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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집 아들이 가난한 집에 맨몸으로 와서 이거저거 겪다가 돌아간다
라는 스토리를 보고는 '아 저새끼들 가난 체험하러 오네 ㅡㅡ 이제 하다하다 가난까지 도둑질하러 오냐 씹새끼들아'
약간 이런 느낌을 주는 소설인데
제 생각에는 아무리 저러더라도
부자나 상류층이 가난을 피부까지 체험해본거랑 안해본거랑은 정말 차이가 날거 라고 생각하거든요.
이후에 사회 지도층이 되어서 정책을 하든 뭔가 가난한 동네에 뭔가를 저지르려고 할 때 말이에요.
그럼 작가분이 생각하는 부자들의 가난한 사람에 대한 태도는 뭐가 되야하는건가요?
가만히 있다가 혁명의 죽창맞을 준비 곱게 하고 있으면 되는건가?
물론 남의 힘든걸 온전히 알 수 없다, 그렇게 체험했어도 돌아갈 부자집이 있으니까 맘놓고 그럴수 있는거다
라는거도 공감하고, 그러기 위해서 더 이해를 하려고 노력해야한다고는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소설 읽고 그 이해하려는 태도가 내 교만이고, 저들은 그걸 원하지 않고 모욕적으로 느낀다라고 받아들이니
도저히 어떻게 대해야할지 모르겠어서요.
좋은 글이네요
독서 제대로 하네.
도저히 어떻게 할지 모르겠는 채로 계속 살면 됨.
개추
지금보다 어리고 쉽게 상처받던 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충고를 한마디 해 주셨는데, 나는 아직도 그 충고를 마음속 깊이 되새기고 있다.
“누구든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이 점을 명심하여라.”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적어도 존중을 가져야죠 그들의 힘듦을 그저 놀이나 체험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그들의 힘듦에 공감하고 그 정도를 뼈 속까지 느껴보고자 해야하지 않을까요 잘 기억은 안나지만 주인공 데리고 살며 결혼할 거처럼 굴다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나중에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었나요
주인공은 가난이 마지막 남은 자부며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발붙이며 버티며 살아가는 게 마지막 긍지였습니다 자살을 생각했다면 진작에 했겠지만 지금 현실로서 존재하는 삶의 조건 속에서도 살아내려고 아등바등하죠 정신승리라 욕할 수도 있으나 그녀에겐 마지막남은 무엇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있어서 가난은 현실이고, 치열하게 싸워야하는 대상인데 반해, 부자들은 이런 가난을 일종의 자신의 "유희"로 생각한다는 게 꼴받는 거임. 상록수에서도 이 비슷한 장면이 나오는데, 농촌의 현실은 좆도 모르면서 스테이크 썰면서 농촌의 현실에 공감하는 척 하는 것에 주인공이 역겨움을 느끼는데 그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됨.
부자들이 그럼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나? 이거에 대해선 좋은 답변이 있음. 바로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에서 나옴. 당신들의 천국에서, 소록도의 나병 환자들은 그를 도와주려 하는 원장을 늘 경계하고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음. 그러나 원장이 그들을 향해 진심으로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과 열정을 경험하고 난 뒤, 나병 환자들은 그제서야 진심으로 원장을 따라줬음. 마찬가지로 진정 가난한 자를 돕고 싶다면, 그런 위선적이고 겉치례에 불과한 것들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달라는 거임. 애초에 그럴 자신이 없으면 이해하는 척 위선이라도 떨지 말라는 거고
작가의 메시지에 무조건 동의할 필요 없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참 좋네요. 그래서 다들 좋다고 말하시는 거에요. 독서도 결국 자기수양, 자신만의 관점을 기르는 것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사물을 접근하고 생각하시면 어제보다 발달한 오늘의 나를 발견하실 거에요!
사물을 무비판적으로, 쓰여진 대로만 받아들여지지 말고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는 자세를 유지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