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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많이 읽어보려 하지만 지난 달과 같이 이번 달 실적이 썩 좋지 않다. 다음 달 독서량에 진척이 있기를 기약하며 읽어봤던 책들을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다.


1. 행복한 왕자와 다른 이야기들 (The Happy Prince and Other Stories)


"귀여운 제비야, ... 너가 해준 이야기는 실로 경이로워, 하지만 고통받는 사람들 만큼이나 이 세상에서 경이로운것은 없을 거야. 비참함 보다 더 커다란 신비로움은 존재하지 않거든. (Dear little Swallow, ... you tell me of marvellous things, but more marvellous than anything is the suffering of men and of women. There is no Mystery so great as Misery.)"


행복한 왕자와 다른 이야기들에 수록된 동화 행복한 왕자 中


지난 번에 읽었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아름다운 문체와 대사에 푹 빠져서 같은 작가가 썼던 동화집인 행복한 왕자와 다른 이야기들을 영어 원서로 읽어봤다. 오스카 와일드가 작가로서 가장 명성을 날린 분야는 희곡이긴하지만, 커리어 초창기에는 잡지에 동화도 여럿 기고했었는데 그걸 모아놓은 거라고 보면 된다. 엄밀히 얘기하면이 책은 1888년 짤막한 동화 다섯 편을 모아놓은 '행복한 왕자와 다른 이야기들' 과 조금 더 분량이 길고 조금 더진지하고 어두운 소재를 다룬 동화 네 편을 모아놓은 '석류나무 집' 의 합본판이다.


수록된 동화들에 대해 간단히 얘기해보면 평생 근심걱정없고 풍족하게 살다가 죽어 큰 동상이 되어서야 가난한 이들을 목도하고 자기희생적인 선행을 베푸는 왕자와 이런 왕자와 사랑에 빠진 제비를 다룬 동화  '행복한 왕자', 사랑이 가진 격정적인 면모와 동시에 부질없음도 조명하는 동화 '나이팅게일과 장미', 남에게 나눌 줄 알아야 따뜻함도 누릴 수 있다는 이야기가 담긴 가슴애틋한 동화 '이기적인 거인', 소위 호구 같다고 하는 일방적인 대인관계를대차게 조롱하는 씁쓸한 동화 '헌신적인 친구', 평소 근거없는 자신감을 가지면서 교만한 품성을 지닌 이들을 비웃는 것 같은 블랙 코미디 동화 '특출난 로켓 불꽃',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왕을 다룬 동화 '어린 왕', 어쩌면 가장 비극적일 수도 있는 착각물 동화 '왕녀의 생일', 사랑과 도덕적 딜레마라는 소재를 기묘하게 섞어낸 동화 '어부와 그의 영혼', 다소 충격적인 방식으로 동화의 클리셰를 깨주는 동심파괴 동화 '별아이' 가 있는데 모두가 각자만의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은 19세기 말렵 빅토리아 시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동화인만큼 이야기의 전개 자체는 간단한 편이고 당시 유럽에서는 단순 종교를 넘어 삶의 일부였던 기독교에서 따온 요소들이 제법 있는 편이다. 여기까지 보면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는 게 목표인 전형적인 동화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 작품에도 오스카 와일드의 특유의 블랙 코미디와 냉소주의가 잘 녹아들어 있다. 오히려 동화라는 장르 덕에 어느 정도 절제된 톤에다 은유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보니 제법 정돈되고 깔끔하다는 인상을 받을 정도다. 또한 아름다움에 환장하는 와일드식 유미주의도 여실히 드러내며 감각적이면서도 생동감 넘치게 배경을 묘사힌다.


마치 다크 초콜릿을 음미하는 것 같이 달콤쌉싸릅한 맛이 나는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집은 아이들 뿐만 아니라 성인들이 읽어도 큰 여운이 남는 만큼, 오스카 와일드에 대해 알고 싶은 분들이라면 본 작품을 입문작으로 적극 추천한다. 혹시라도 관심이 생겼다면 한국에 번역된 동화집으로 펭귄 클래식 코리아에서 출판한 '별에서 온 아이' 랑열린책들에서 출판한 '오스카 와일드, 아홉 가지 이야기' 가 있으니 원하는 판본을 골라서 읽어보시라.


