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성
마광수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
즉 서로 상반되는 기질을 동시에 갖는 모순성을 말한다. 1년의 365일이 발정기인 인간은 성에 목이 말라 있지만, 우리 인간이 만든 사회는 그 성을 나쁜 것(또는 더러운 것)으로 치부하며 억압한다(그러면서 출산율이 낮다고 뭐라 한다). 최근엔 꽤나 많이 개방되었지만, 그럼에도 아직 우리는 체면 때문에 또는 어떤 도덕적 이유나 유교적 꼰대 사상에 의해 아직도 암암리에 성을 배척하는 위선을 부린다.
그런 위선 속에선 사랑(성애)은 제한 적이게 되며 그것은 욕구불만 또는 독점욕에 의한 질투와 심술을 불러일으켜 사람을 엇나가게 한다. 아마 이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모순일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인간이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를 모순되는 것을 동시에 믿을 수 있기 때문이라 본다.
내 생각도 그렇다. 인간에겐 모순이 없을 수 없고 그 모순이 없다면 인간은 굳이 사고를 할 이유가 없어진다. 모든 것이 완벽한 세상은 곧 정체된 세상일 것이다.
마광수 본인이 이 책의 서문에서 말하길 예술은 성의 억압에 의한 대리 배설로 불유쾌한 부산물이라고 표현한다. 내가 잘 알아들은 것이 맞다면, 성의 완벽한 해방으로 더 이상 예술작품이 나오지도 필요하지도 않게 된다. 그것이 편견과 이데올로기를 타파하고 진정한 문명 상태로 우리를 이끌 것이라고.
나는 예술과 문화, 사회, 과학은 매우 강한 유대관계에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중 하나인 예술이 정체되는데 과연 다른 것들은 예술을 두고 발전해 갈 수 있을까? 아니면 성의 완벽한 해방은 모두가 직접 배설이 가능한 세상, 고로 더 이상 만들어진 가식적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아도 되는, 모두가 아름다운 예술의 극치에 달한 세상이기에 나머지(문화, 사회, 과학)도 같이 극으로 올라오게 된다는 뜻일까.
모르겠다. 일단 성의 해방이 과연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직접 배설의 기회를 줄지 확신을 갖지 못하겠다. 다른 종의 동물들은 분명 성이 이미 해방되어 있음에도 열등한 종자의 생식활동은 제한적이다. 무리에서 추방되거나 암컷 쟁탈 경쟁에서 패하고 암컷 또한 건강하지 못한 암컷은 애초에 수컷들이 경쟁하면서까지 차지하려 들진 않는다. 즉 성의 완벽한 해방이 사회적으론 어찌어찌 가능할지는 몰라도 오히려 생물적으론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결국 그런 불공평한 분배(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는 질투와 심술을 낳게 될 것인데, 그럼 해방 이전의 억압된 당시와 큰 차이가 없는 게 아닐까 싶다.
여튼 잘 모르겠다. 난 너무도 많은 모순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범인(凡人)... 아니 그조차 안되는 사람인데 어찌 감히 제대로 된 결론을 낼까.
그래도 마광수의 성 해방은 관용적 태도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니 그에 동의한다. 나 자신은 실존적 성애에 그리 관용적이진 못하더라도... (친구들과 떠들거나 매체를 통해 보는 건 문제가 없지만 직접 실행에 대해서 그러지 못한다는 뜻이다...)

시 해석은 재미있었고, 사드의 소돔을 앞으로도 읽을 일이 없을 거란 확신을 갖게 됐으며, o의 이야기는 취향 저격이었다. 다만 여성을 만족시킬 능력이 없는 남성상은 내 명치를 심각하게 가격하는 듯했다... 특히 노인의 성 문제를 다룬 잠자는 미녀 해석을 읽으면서 매우 많이 착잡했다. 아직 많이 젊음에도...

해석이 편향적이니 뭐니 하는 말은 하지 않겠다. 애초에 저자가 서문에 그런 식의 해석을 할 것임을 밝혔고 또 비평에 정답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무엇보다 저자의 해석이 무척 재미있는데 굳이 뭐라 따질 이유는 없을 것이다.

성과 죄의식까지만 읽고 덮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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