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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Foster Wallace의 "Infinite Jest" (무한 농담이라고 직역함)는 미국 사회에 대한 어두운 풍자, 중독에 대한 통렬한 비판, 오락과 인간의 욕망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동시에 보여준다. 문학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얽히고 섥힌 내용이 많아 독자의 확실한 몰입과 집중을 요구하는 책이다. (심지어 중간에는 2쪽동안 한번도 끊기지 않는 문장도 있었다...) 분량이 많다 보니 하루에 2시간, 일주일에 대략 4번씩 읽어서 1달동안 조금씩 나눠서 읽었다.



전체적인 내용


이 소설은 엔터테인먼트가 사회의 지배력이 된 가까운 미래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세계는 두 개의 주요 파벌로 나뉘어져 있다: <에넷의 약물 회복 하우스> 와 <엔필드 테니스 아카데미> 로 말이다. 이 소설은 현대 미국의 낯설고 종종 초현실적인 풍경을 탐색하면서 중독자들과 테니스 천재들, 기업 경영진과 정부 요원들에 이르기까지 크고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삶을 따라간다.


소설의 중심에는 소설속 세계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이라면 매우 재미있고 중독성이 강한, 얼마나 중독적이냐면 보는 누구든지 정신적, 정서적으로 완전히 붕괴시킬 정도로 재미있는 영화인 '무한 농담'(책의 제목과 같다) 이 있다. 이 영화는 수수께끼의 영화감독 제임스 인칸덴자의 창작물인데, 그는 자신의 창작물의 영향력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한다. 이 소설은 영화의 복사본을 얻기 위한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시도와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한다.


이 책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산문체로, 무성하고, 서정적이며, 조밀하게 무언가를 참조하는 듯한 느낌을 일으켰다. 책의 작가는 확실히 언어적 재능을 가졌고, 이 소설은 말장난, 익살, 그리고 문화적 암시의 전시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이러한 스타일은 때때로 읽는 사람을 너무 압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소설의 풍부한 참고 자료와 암시를 따라잡기 위해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고군분투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확실했던 것은 작가는 쉬운 대답이나 진부한 전개를 이어나가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독, 오락, 그리고 욕망은 모두 인상적이고 도전적인 깊이와 뉘앙스로 묘사된다. 특히 이 소설의 중독에 관련된 묘사는 중독자를 이해할 수 있고, 중독을 궁금해하고, 한심해 보였던 그들을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하지만 약물과 알코올 남용의 신체적, 심리적 피해에 대한 묘사는 작가가 그것들을 부정적인 것으로 묘사한다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줬다.


소설속 세상은 오락과 사회의 관계, 그리고 산만함과 즐거움에 대한 우리의 열망이 완전히 우리의 삶과 세계를 형성해버린 세계였다. 그 세계는 오락의 힘에 대해 깊은 회의를 일으켰으며, 소설은 사람들이 오락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아무런 방법으로도 서로에게 연결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암울한 묘사로 가득채우며 마무리를 향해 달려갔다.



소설에 나온 미친 묘사들 (번역)


원래 기막힌 묘사에 정신 못차리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정말 끝없이 몰려오는 손떨리는 묘사들은 책을 읽다가 얼마 가지도 못하고 계속 북마크를 찾게 만들었다. 벌써 몇 일도 전의 일로, 한번 기가 막힌 문장을 읽고 북마크를 누르고 스크랩을 하려는데, 갑작스레 불편하게 떨리는 손이 신경쓰여서 가슴에 손을 놓으니까 심장이 마구 뛰고 있었던 적이 있다. 문학에 입문하기로 결심했던 이유구나, 하고 감상에 젖다가 다시 책을 읽어나갔다.



-특별함과 평범함-


" 우리 모두는 완전한 특이성에 대한 조그마한 유아론적 망상, 무시무시한 직관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모두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얼음틀을 채우고, 깨끗한 식기 세척기를 다시 돌리고 , 샤워기에서 가끔 소변을 보고, 첫 데이트에서 눈꺼풀이 떨리는 사람이다.


오직 우리만이 평범함을 끔찍하도록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간청을 예의로 치부하고,


우리만이 개의 하품에서 조그마한 감정의 흔적을,


밀폐된 항아리의 입구가 열릴 때 시간을 초월한 한숨을,


달걀 프라이의 흩뿌려진 웃음을,


진공청소기에서 들리는 D 마이너 음정의 비명을,


저녁에 어머니가 뒷걸음질로 방을 나설 때의 유치원생의 공포를,


우리만이 "우리만이"를 사랑한다고,

우리만이 "우리만이"를 필요로 하다고.


잠언주의는 우리를 하나로 묶는다, J.D 는 알껄? 우리가 사람들 속에서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을.


사람들이 모두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그저 스쳐가지는 마. 언제나 군중속 얼굴들이야. 우리는."




