 개념을 가장 크게 발휘한 “데스튀트 드 트라시”와 그가 고안한 관념학이라는 것을 언급한다.

이 데스튀트라는 철학자는 당대 칸트와 대립했으며, 관념학은 재현의 영역을 전반적으로 살피고 재현에서 유지되는 구성과 해체의 법칙을 드러냈다. 이 학문은 단순한 최초 형태와 최소 내용으로의 감각이 사유를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푸코에 의하면 "재현의 분석이 최대로 확대되는" "인간에 대한 자연과학"이었으나, 고전시대 에피스테메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었고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 데스튀트 대신 자리잡은 것은 칸트였다. 칸트는 재현의 토대, 한계, 근원을 탐구한 사람 중 하나이고, 무엇보다 이 사유와 감각의 재현을 가능케 하는 관계에 대해 의문을 삼아 철학의 결실을 얻게 되었다.


러셀은 가정하건대 또다른 형태의 데스튀트 드 트라시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말과 사물 9장에서 나오다시피 근대 에피스테메에서는 몇 가지 큰 한계점이 존재하는데, 소박한 무한성을 취함으로서 선험성의 인간과학과 경험성의 사물을 다루는 과학의 충돌에 한 편을 들어주거나 이 대립 자체를 무시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러셀의 목표였던 “논리적 토대의 구성”에 대해서 수많은 한계점들이 일어났다는 것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은 어느 정도 알 것이다.

이 글은 다른 목표를 잡고 있다. 이 글은 그 한계에 대한 설명을 하려기보다, 이 러셀의 시도 자체가 그 첫걸음부터 한계가 예시되어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2-5. 비트겐슈타인 - 러셀의 반발




2-5-1. 아주 소박한 문제 - 코뿔소는 소인가?




러셀의 철학은 그의 철학이 빛을 발하기도 전에 다른 철학에 의해 보충되기 시작했다.


러셀과 그로부터 비롯된 논리실증주의자들에게는 “소박한 문제”들이 일어난다.

그런 예시로 “코뿔소는 소인가?”를 들 수 있다.

코뿔소가 소인지를 판단하기 위한 린네의 종 분류 체계는 그 린네의 체계만을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닌 생물학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그로 인한 생물 분류법의 수정이 무엇인지 또한 알고 있어야 한다.

전문적인 지식을 알고 있지 않으나, 현대 과학의 발전을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조류와 파충류에 대한 구분이 굉장히 희미하므로 “석형류”라고 분류가 되어 있다고 하고, 더 이상 린네의 분류법을 쓰고 있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구분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나, 논리실증주의자에게는 꽤 답하기 어려운 문제가 되는데, 왜냐하면 마흐 등의 철학으로 인해서 “감각 인상의 해체”라는 개념과 같이 전문가의 감지력, 언어로 표시할 수 없는 분별력을 배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논리실증주의자는 이러한 문제는 그렇게 과학적이거나 논리적인 문제가 아니며 따라서 소박하다고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소박하기에는 철학적으로 꽤 진지한 문제들 또한 일어나게 된다.

“인과성”이나, “세계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그런 예시이다.


흄이 언급한 인과성의 문제나, 세계가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물음은 그들에게도 꽤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이는 그들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손쉽게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왜 초기 비트겐슈타인이 러셀의 소박한 무한성을 버리고 유한성을 택했는지에 대해, 그것이 왜 필요했는지에 대해 꽤 자연스러운 접근을 취할 수 있다.


초기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에서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을 구분지으려고 한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무의미하다고 함으로서 수많은 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침묵을 지켜야 하는 문제에 속하는 것에 “인과성 문제”와 “세계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있다. (6.44 세계가 어떻게 있느냐가 신비스러운 것이 아니라, 세계가 있다는 것이 신비스러운 것이다. -  6.522 실로 언표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이것은 스스로 드러난다, 그것이 신비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로도 막을 수 없는 몇몇 점이 존재하게 된다.




