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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임론
챕터 1. 친정, 위임.
친정은 직접 다스리는 것.
위임은 신하에게 자리를 주는 것.
위임은 춘추전국시대 산물.
제후의 힘을 빌려 국정을 하고 무능한 귀족이 권력, 자원 세습하는 구조 끝내기 위한 것.
(유가, 묵가, 도가, 법가 의견 일치)
조선의 경연관들은 위임을 선호함. 왕권을 약화시키고 신권을 강화시키기 때문.
유가는 신화를 만들었다. 다들 어진 신하에게 일임했다가 후계자로 삼음.
서경-상서편의 고요:임금이 꼼꼼하면 신하들이 게을러져서 엉망이 됩니다.
물길을 잘 터놓고 표준을 보이면, 나라가 저절로
다스려진다
사람을 구하는 데 애쓰고 맡기고 나서 편안하니,
바로 요순이 무위로 다스린 것입니다.
윗사람이 밑고 맡겨야 신하가 충절을 다하고, 그렇지 않으면 장량, 진평 같은 참모와 관우, 장비 같은 장수가 있어도 소용 없다.
왕은 국정의 큰 방향만 정하고 실무는 대신들에게 맡기는 모델.
대강만 파악해라. 최대한 대신에게 맡겨라.
임금은 그저 재상을 결정하면 그만이다.
But 조선 왕들은 대체로 위의 규칙을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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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2. 군자, 소인
순조 소대에서 직제학 김근수:
임금은 삼공을 고르고, 삼공은 육경을 뽑으며, 육경 이하도 차례차례 임명합니다. 임금이 다시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그럼 누구에게 맡기나?
유교에서 신하를 군자와 소인으로 구분한다.
군자는 적임. 소인은 비적임.
군자에게 위임하면 흥성. 소인에게 위임하면 망함.
원래 군자와 소인은 타고난 '신분'을 일컬음.
군자는 지배계급. 소인은 피지배계급.
그런데 공자가 이 단어들에 도덕적 의미 부여.
군자:의리를 중시. 원만함, 어눌한 말투, 태연함, 겸손, 책임.
소인:이익을 중시. 편협함, 교묘한 말투, 초조함, 교만함, 남탓.
사람은 네 유형으로 나뉨.
성인:덕 완전. 재주 완전.
군자:덕>재주
소인:덕<재주
우인:덕x 재주 x
사마광:
예로부터 나라를 어지럽힌 신하와 집안을 망친 자식들이 대게 재주는 넉넉하나, 덕이 부족하여 멸망에 이르렀습니다.
이 개념을 집단으로 확장한다. 중간은 있을 수 없다.
우리 편-군자들은 군자끼리 모인다. 진짜 붕당(진붕)
상대 편-소인들은 소인끼리 모인다. 가짜 붕당(가붕)
우리편은 국가에 이롭고 상대 편은 국가에 해롭다.
주범을 참하고, 처자와 재산을 몰수하며, 나머지 당인들을 유배, 금고(관직 금지)로 처벌.
군자를 쓰다가 소인을 써서 망한 사례가 경연에 자주 등장한다.
당 현종과 이임보의 사례.
현종은 즉위 24년간 어진 재상을 고용해서 잘 다스렸다.
그러나 이임보를 임명하니 현종의 쾌락추구를 도움.
연호를 천보로 바꾸고 후비, 환관, 절도사를 장악.
자기 견제하는 대신과 언관 철저히 제거.
결과:태자와 두 황자를 죽임. 간관(잘못을 지적)들을 죽임. 도교에 빠짐. 며느리를 후궁 삼음(양귀비)
마지막 결정타로 안녹산의 반란 일어남.
현종이 재상을 군자에서 소인으로 바꿨기 때문에 치세가 난세로 변한 것이다.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노사신:
임금의 마음이 바르면 군자와 소인을 거울처럼 알아볼 수 있다.
이극기:
직언하는 신하와 공손한 신하를 살피라.
안윤손:
임금의 도리는 군자와 소인을 밝게 구별하는 것 뿐입니다. 소인은 말하기도 전에 '네네'하고, 말만 하면 순종하며, 마음에 들고 기쁘게 하여, 마침내 나라를 그르칩니다.
채침:
임금의 마음이 밝으면 군자가 무리지어 등용되고,
밝지 않으면 소인이 무리지어 등용됩니다.
중종의 대답:군자와 소인은 분별하기 어렵지만, 마음이 거울처럼 텅 비고 저울처럼 평평하면 분별하기 어렵지 않다.
누구나 군자가 아니면 소인이 되고 낙인이 찍히면 절대 바꿀 수 없다. 타협은 있을 수 없다.
우리의 의견. 즉 공론에 이의를 제기한다면 그는 소인이 된다.
챕터 3.조선의 권력 구조.
조선의 권력구조는 위임 이론과 크게 다르다.
친정과 위임을 짬뽕. 군신공치.
삼정승은 왕이 자문할 때만 조언.
