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본 소설을 좀처럼 다시 보질 않는다.

어려서 판타지는 재미있기 때문에 즐거운 시간 떼우기로 자주 읽었는데, 양질의 작품은 극소수에 불과해 이영도 전민희 작품을 반복해서 읽게 되었었고, 칠성전기라는 아주 뛰어난 전투묘사(사실적이지는 않은)가 일품인 작품을 자주 읽곤 했다.

나이먹고 다시 되새김질했던 소설은 오직 토지뿐이다.

재독 때는 처음 읽을 때 오기로 읽느라 놓쳤던 부분을 채우려 했던 것이고,

삼독 때는 단지 시간떼우려 읽었을 뿐인데 지식이 늘어남에 따라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주는 생동감이 신기해서 버텼던 거 같다. 어렵게 말해서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등장인물들 옷차림 묘사같은 게 삼독 때야 그려지기 시작했다는 거. 슬랙스라는 용어가 토지에서 나오는 것도 이 때 알았음. 옷차림만 그런 게 아니지만 대표적으로.

사독 때에 이르러서야 작가의 호흡이 느껴져서 오독을 할 일은 없을 거라 여기게 되었음.

이와 비슷하여, 다시 읽을 거라고 느끼는 책들은 나는 다독가가 아니라 편협하게 독서했지만, 도키도키와 톨스토이, 한강 정도. 김훈의 문장은 일품이지만 역사기반으로 글을 쓰다보니 걍 난중일길 읽고, 사룔 읽게 되는 식임. 박민규의 한 때 소설들도 일단 처분은 안하고 있음.

종합소설이라는 걸 하루키는 목표로 하고 대표적으로는 까르마조프가 그것이라 말했었는데, 내 보기엔 종합소설이라는 게 뭔지는 모르겠는데 느낌으로는, 양파처럼 까도 까도 뭐가 나올 거 같은 게 종합소설일 것이라 여김. 그런 면에서 안나 카레 니나 처먹어라나 토지는 훌륭한 재현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몰입의 경험을 제공하는 종합소설이라 할 수 있겠지, 반지의 제왕도 이런 측면에서는 충분히 거론될 수 있다고 느낌.

각-설하고 재독 삼독은 무슨 연유로들 하시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