-마약의 중독성의 묘사- (케이트가 중독된 사람임. 작가가 마약에 중독되었던 적이 있는만큼 자기 이야기를 쓴게 아닌가 싶을 정도임...)


"... 만약 진짜 고통을 포식자 백상아리라고 친다면, 저 동태눈깔과 지독한 무감각증은 복부 측면에 붙어있는 빨판상어에 불과하다. 당국에서는 이 상태를 임상적 우울증, 갱년기 우울증 또는 단극성 불쾌감이라 불렀지만, 케이트가 몰래 피던 마리화나가 부재할 때 느끼는 포식자급 우울증은 감정에 대한 무능, 영혼의 죽음이 아니라 그 자체가 감정이다. 그것은 고뇌, 절망, 고통, 또는 벌튼의 우울증이나 예브투스첸코의 권위있는 정신병적 우울증과 같은 많은 이름으로 통하지만, 케이트는 "그것"들과 함께 참호에 빠져서 그것을 단순히 그것을 '그것' 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인간의 삶과 절대 양립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의 수준을 가진다. 그것은 단지 특징으로서만이 아니라 의식적 존재의 본질로서 급진적이고 철저한 악의 감각이다. 그것은 자신의 가장 원시적인 수준에서 자신에게 만연하는 중독감이다. '그것'은 세포와 영혼의 메스꺼움이다. '그것'은 세상이 완전히 풍요롭고 활기차지도 않으고, 어찌하다 여기까지 왔는지 알 수 있는 지도와 정반대의 특성을 가졌으며, 또한 완전히 고통스럽고 악의적이며 자기 자신에 적대적인 무감각한 직관이다. '그것'은 자신을 우울하게 하는 자신에게 불어나고 응고되고 감싸진다. '그것'은 부풀어 오르고 응고되고 검은 주름으로 감싸며 자신 속으로 흡수되어 결국 자신의 모든 구성 요소와 세계에 거의 신비적인 통일을 한다. 곰퍼트가 묘사하던 그 감정은 아마 인간 기관과 관련된 어떤/모든 대안들, 즉 앉거나 서 있거나, 행동하거나, 쉬거나, 말을 하거나, 침묵을 지키거나, 살아 있거나, 죽거나 하는 것이 단지 불쾌할 뿐만 아니라 문자 그대로 끔찍하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전달될 수 없는 수준으로 외롭다. 케이트가 다른 사람에게 임상적 우울증이 어떤 느낌인지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심지어 임상적 우울증을 앓고 있는 다른 사람에게도. 왜냐하면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은 다른 어떤 생명체와도 공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무감각한 식별 불능 또한 그것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만약 신체적 고통에 빠진 사람이 그 고통을 제외한 어떤 것에도 신경 쓰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임상적으로 우울한 사람은 자신의 세포를 세포로 소화시키는 보편적인 고통과 별개로 다른 사람이나 사물을 인식조차 할 수 없다. 모든 것이 문제의 일부이며 해결책은 없다. 한 사람에게는 지옥이다.


권위적인 용어인 '정신병적 우울증'은 케이트를 특히 외로움을 느끼게 한다. 특히 모든 것을 정신병으로 정리하는 단어.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보자. 두 사람이 아파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그들 중 한 명은 전류에 의해 고문을 당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그렇지 않다. 전류로 고문을 받고 있는 비명을 지르는 사람은 정신병자가 아니다. 그 비명은 상황에 따라 적절합니다. 그러나 고문을 당하지 않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은 정신병자이다.


하지만 진단을 내리는 외부 당사자는 전극이나 측정 가능한 전류를 볼 수 없다. 정신병적 우울증 환자들로 가득 찬 병동에서 정신병적 우울증을 앓는 것에 대해 가장 유쾌하지 않은 것 중 하나는, 그들 중 누구도 실제로 정신병적이지 않다는 사실과 그들의 비명이 특정 상황에 전적으로 적합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의 비명은 특정 상황에 전적으로 적합하다. 중독자들이니 말이다. '그것'의 특별한 매력 중 하나는 바로 외부 사람에게 감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외로움은 곧 폐쇄 회로이다. 전류는 내부로부터 인가되고 수신되는 것이다."





마무리


소설을 읽으면서 정신력과 시간이 많이 갈렸음에도 불구하고, 완독한 후에 개지렸다... 라고 밖에 못하는 작품이였다.


그것의 중독, 오락, 인간의 욕망에 대한 묘사는 냉정하고자 했지만 결국에는 인간적이였고, 산문체는 진실을 밝히고 모호하게 하는 언어의 힘을 나에게 알려주고 결국에는 동경하게 했으며, 읽은 후에 느껴지는 큰 후유증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모국어인 한국어로 번역된다면 무조건 다시 읽어볼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