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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의 시집을 필사하다가 익숙한 시가 보였다.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ㅡ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ㅡ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ㅡ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ㅡ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ㅡ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제목처럼 그자체로 '향수'가 느껴졌다.
나는 어릴적에 이 시를 자주 접했는데
정지용의 시로써가 아닌 이동원, 박인수, 두 가수분들의 노래로써 접했다.
아버지는 '향수'의 가사를 종이에 적어 내게 건네시며,
가사가 너무 좋다고 하셨다.
그때 나는 어렸기에 가사의 의미는 잘 몰랐지만,
구조가 단순해서 익히기 쉬웠고,
특유의 서정적인 분위기가 너무나도 좋았기 때문에,
나는 무심코 뜻도 모르는 노래의 가사를 흥얼거리게 되었으며,
지금 아버지의 집을 떠나 혼자 살게된 작은 방 한 켠에서
그 때 그 향수를 느낀다.
'향수' 노래를 부르신 박인수 가수님이 최근에 별세 하셨다고 한다.
이 시가 내게 다시 찾아온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테너 박인수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