2. 어린양의 만찬 (The Lamb's Supper)


"'현존' 을 그리스어로는 '파루시아 (parousia)' 라 하는데, 이말은 묵시록을 해석하는 중요한 열쇠 중의 하나이다. 근세에 들어오면서 묵시록 해석자들은 파루시아의 의미를 종말에 있을 예수님의 재림에 국한시켜 사용해 왔다. ... 그러나 파루시아의 본래 의미는 재림이 아니다. 파루시아의 본래 의미는 실제적이고 인격적이며 살아 있고영원하며 활동적인 존재, 즉 현존을 가리킨다."


어린양의 만찬 中


원래 칼뱅파 (장로교) 목사였다가 1985년 탐구심에 가톨릭 미사를 보러왔다가 여기에 빠져들면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신학자 스콧 한 (Scott Hahn) 이 집필한 종교 서적이다. 이걸 보게된 계기가 따로 있는데, 동네 성당에서 사순시기를 맞아서 이 책을 나눠 주고서는 이걸 읽고 독후감을 잘 써오는 사람에게는 상금을 주겠다고 해서 읽어봤다. 상금이 탐난다는 세속적인 이유에서라도 읽어 보기는 했지만 어찌보면 성당에서 이런 수고를 감수해서라도 이책을 읽히겠다는 집념(?) 을 봐서라도 읽어봤다.


상술했듯이 저자는 가톨릭으로 개종하기 전에는 칼뱅파에 몸을 담던 신학자였고 주로 연구하던 것은 성경을 마지막으로 장식하는 책이자 예수의 재림을 예언하는 내용이 담긴 '요한의 묵시록' (이하 묵시록. 개신교에서는 요한계시록이라고 부른다.) 과 초기 교회사였다. 연구를 지속하면서 발을 담그게 된게 바로 전례 (간단히 말해 형식을 갖춘 예배라고 보면 된다.)  라는 영역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연구하는 당사자는 우상 숭배의 여지를 막기 위해 그 어떤 개신교 교단보다도 성상 (聖像) 과 형식을 배격하던 칼뱅파의 목회자였다. 그래서 자신이 몸담던 교회에서는 볼수 없었던 전례를 직접 보고자 근처 성당에서 미사를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별 감흥없이 보다가 지속적으로 참례하면서 법열과 같은 황홀함을 느꼈는지 미사를 통해서 이제까지 연구하던 묵시록의 힌트를 얻었다고 하며 기존에칼뱅파에서 가지고 있던 입지를 모두 내려놓고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이런 일화에서 부응하듯 이 책의 주 내용은 전례 (즉, 미사) 가 어떻게 생겨나고 발전했는지, 또 묵시록은 어떻게해석하는게 마땅한지, 그리고 전례와 묵시록이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이뤄졌다. 책을 쓰게 된 계기 자체는 개인적이라면 개인적이겠지만 작가가 본디 신학자인만큼 수많은 교회사 문헌과 가톨릭교리서, 신학서적들을 참고하면서 쓴 만큼 책의 내용은 교리 해설서에 가깝다. 이 책을 찬찬히 뜯어보면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가톨릭의 시선으로 묵시록을 해석해 놓은 점이다. 시중에 나와있는 묵시록 관련 책을 보면 묵시록에 나왔던 재앙과 참상들이 머지않아 전부 펼쳐질 것이라는 가정하에 쓰여진 해설서부터 음모론스러운 책들이 적지 않은데, 이 책에서 내놓는 해석은 계시에서 나오는 상징들을 천천히 뜯어보며 과거에 이뤄진 일들도 있다는 점을 짚어주고 더 나아가서 묵시록에 나오는 상징들과 속성은 가톨릭교도라면 적어도 매주마다 보는 미사에도 해당되는 점들이 있다며 묵시록의 명확한 인지를 위해 미사 참례를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미사가 가진 중요성을 설파하기도 해서 호교론적인 성격을 지기고 있는 서적이기도하다. 그래서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독서를 적극적으로 추천한다만 타 종교인이나 무종교인들에게 선뜻 일독을 권하기에는 약간 망설여진다. 그래도 묵시록의 내용이 여러 대중매체나 예술작품에도 오마주되는 게 많다 보니, 호기심에서라도 가톨릭의 시선에서 본 묵시록을 알고 싶다면 내용이 어렵진 않은 편이라 읽어봐도 나쁘진 않다.


