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에드거 앨런 포(1809~1849)는 미국 문학사를 대표하는 작가 중에 한 명이다. 포는 미스터리 문학사에도 커다란 영향을 남겼는데 탐정이 등장하는 형식의 미스터리 소설을 사실상 도입했다는 부분에서 그렇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포를 탐정 소설의 창시자(The Inventer Of The Detective Fiction.)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다음으로 포의 생애를 먼저 살펴보자.
2. 포는 1809년 1월 19일 메사추세츠 주 보스턴에서 아버지 데이비드 포 주니어와 어머니 엘리자베스 아놀드 사이에서 태어났다. 포의 부모의 직업은 배우였는데 아버지는 포가 태어난 다음 해인 1810년 집을 나가버렸고 어머니는 그 다음 해인 1811년에 결핵으로 사망했다. 포는 그 뒤에 버지니아 주 리치몬드에 사는 존 앨런과 프랜시스 앨런 부부에게 맡겨져서 성인이 될 때까지 함께 살게 된다. 포는 버지니아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양아버지 존 앨런이 학비를 제대로 지원해주지 않는 것과 뒤늦게 빠진 도박과 그로 인한 빚으로 인하여 크게 다툰 뒤 중퇴를 했고, 미국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지만 강압적인 규율과 분위기에 실망하고 역시 그만두게 된다. 양아버지와의 사이는 양어머니의 사망 이후 일시적으로 좋아졌지만 작가가 되겠다는 포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한 양아버지와의 관계는 다시 안좋아졌으며 경제적 지원이 중단된다.
3.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갔던 포는 극심한 빈곤과 자신의 글을 그다지 인정해주지 않는 문학계의 냉대로 굉장히 어려운 생활을 해야만 했고, 그럴수록 그의 알코올 의존증은 날로 심해져만 갔다. 그러한 포에게 삶의 전환점이 된 것은 29세인 1837년에 사촌 동생인 버지니아 클램와의 결혼으로 안정을 찾고 자신이 중심이 된 <펜 매거진>을 창간한 뒤였으며, 특히 1841년~1844년 사이에 자신의 대표작들을 연달아 발표하면서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고 경제적 안정을 찾게 된다. 하지만 1845년을 기점으로 자신이 중심이 된 잡지 운영이 어려워지고 건강이 안좋던 아내 클램이 1847년에 끝내 사망하면서 포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으며 급기야 자살 시도까지 하기에 이른다. 피폐해진 포는 폐인처럼 살아가다가 정신을 차리고 이전에 약혼을 하려 했었던 사라 엘머러 로이스터와 재혼을 하려고 했다. 사라의 생각을 받아들여 금주를 시도하고 의사를 만나러 포는 볼티모어로 향했으나 그의 행방은 묘연해졌고 나중에서야 뒤늦게 발견되어 병원에 입원했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41세인 1849년 10월 7일에 별세한다. 그의 장례식은 결혼을 약속했던 여성인 사라에 의하여 진행되었으며 볼티모어에 위치한 공동묘지에 비석도 없이 안장되었다. 나중에서야 근처의 교회 묘지로 이장이 이루어져 제대로 된 안식을 맞이한다.
4. 이제 포의 작품 세계를 미스터리 소설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사실 포의 미스터리 소설은 화자인 '나'와 탐정인 오귀스트 뒤팽이 등장한 이른바 뒤팽 시리즈 3부작에 불과한데 각각 모르그 가의 살인 사건(1841), 마리 로제의 비밀(1842), 도둑맞은 편지(1844)이다. 하지만 해당 시리즈가 미스터리 문학사에 남긴 의의는 거대한데 일단 모르그 가의 살인 사건은 탐정과 그를 돕는 파트너로 이루어진 두 명의 인물이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결한다는 기본적인 클리셰를, 마리 로제의 비밀에서는 실제 범죄 사건을 각색하여 플롯을 구성한다는 점과 뒤팽이 해당 사건의 해결을 앉아서 본인의 생각만으로 진행시키는 안락의자형 탐정의 원형을 보여준다는 것, 도둑맞은 편지에서는 범죄자가 자신의 범죄 행위를 숨기는 방식과 그 행태들은 생각보다 간단하며 심리적인 허점을 활용하여 해결할 수 있다는 해답을 제시했다는 부분에 있다. 다시 말해서, 포 이후의 미스터리 작가들이 사용하고 발전시킨 기본적인 형식과 플롯 구성, 서술 트릭과 함께 미스터리 소설에서의 핵심적인 규칙와 같은 노하우를 세 개의 작품만으로 선구적으로 제시하였고 실제로 적용했다는 점을 볼 때에 포를 미스터리 문학의 시작이며, 해당 장르의 기원이라고 간주하더라도 커다란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 지금까지 에드거 앨런 포의 삶과 문학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탐구해보았다. 포의 개인적인 삶은 여러모로 불우했으며,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미스터리 작품들은 미스터리 문학의 시초이자 정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오늘날 미스터리 문학에서의 포의 위상이 매우 높다는 점은 미국 미스터리 작가협회에서 1946년부터 매년 발표하고 시상하는 문학상의 이름이 바로 에드거 상이며 수상자에게는 포의 모습을 형상화한 트로피를 수여한다는 것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에드거 앨런 포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역대 에드거 상 수상자들이 참여하는 형태로 만들어지고 정식으로 발표된 에세이 <더 레이븐: 에드거 앨런 포의 그림자>(2009)의 편집자를 맡은 마이클 코넬리의 서술 일부를 덧붙이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우리가 현재 접하는 모든 미스터리 캐릭터, 무대, 사건 등은 전부 에드거 앨런 포가 만들어냈다. 그러므로 현대의 작가들은 그저 그의 아이디어를 훔치는 일종의 ‘도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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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는 뭐 당시 유명했냐 무명했냐를 떠나 앞서간 작가 였던건 확실함 탐정 장르야 서술한대로 기반으로 한 플롯이나 구성은 계속 발전되었기에 지금 읽기엔 심심함 감이 없지않아 있지만… 공포 쪽은 아직까지도 그만의 독보적 영역이라 느껴질만큼 훌륭한 작품들이라 생각해
14살 사촌동생과 결혼한 페도 아니냐
다만 이에 관해서는 당시 미국 남부 사회에서는 집안 내 결혼은 흔한 것이었고, 사춘기에 막 접어든 소녀들의 결혼도 결코 드물지 않았다. 실제로 마리아 클램의 집은 할머니, 고모, 버지니아로 구성된 대가족이었는데, 이것은 19세기 남부의 전형적인 가족의 형태였다고 한다. 또한 그들은 마리아 클램의 숙박업과 포의 할머니가 독립유공자 배우자로서 받고 있는 작은 연금에 의존하여 살고 있었는데, 기록에 의하면 포와 버지니아가 결혼한 1836년은 포의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가족의 생계가 곤란해진 시기였고, 포는 경제적 압박 때문에 자신에게 유일하게 남아있는 친혈육인 클램의 가문이 해체될지도 모른다며 무척 불안해했다고 한다. 관련 내용 참고하시오. - dc App
항상 잘읽고 있어용 - dc App
고맙소.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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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아니네. 믓찌다!! 앨런 포 영문학사에사 위치가 높다고 들었는데 - dc App
포도 사망한 뒤에 재평가가 이루어진 경우라서. 생전에는 그다지 유명하지가 않았지. 나중에라도 높은 평가를 받는게 쉽지는 않지만 말이야.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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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 작가 중 하나가 포인데 중딩때부터 읽어서 그 특유의 암흑 낭만주의에 빠졌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