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려 볼게
이거 말고 좀 더 장황하게 내 나름 장미의 이름을 분석한 글도 있지만 쓰다가 지쳐서 대충 마무리한 글이기도 하고 그 분석이 부끄러워서 일부만 올림. 이 글은 장미의 이름 보단 에코의 소설들을 읽고 느낀 개인적 단상임
—————————
장미의 이름을 세 번째 읽고 보니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이 소설은 주인공의 실패담이었다는 것.
왜 전엔 그걸 몰랐는지 이해가 안된다.
처음 프롤로그에서 윌리엄이 어떤 인물인지 보여주기 위해 멋진 추리 능력을 보여준다. 물론 주요 사건과는 연관이 없다. 그 밖의 거의 모든 문제는 실패의 연속이었고 마지막장에서도 자그마한 승리 뒤에 커더란 실패가 바로 이어진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에코의 다른 소설들도 전부 실패 뿐이었다.
푸코의 진자에서 자전적인 캐릭터인 벨보는 극심한 패배주의자며 소설의 결말엔 결국 모두 패배한다.
바우돌리노도 마찬가지 많은 일을 겪지만 대부분 실패 뿐이다.
프라하의 묘지는 어떤가? 푸코의 진자의 벨보가 패배주의자인 이유는 스스로 창작은 하지 못하고, 그럼에도 창작에의 집착으로 출판사에서 일한다는 것. 그런 그와 비슷한 캐릭터인 프라하의 묘지의 시모니니는 패배주의자는 아니지만 애초에 창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죄책감이란 게 전혀 없는 무서운 인물이다.
로아나에서도 전날의 섬에서도 결국 전부 실패 뿐이다.
세상의 바보들은 무척 유쾌하고 재미있지만, 막상 세상 만사에 비아냥거리는 것이 아닌가? 심술이다.
에코가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루저(loser)는 늘 승자보다 많은 지식을 추구한다. 만일 이기고 싶다면 하나만 알아야지 모든 것을 알기 위해 시간을 낭비해선 안 된다. 박학다식(博學多識)의 기쁨은 루저를 위한 것이다.”
박학자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에코는 분명 유머있는 학자지만, 심술 많은 장난꾸러기이기도 한 것 같다.
에코의 소설은 보면 대체로 자신의 박학을 맘껏 뽐낸다. 소설 후기에 일부러 어렵게 썼다느니 그걸 못 읽으면 읽을 자격이 없다느니 자신의 소설을 등산에 비유하며 읽기 힘들어도 다 읽고난 뒤의 성취감이 어떻다느니 말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그냥 심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패배자는 항상 심술을 부린다. 그냥 순순히 지고 물러나긴 너무 싫어서 더 추해지는 걸 알면서도 더 물고 늘어지면서 심술을 부리게 된다.
에코의 소설은 대체로 짜집기형식이라고 한다. 난 그런 것을 알아볼 정도로 지식이 많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어쨌든 수 없이 많은 각주를 보면 수 많은 자료를 참고했음은 알 수 있다. 상호 텍스트성에 대해, 자신이 글을 쓰는 방식에 대해 문학강의에서 잘 설명해주지만, 그럼에도 정작 본인은 창작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에코가 일부러 어렵게 글을 쓰는 건 장난치듯 심술부리고 심술부리듯 장난을 치는것이 아닐까.
이거 말고 좀 더 장황하게 내 나름 장미의 이름을 분석한 글도 있지만 쓰다가 지쳐서 대충 마무리한 글이기도 하고 그 분석이 부끄러워서 일부만 올림. 이 글은 장미의 이름 보단 에코의 소설들을 읽고 느낀 개인적 단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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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을 세 번째 읽고 보니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이 소설은 주인공의 실패담이었다는 것.
왜 전엔 그걸 몰랐는지 이해가 안된다.
처음 프롤로그에서 윌리엄이 어떤 인물인지 보여주기 위해 멋진 추리 능력을 보여준다. 물론 주요 사건과는 연관이 없다. 그 밖의 거의 모든 문제는 실패의 연속이었고 마지막장에서도 자그마한 승리 뒤에 커더란 실패가 바로 이어진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에코의 다른 소설들도 전부 실패 뿐이었다.
푸코의 진자에서 자전적인 캐릭터인 벨보는 극심한 패배주의자며 소설의 결말엔 결국 모두 패배한다.
바우돌리노도 마찬가지 많은 일을 겪지만 대부분 실패 뿐이다.
프라하의 묘지는 어떤가? 푸코의 진자의 벨보가 패배주의자인 이유는 스스로 창작은 하지 못하고, 그럼에도 창작에의 집착으로 출판사에서 일한다는 것. 그런 그와 비슷한 캐릭터인 프라하의 묘지의 시모니니는 패배주의자는 아니지만 애초에 창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죄책감이란 게 전혀 없는 무서운 인물이다.
로아나에서도 전날의 섬에서도 결국 전부 실패 뿐이다.
세상의 바보들은 무척 유쾌하고 재미있지만, 막상 세상 만사에 비아냥거리는 것이 아닌가? 심술이다.
에코가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루저(loser)는 늘 승자보다 많은 지식을 추구한다. 만일 이기고 싶다면 하나만 알아야지 모든 것을 알기 위해 시간을 낭비해선 안 된다. 박학다식(博學多識)의 기쁨은 루저를 위한 것이다.”
박학자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에코는 분명 유머있는 학자지만, 심술 많은 장난꾸러기이기도 한 것 같다.
에코의 소설은 보면 대체로 자신의 박학을 맘껏 뽐낸다. 소설 후기에 일부러 어렵게 썼다느니 그걸 못 읽으면 읽을 자격이 없다느니 자신의 소설을 등산에 비유하며 읽기 힘들어도 다 읽고난 뒤의 성취감이 어떻다느니 말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그냥 심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패배자는 항상 심술을 부린다. 그냥 순순히 지고 물러나긴 너무 싫어서 더 추해지는 걸 알면서도 더 물고 늘어지면서 심술을 부리게 된다.
에코의 소설은 대체로 짜집기형식이라고 한다. 난 그런 것을 알아볼 정도로 지식이 많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어쨌든 수 없이 많은 각주를 보면 수 많은 자료를 참고했음은 알 수 있다. 상호 텍스트성에 대해, 자신이 글을 쓰는 방식에 대해 문학강의에서 잘 설명해주지만, 그럼에도 정작 본인은 창작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에코가 일부러 어렵게 글을 쓰는 건 장난치듯 심술부리고 심술부리듯 장난을 치는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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