3. 폭풍의 언덕 (Wuthering Heights)


" 워더링 하이츠는 히스클리프 씨가 살고 있는 집의 이름이다. ‘워더링’ 은 의미심장하게 쓰이는 지역 사투리로 폭풍이 몰아치는 날씨에 노출되어 대기 상으로 소란스러운 상태에 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Wuthering Heights is the name of Mr Heathcliff's dwelling, 'Wuthering' being a significant provincial adjective, deive of the atmospheric tumult to which its station is exposed in stormy weather.)"


폭풍의 언덕 中


짖궂은 날씨와 황량한 광야를 자랑하는 잉글랜드 동북부 요크셔 지방 태생의 여류 문학가인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ë) 가 집필한 유일한 소설인 폭풍의 언덕도 원서로 읽어봤다. 겨우 영어 책 세 권 정도 읽고 이만하면 충분히 읽을 수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겁도 없이 덤볐다가 한층 더 생소한 19세기 어휘랑 문장 표현에다가 구수한 요크셔 사투리까지 튀어나와서 읽으면서 꽤 애를 먹었던 작품이다.


워낙 잘 알려진 작품이긴 하지만 간단히 줄거리를 설명하자면 1801년 인간관계에 염증을 느끼고 런던에서 요크셔로 이주하여 저택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저’ 에 세를 들은 록우드 씨가 인사 차 임차인이자 또다른 저택인 ‘워더링하이츠’ 의 집주인 히스클리프를 방문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근데 집주인이 자신을 썩 반기지 않은데다 성품도 무례하기 짝이 없었고, 집주인과 동거하는 식구들과 하인도 자기에게 쌀쌀맞게 굴었고, 설상가상으로 악천후까지 겹쳐 어쩔 수 없이 워더링 하이츠에서 하루 묵고 가던 중 귀신까지 보는 황당한 일을 겪게 된다. 온갖 이상한 일을 겪었던 록우드 씨는 간신히 임대한 집으로 돌아온 후 열병에 걸려 방에서 골골댄다. 그는 와병하면서 지루함도달래고 석연찮아 보이는 히스클리프에 대한 호기심도 해소할 겸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저에서 십여년 간 일해왔던하녀 넬리 딘에게 부탁해서 폭풍과 같았던 히스클리프와 두 저택의 원래 주인었던 언쇼 가와 린튼 가의 과거사를전해 듣게 된다.


이 작품에 대한 인상은 처절한 로맨스 내지는 막장 치정극 정도로 각인이 되어 있는데, 소설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단순한 로맨스나 막장 드라마 치부하기에는 훨씬 더 풍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도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해도 로맨스 소설 정도라는 예상만 하고 책장을 열었다가 날 것 그대로 전달되는 폭력과 격정의 소용돌이에 제법놀랐다. 이 책을 2주 남짓 하는 기간 동안 읽어보고 느낀 점을 전달하자면 이 책이 가진 강점은 얽히고 설킨 러브라인이나 복수극으로서 촘촘하게 쌓아올리는 인물 간의 서사라기 보다는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면서 등장인물들이폭풍처럼 격렬하게 쏟아내는 파토스 (πάθος: 그리스어로 고통 또는 격정적인 감정을 뜻하는 단어) 라는 생각이들었다.


이 책은 극단적이다 못해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파멸적이고 광기에 젖은 사랑과 복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에밀리 브론테는 이런 소재를 그저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방식으로 서사를 진행하는 편리한 도구로만다루지 않았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에도 엄청난 공을 들였는데 각 인물들이 암담한 상황을 마주하며 느끼는 격정적이면서도 처연한 감정을 고조시켜 통속극 정도로 그칠 수도 있는 이야기를 기념비적인 비극의 반열까지 올려 놓는데 성공하였다. 그덕에 본작의 주요 인물들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기행을 저지르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의 심정에 공감하며 눈물을 훔치게 되곤 한다. 제법 유명한 작품인데다가 저작권이 만료되서 번역 판본도여러가지가 있을 정도로 접근성이 좋은 고전이니만큼 혹시라도 기회가 된다면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