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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 대한 규정적 부정의 시선으로 희망을 바라보려는 아도르노의 사유는 페미니즘 집단의 사상의 정당화로 이용되기 시작했고, 더 나은 세상을, 희망을 위했던 자들, 들뢰즈와 푸코의 그러한 사유조차도 결국 페미니즘 집단과 같은 그런 집단들의 정당화 근거로 쓰였다. 또한, 그 학자들의 사상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 누군가가 유명하고 심오한 학자의 사상을 근거로 어떤 것을 주장하면 사람들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옳다고 믿어버린다고. 그러나 저 집단들에서 이 사실은 묵살된 채, 그 집단들은 오히려 저런 일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그들은 제대로 된 이해 없이 들뢰즈를 인용한다. 그것으로 사람들은 그 집단들이 옳다고 신봉하기 시작한다. 이제 들뢰즈는 이론을 가진 학자의 이름이 아니라 단순히 금빛 동상, 우상의 이름이 된다.
그러나 그 배후에 있는 그 엉성한 토대는 은폐되며, 설령 그것을 발견하는 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는 "사회로부터 퇴출"된다. 이러한 공포의 변증법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학사의『미셸 푸코』와 한길사의『아도르노(김순예)를 읽고서 쓴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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