2-5-2. 아주 큰 문제 - 프레이저




이러한 소박함으로 인해 “러셀 학파”라 불릴 수 있는 이 단체는 아주 큰 문제를 일으키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초기 비트겐슈타인을 후기 비트겐슈타인으로 만들게 한 시작점이 된다.


이 근대 에피스테메의 극단이자 변종에서 나온 책이 바로 프레이저의 “황금 가지”이다.

프레이저는 "황금 가지"에서 인류학적으로 다른 부족의 주술과 신화와 전설을 정리하고 분석하는 이 시대에서 굉장히 평범한 형태의 책을 썼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프레이저의 '황금 가지'에 관한 소견들"이라는 짤막한 글을 쓰는데, 여기서 그는 프레이저를 말그대로 "극혐"한다.


"프레이저의 '황금 가지'에 관한 소견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프레이저의 책에는 고대 시기의 불가리아에서 여성이 어린아이를 입양할 때 그 아이를 치마 속에 넣고는 그 뒤론 그들의 전 재산을 상속받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프레이저는 이 일을 주술의 일부로 보았다.

비트겐슈타인은 프레이저가 이것을 주술로 본 것은 이것을 오류의 일부라 생각했다는 것이고, 오류라 생각했다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말한다.


프레이저의 또다른 예로 아프리카의 한 부족에 있는 비의 왕을 언급한다.

그 부족이 사는 지역은 3월 말쯤에 우기가 온다고 하고, 3월 말이 될 때마다 그에게 빈다고 한다.

프레이저는 이걸 의식이라고 보고, 그들은 신앙이 비가 오게끔 한다고 믿는다고 보았다.

비트겐슈타인은 여기서 이렇게 비판한다. 그들이 왜 하필이면 우기에 빌고 있는지, 진짜 그렇게 믿는다면 건기에는 왜 안 비는 것인지.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우리는 행위와 다른 행위의 유사성만이 확인이 가능하고, 유사성 이상의 것을 확인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들이 말하는 주술과 의식의 의미는 우리가 하는 키스가 가진 의미나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비트겐슈타인에게 그 "미개인"들의 문화는 우리의 문화와 같았다. 우리들 중 그 누구도 우리가 왜 키스를 하는지 이론화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그저 문화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으로 기쁨을 얻을 정도로 완전히 "내장되어" 있다.

프레이저는 이것을 모르고 그저 이론을 가져다 일반화하고 수학화해서 설명해댔고, 따라서 프레이저는 "미개인들보다 훨씬 더 미개하다"고 말한다.


이 프레이저와 “러셀 학파”에 대한 고함과 분노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은, 비트겐슈타인이 쓴 조각글 중 가장 기괴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문화와 가치”의 한 문구, Philosophical Remarks에 달 예정이었던 “서문을 위한 스케치”에 있다.


서문을 위한 스케치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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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문명, 음악, 예술, 진보, 의식, 부패, 그리고 의식의 한 형태로서의 키스까지 언급되어 있는 이 문구는 대체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푸코의 고고학을 쓴다면 이것에 대한 꽤 좋은 답변을 얻을 수 있다. 이 조각글은 슈펭글러와 그가 가진 르네상스 에피스테메를 취하려는 하나의 흔적이다.




2-5-3 - 슈펭글러와 수학철학




말과 사물에서 슈펭글러에 대한 언급이 하나 나온다. 근대 에피스테메의 큰 난점인 기원의 문제에서 슈펭글러가 나오는데, 인간이 구성할 수 있는 과학과 실증주의의 기원의 충돌에서 “극단적인 궁핍에서 강렬한 평정”을 원하는 사람 중 하나로 슈펭글러를 든다.

이것을 보다 더 세부적으로 다루고 싶었다. 하나의 가설을 세우려고 하는데, 그것은 근대 에피스테메의 한계의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그 전의 에피스테메의 이론을 다시 따와서 제시한 사람들이 있고, 슈펭글러가 그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는 르네상스 에피스테메로 되돌아가려는 자이다. 그의 철학은 명백하게 괴테의 철학을 오마주했다 하고, 괴테의 생물철학이 가장 크게 겨냥하고 있던 인물은 바로 고전시대 탁시노미아 유리베르살리스를 주창한 린네였다는 점이 굉장히 중요해 보인다. 


