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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무주공 비화>와 <빛과 바람과 꿈>을 읽고 써본 오토픽션에 대한 잡문 (제목 길다고 잘리는 건 처음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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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주공 비화』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중편 소설로, 제목 그대로 “무주공”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祕話)이다. 무주공은 일본 전국시대의 인물로 영주의 아들로 태어나 야욕을 갖고 세상을 살아간다.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가장 혼란스러웠던 것은 무주공이 실재했었냐는 것이다.

  무주공이 실존 인물이냐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무주공 비화』는 무주공에 대한 2차 저작으로 볼 수 있는데, 무주공을 다룬 역사서들을 계속해서 참조, 인용해가며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무주공 비화』라는 이 책과 그 안에서 다뤄지는 역사서들을 지나 비로소 독자는 무주공 가와치노스케를 알게 된다. 이런 겹겹의 장치는 무주공의 위치를 현실과 역사서, 『무주공 비화』 사이 어딘가로 옮겨 놓고 독자는 그 층위에서 혼란을 느끼다 결국 무신경해진다. 무주공은 무주공으로 존재하며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한다.

  덧붙이자면 작중 언급되는 책은 모두 가공의 책이며(아마 그럴 것인데 이런 진위의 불분명함이 독자의 혼란을 더 강화한다.) 무주공 역시 준이치로가 만들어낸 인물이다.

  이는 현대의 매체가 만들어내는 왜곡 – 손택이 말한 - 과 유사하다. 사실 책도 매체의 하나이니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중매체의 현실 왜곡이 만들어내는 문제가 이 작품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 준이치로가 왜곡한 것은 현실이 아니라 비현실이기 때문이다. 허구 속 허구의 참조는 참조한 대상의 진실여부와는 무관하게 신빙성을 높인다. 가상 세계에서야 비로소 참조, 인용은 부작용 없이 작동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현실과 떨어진 허구이기에 쉽게 받아들여도 문제가 되지 않고(현실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따라서 의심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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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무주공 비화』를 읽기 직전에 읽었던 책은 나카지마 아쓰시의 『빛과 바람과 꿈』으로 이 글의 논점에서 봤을 때 정반대에 있다고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빛과 바람과 꿈』은 보물섬,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작가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말년을 다룬 책으로, 스티븐슨의 일기와 화자의 서술이 교차되며 진행된다. 여기서 스티븐슨은 실존 인물이지만 스티븐슨의 일기는 아쓰시의 창작물이다. 묘사되고 있는 스티븐슨의 삶 역시 실재하지만 동시에 아쓰시의 창작물이기도 하다. 실제로 스티븐슨은 요양을 위해 사모아에서 시간을 보냈고 원주민들에 대한 작품을 썼으며 사후 사모아에 묻혔다. 아쓰시의 서술도 이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데 여기서 문제는 이 ‘크게 벗어나지 않음’이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오토픽션(이 소설은 오토픽션은 아니지만)에 대한 일반적 비판인 현실과의 유사성보다, 현실과 소설의 차이에 집중하는 것이 이 글의 논지에 맞을 것이다. 둘 사이에 차이가 있든 없든 독자는 소설이란 한계로 인해 그 차이를 계속해서 의심할 수밖에 없다. 소설이 현실로 다가오려고 할 때 (실은 현실을 소설로 가져온 것이지만) 생기는 이런 의심은 필연적으로 몰입을 방해한다.

  그렇다면 오토픽션은 쓰레기인걸까?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고 그냥이라고 말할 순 없으니 새로운 독법이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전통적 소설을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로 읽었다면 오토픽션은 작가의 이야기로 읽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한 사건에 대해 존재할 수 있는 수많은 생각 중 한 생각. 이렇게 말하고 보니 소설이 갖는 시대성, 개개인을 뛰어넘는 초월성을 무시하는 것처럼도 들리는데 그게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개인주의가 현실을 대표하는 말 중 하나가 된 지금, 문학의 보편성 상실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문학이 정말 보편성을 잃었냐고 한다면 아니라 말하겠지만 그건 나중에…)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1886년생, 『무주공 비화』는 1932년에 발표되었다. 나카지마 아쓰시는 1907년생, 『빛과 바람과 꿈』은 1942년에 발표되었다. 10년의 차이를 두고 발표된 두 소설의 미묘한 차이에 흥미를 느껴 뭔가를 써보자고 했는데 결과물은 늘 그렇듯이 예상 밖의 것이 나왔다. 뭐가 됐든 즐겁게 읽혔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