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붕이들은 <가로>라는 일본 만화잡지를 알고 있는가?
대다수는 '그게 뭔데 씹덕아' 라는 반응을 보이겠지만 혹 아는 사람이 있다면
<나사식>의 작가로 유명한 쓰게 요시하루의 만화들이 연재됐던 잡지로 기억에 남아있을 것이다.
일본만화 리뷰대회에서 갑자기 오래 전에 폐간된 60년대 만화잡지를 언급하는 이유가 뭐냐 하면
월간만화잡지 <가로>는 당시 온갖 종류의 실험만화들이 득시글대는 마굴이였기 때문이다.
이 잡지는 원래 시라토 산페이의 <카무이전>이라는 닌자 만화가 폭력성과 유혈성으로 인해 타 잡지에서는
연재가 불가능하게 되자, <카무이전>이 어떤 사전검열도 없이 연재될 수 있는 지면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창간된 것이였다. 잡지가 '검열 없음','뭘 그리던지 편집부에서 관여 안함'을 기본 방침으로 따르는 곳이다 보니
자연히 힙스터 만화가들이 다른 잡지에서는 연재할 수 없는 실험만화들을 줄줄이 연재하게 되고
츠게 요시하루나 타츠미 요시히로, 츠리타 쿠니코 등 통칭 '가로계' 만화가들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출현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1966년 11월.. 베트남전은 며칠간의 휴전을 맞이하고.. NASA는 달 표면의 분화구 사진을 공개했을 무렵..
<가로>에는 만화라는 장르 자체를 끝장내버릴 신인이 데뷔하게 되고..
바로 그가 오늘 리뷰할 사사키 마키(佐々木 マキ)이다
가로계에는 주로 극화풍 그림체의 청년만화가가 많이 포진되어 있지만
사사키 마키는 일본 만화가치고는 특이하게도 미국 카툰풍의 그림체를 구사하는 편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림을 대충 그린다는 뜻은 아니다.
스케일이 큰 그림도 잘 그리고
배경 작화의 경우도 생각 이상으로 준수한 편이다.
그 밖에 눈에 띄는 특징이라 하면..
바로 줄거리가 없다는 것이다
흔히 사사키 마키는 '데즈카 오사무가 증오한 만화가'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실제로 데즈카는 그의 만화를 보고 '이런 미치광이의 나쁜 만화라고도 할 수 없는 만화를 잡지에 실어선 안된다'라는 말을 한 바 있다.
만화의 '서사'라는 요소를 중시했던 데즈카로서는 분명 개별적인 컷들의 모음으로만 존재하는, 컷들 사이의 연결고리는
아예 소실된 사사키의 만화를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사사키 마키의 대표작인 <해변의 거리>는 명실상부하게 '만화의 끝'에 위치해 있다고 할 만한 작품이다.
<천국에서 꾸는 꿈>이나 <앙리와 안느의 발라드>다른 단편들은 서로 떨어진 컷들 사이에서 서사가 형성되거나,
기존의 '성냥팔이 소녀' 동화를 자폐적인 감성으로 비틀어내는 등 서사가 뼈대만이라도 남아있는 편이라면
<해변의 거리>는 서사 자체를 완벽히 무시하는 작품이다.
"해변의 거리에서 우리는 친구였나"라는 외침에서 시작되고, 동일한 외침으로 끝나는 이 단편은
아기들의 행진, 여체, 양 팔을 잃은 상이군인의 무리 등의 이미지를 난잡하게 나열해대지만, 그 속에서는 그들이 모두
어떤 종류의 끝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는 점 이외에는 어떠한 공통점도 발견되지 않는다
(군인의 '행복합니다')
사사키의 또다른 대표작이라 할 만한 작품인 <베트남 토론>은 더 이상 만화가 아닌 작품이다.
만화의 그림 부분은 신문에 게재된 인물 사진들을 음영처리해서 그대로 사용했고,
말풍선 속 문장들은 신문의 정치란에 실린 기사 속 명사들을 마구잡이로 뒤섞어놓은 것 같이 보인다.
작품의 의도 역시 모호하다. 사사키는 제목이 <베트남 토론>인 만화의 내용을 일본 전후 시절의 기사로 채워서,
베트남과 일본 둘 다 미국에게 탄압받는 대상으로 형상화하고, 미국이 GHQ 시절의 압제를 베트남에 반복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려고 하는가?,
아니면 그는 온통 한자로 된 관념어로 가득한 좌익 운동권의 언어를 풍자하고자 하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그는 만화에 다다이즘을 도입하려 했을 뿐인가?
사실 만화의 끝이니 뭐니 하는 거창한 단어는 주로 <가로>에 연재됐던 사사키의 초기작에나 해당되는 말이다.
그는 70년대 이후로 만화판을 떴고, 주로 어린이용 동화책을 그리면서 작가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그렇다고 만화 그리는 걸 완전히 그만둔 건 아니라서, 80년대에도 간간히 작품들을 발표하는데 아무래도 그림책의 감성이 좀 묻어나다보니
초기작보다는 가볍게 읽을 수 있어서 사사키 마키 만화 입문용으로 추천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천국에서 꾸는 꿈>을 읽다가 발견한 기괴한 짤들 몇 개
관념싸개부류의 풍자라니 흥미롭지만 좆같네요~
이건 실어준 쪽이 더 대단한데. 국내 정발까지되고
그림은 수준급이라..
오 - dc App
이건 좀 대단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