슈펭글러와 비트겐슈타인의 연결은 어떻게 볼 수 있는가?

비트겐슈타인의 “일목요연한 묘사”의 개념과 “수학”의 충돌에서 볼 수 있을 듯 하다.


“일목요연한 묘사”는 명백히 슈펭글러를 오마주하기 위한 개념이다.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의 수많은 활동은 이 일목요연한 묘사를 통해 수학에 대해 접근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것은 슈펭글러의 책을 볼 때 더 설득력을 얻는다. 슈펭글러가 그의 주저 "서구의 몰락"을 쓸 때 가장 처음 한 일이 문명 간에 "수학"이라는 개념이 겉으로는 같아 보여도 다르다는 것이었고, 이것에서부터 문명 각각에서의 논리와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전개한다.


비트겐슈타인과 수학철학의 관계는 정말로 미묘하다.

비트겐슈타인이 철학을 시작한 이유는 러셀의 수학의 논리주의 때문이었고,

비트겐슈타인이 철학을 다시 시작한 때 브라우어가 수학의 직관주의를 주창했고,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가 가장 벽에 막힌 이유가 수학철학 때문이었고,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의 맨 마지막은 수학철학을 말하기 직전이다.


수학의 기초에 관한 고찰을 본다면, 그가 수학철학에서 하는 말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수학의 확실성이 정말로 그렇게 확실한가? 수학의 확실성은 왕의 대관식만큼이나 확실하거나 확실하지 않지 않는가?"

이를 슈펭글러에 대한 접근의 흔적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슈펭글러가 한 문화에 대한 접근은 설명하기가 너무 어렵다.)




2-6. "수학 원리"의 사상 비판으로서의 비트겐슈타인




"마치 우리가 의미의 미묘한 차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에, 문제가 되는 것은 정확한 뉘앙스를 지니는 낱말들을 찾아내는 게 전부인 듯이 말이다. 그것은 철학에서 우리가 다만 어떤 특별한 종류의 표현을 사용하려는 유혹을 심리적으로 정확히 묘사해야 하는 그런 곳에서만 문제가 된다. 그런 경우에 우리가 '유혹에 빠져 하는 말'은 물론 철학이 아니라, 철학의 원료이다. 따라서 예컨대 수학자가 수학적 사실의 객관성과 실재성에 관해서 일반적으로 하는 말들은 수학 철학이 아니다. 그것은 철학이 다루어야 할 어떤 것이다." (탐구 254)



비트겐슈타인의 수학철학은 수많은 비판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은 비트겐슈타인의 이 유고에 대해서 수리논리학을 원시적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평가를 주었다.

그러나 이 수많은 철학자와 수학자의 비판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말을 한 사람은 베르나이스인 것 같다. 비트겐슈타인은 수학을 어린 아이들의 놀이 정도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비트겐슈타인의 수학철학을 꽤 잘 요약하는 말인 것 같다.


비트겐슈타인이 하려고 한 일을 이렇게 말해도 될 것 같다. 비트겐슈타인은 “수학 원리”의 사상에 맞서서, 즉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기호학에 맞서서, 가장 기초적인 부분에서부터 해석학을 논하려 한 사람이라고.


