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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코바야시네 메이드래곤’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본 적이 있었다. 대충 의인화된 드래곤들이 많이 나오는 애니다. 그 등장인물 중에 파프니르라는 용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 ‘Fate/Apocrypha’라는 애니메이션 작품을 보았다. 대충 과거의 영웅들이나 창작물의 인물을 소환해서 대판 싸움을 벌이는 애니다. 평소 좋아하는 시리즈였던지라 이번엔 어떤 영웅이 나올까 하고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지크프리트라는 녀석이 등장했다. 대충 그 인물의 약력을 주욱 읊어주는데 용을 하나 죽였덴다. 근데 그 용의 이름이 파프니르라고 하는게 아닌가? 흥미가 생긴 나는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다. 그랬더니 독일어로 쓰인 서사시 하나가 튀어나왔다. 이러한 경위로 나는 이 작품을 접하게 된 것이다.


이제 이 책을 다 읽고 간단한 감상에 대해 말해 보려고 한다.

이하 문단에서는 본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등장한다는 사실을 미리 밝혀두자고 한다.


첫 번째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뒷세이아와는 다르게 작품 자체가 상대적으로 최근에 활자화 된 작품이다보니 현대에도 남아있는 지명이 많이 등장했다는 것이었다.

그 예시로 지크프리트는 네덜란드의 왕자이고, 부르군트 왕국은 부르고뉴의 독일어식 표기이며, 1부에서 부르군트 왕국을 침략한 두 나라는 각각 덴마크 왕국과 작센 왕국인데 하나는 현대에도 존재하는 그 덴마크이고 하나는 독일의 한 지방에 해당한다.

읽어본 서사시가 이미 소멸한 지명이 주구장창 나오던 호메로스의 작품 밖에 없던 필자로써는 이 사실이 매우 신선했다.


두 번째는 작품 자체가 유럽이 기독교화 된 이후에 활자화된 만큼 기독교의 영향이 많이 보였다.

지크프리트라는 인물 자체는 북유럽 신화에서 비롯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북유럽 신화 또는 그에서 비롯된 요소는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필자는 북유럽 신화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그냥 지나친 부분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럼에도 기독교의 영향이 매우 크다는 사실은 짐작할 수 있었는데, 지크프리트가 교회에 가서 기사가 되는 장면이라거나 미사에 대한 묘사 등등이 그것이다. 또한 2부에서 크림힐트가 헝가리의 에첼 왕에게 시집가는 장면에서 기독교도와 이교도를 비교하는 대목도 종종 나와 이 작품이 기독교에 영향을 크게 받은 작품이라는 사실을 재차 상기시켜주기도 하였다.


세 번째는 그래도 ‘북유럽 신화스러운’ 모습이 보였다는 것이다.

위 문단에서도 말했듯이 필자는 북유럽 신화에 대해서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

필자가 아는 것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등장인물인 ‘토르’와 관련된 작품 또는 ‘갓 오브 워 시리즈’를 즐기며 단편적으로 얻은 정보가 전부이다.

필자가 대충이나마 아는 것은 북유럽인들은 전장에서 죽는 것을 영광스럽게 여겼고 또 이를 통해 ‘발할라’에 갈 수 있다고 여겼다는 것, 그리고 북유럽 신화의 끝은 모든 것이 파멸하는 ‘라그라로크(Ragnarök)’라는 것 뿐이다.

그래서 마지막에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싸우거나 암살당해 죽어버리는 것은 필자에게 ‘북유럽스럽다!’라는 감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마지막 감상은 역시 호메로스는 신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 역시 ‘서사시'라고 불리는 이상 호메로스의 작품과 비교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이 형편없었다는 말이 아니다.

이것도 재밌었는데 호메로스가 쓴 위대한 두 개의 작품이 훨씬 더 재밌었다는 소리다.

단테는 신곡 지옥편에서 림보에 있는 호메로스를 시성(詩聖)이라고 지칭했다.

필자는 드디어 그 이유를 짐작이라고 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