그 당시의 분석철학자들은 수학과 논리가 가지는 엄밀성을 보고 그곳에서부터 철학에 체계화와 도식화를 하고 있었다. 막스 블랙의 구별불가능성 논지나, 진리 이론을 진리 대응이론 - 진리 정합이론 - 진리 실용이론 - 진리 잉여이론 등으로 구분하는 것과 같이, 현대 분석철학의 기반이 되는 형식화와 체계화가 그가 수학철학을 쓸 당시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는 또한 이 체계화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무어의 “윤리학 원리”의 good의 구분이 마주친 난점처럼 전부 난점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접근하려 했던 것이다. 이 형식화와 체계화의 근원이 되는 수학의 가장 근원적인 측면을 찾아보고, 바로 이 근원적인 측면에서 수학과 산수는 형식성도 체계성도 도식성도 가지지지 않음을 아주 원시적인 형태에서 보이려 했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분석철학의 논의들은 헤르츠의 말을 빌려 “헛돌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수학철학을 접근하는 방식은 완전히 역전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비트겐슈타인의 수학철학이 어디에서 가장 논쟁이 심한지를 생각해보자.

수학의 기초에 관한 강의에서 보이듯이 그의 수학철학의 대부분은 가장 원시적인 산수와 “무어의 얼굴” 같은 그림이나 기호에 집중하고 있다. 그에 반해 현대 수학철학자가 이 수학철학책을 볼 때 주목하는 부분은 불가능성 증명의 문제, 소수점 아래 숫자의 조망가능성,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같은 고차적인 곳에서다.


비트겐슈타인의 수학철학은 수학철학이 목표가 아니라 해석학이 목표일 것이다. 철학적 탐구에서 일목요연한 묘사 개념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은 “읽기” 파트라는 점이나, 이 “읽기” 파트 뒤에 얼마 안 있어 수학철학을 다룰 흔적이던 189가 나오는 것이 이를 지지해준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에 대한 퍼트남의 해석은 많이 소박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퍼트남의 해석은 나의 의견을 지지해준다고 생각한다.)




3 -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다른 접근




3-1. 클로소프스키적 재해석




이제 이러한 관점을 통해, 여기서부터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재해석을 하려고 한다.


이 재해석은 비트겐슈타인의 유명한 책인 “논리철학논고”와 “철학적 탐구”를 중심으로 연구하기보다 그의 “문화와 가치”, “수학의 기초에 관한 고찰”과 같은 유고집을 주로 사용하며, 그의 수학에 대한 광기와도 같은 집착을 가장 중점으로 두고, 문화에 대한 이상한 관심을 주목하며 분석을 시도하고자 한다.

이 재해석에는 좋게 말하면 대담한, 나쁘게 말하면 과잉된 가설들을 많이 제시할 것이다.

그리고 이 재해석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하나의 정당하고 완결된 해석이라기보다 이런 새로운 관점이 있을 때 어떤 사유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알리는 데에 맞춰져 있다.

피에르 클로소프스키의 “니체의 악순환”이 이런 재해석의 모델이 되었다.



나는 이 클로소프스키적 재해석에서 아주 강한 주장을 펼치고 싶다. 그것은 바로, 비트겐슈타인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는 수학철학이었고, 비트겐슈타인이 평생 천착한 문제가 바로 수학철학의 문제였으며, 그 수학철학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사실 “확실성에 관하여”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규칙 따르기”와 "확실성"이라는 논제 자체가 애초에 중기 비트겐슈타인의 규약주의적이고 구성주의적인 수학철학을 포기하면서 나온 부수적인 논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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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글로 많은 것을 잃었다.

원래 이 글은 이제는 취소한 하나의 주요 글 대신 보조 글의 용도로 쓰려고 한 글이다.

그 주요 글은 2022년 5월에 계획해서, 같은 달 26일에 끝낼 수 있는 글이라 생각했다.

9-10개월간 도저히 진전이 가지 않은 채 도중에 포기를 한 셈이다.

이 보조 글을 쓰는 것도 이제는 더 진행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나 자신이 힘들었던 것도 있고, 의지력과 노력이라고 할 것을 거의 하지 않은 것도 있다.

건강 문제도 있다. 피 검사 결과 간뿐만이 아니라 신장에도 문제가 있다고 한다.

이 이후에 용두사미로 최대한 글을 완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스케치 정도라면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이것조차 나의 안일한 오판일 지도 모른다.

마음이 복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