태종 때 고려의 도평의사사가 의정부, 육조, 승정원으로 나뉨. 육조 직계제
세종 때 이 구조 굳혀짐
세종:옛 임금들은 신하에게 국정을 맡겼다가 일을 그르친 적이 있어서 몸소 세세한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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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가 말하기를 임금의 직책은 재상을 논하는 것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후세에 이르면 일이 옛날과 같지 않다.
~~~~~나는 너희들의 말이 비현실적이라고 본다.
결론:최종 결정권은 언제나 왕에게 있다. 위임 거부. 군신공치. 왕과 신하가 함께 통치.
정치란 권력, 재산, 신분 등 제한된 자원을 배분하는 일이다. 그런데 특권층의 자손이 계속 는다.
어떻게 해결하나?
경쟁 집단을 배제하면 된다. 북인, 남인, 소론 등 제거.
정리!
1.왜 왕이 신하에게 국정 위임하나?
일이 많아서. 왕은 큰 가닥만 잡고 신하들 위임해라.
2.누구한테 국정을 위임하나?
재상에게
3.어떻게 위임?
원칙은 오로지 맡기는 것.
의심하면 맡기지 않고 맡기면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왕과 신하가 함께 통치했다.
4.누가 적임자인가?
군자가 적임자이고 소인은 비적임자이다.
간쟁론
간쟁은 신하가 하는 바른 말이다.
누구나 할 수 있고 여러 번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바른말은 제왕의 자존심을 건드리기 쉽다.
유교에서 임금과 신하는 하늘과 땅 같은 상하관계이다.
그런데도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비판할 의무가 있다.
윗사람은 비판을 받아들일 의무가 있다.
조선에선 이 일을 사헌부와 사간원이 맡았다.
챕터 1. 왜? 어떻게?
간쟁은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는 유일한 방법이다.
군주와 부모의 잘못을 바로잡는게 충성과 효도다.
부열:
나무가 먹줄을 따르면 바르게 되고, 임금이 간쟁을 따르면 성군이 됩니다.
고종 간관 윤치정:
간쟁을 따르면 성군이 된다는 말은 간쟁을 받아들여 잘못을 고친다는 뜻입니다.
~~옛말에 독한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 이롭고 충언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동에 이롭다고 했습니다.
~~잘못이 있으면, 반드시 간쟁해서, 임금이 허물이 없도록 인도하라는 말입니다.
세조 경연 양성지:
~~그러나 대신들은 총애를 잃을까 두려워 감히 말하지 않고, 소신들은 처벌이 무서워 감히 말하지 못합니다. 청컨대 언로(말의 길)를 넓게 열어 좋은 것은 따르고, 혹시 못마땅해도 처벌하지 마십시오.
언로를 활짝 열어 바른 말을 듣고 고쳐야 된다.
간관을 죽이면 어떻게 되나?
신화에서
하나라 용방은 걸왕에게 천벌을 경고하다가
상나라 비간은 주왕에게 음란을 간하다가 살해됐다.
이 둘이 간관의 대표적인 롤모델 이었다. 그래서 왕이 간관을 죽이면 폭군 낙인이 찍힌다.
간관들이 과격해도 되는 이유.
한 성제 때 주운이란 신하가 황제의 검을 빌려서 간신들의 목을 베겠다고 말했다.
황제가 간신이 누구냐고 묻자 주운은
'안창후와 장우 입니다.'
라 답한다. 둘은 황제의 외척이다. 황제가 끌어내라고 하자 주운은
"지하에서 용방과 비간을 만나서 노닐겠다."
라 말하며 난간을 잡고 버텼다. 난간이 부서지자 황제는 약간만 손질해서 주운의 충성을 기억했다.
이 주운의 얘기는 조선에서 일상어가 되어 알뜰하게 써먹혔다. 이 일화를 절함이라고 부른다.
신하는 절함을 언급하며 과격하게 말할 수 있었다.
챕터 2. 간쟁에 대한 임금의 대응법.
납간과 거간이 있다.
납간은 간쟁을 받아들이는 것.
거간은 간쟁을 물리치는 것.
여기도 신화가 있다.
요임금은 헐뜯는 나무를 정하고 비난글을 쓰게 함.
순임금은 간쟁하는 북을 설치함.
탕임금은 간쟁을 거스르지 않았음.
단종 공부 지사 정창손:
국가의 화는 모두 국왕이 간쟁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종 경연 검토관 이창신:
한 사람이 계책을 올렸는데 가납하면 여럿이 다투어 계책을 올려 가언이 숨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임금은 바른말 듣기를 싫어해서 말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합니다.
당 헌종 한림학사 이강:
~~간쟁하는 자가 있더라도, 밤낮으로 생각하고 아침저녁으로 깎고 줄여서, 위에 아뢰는 것은 열에 두셋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임금이 간쟁을 부지런히 구해도 오히려 하지 않을까 걱정인데, 하물며 벌을 주겠습니까?
임금은 간쟁을 무조건 들어야하고 근거가 불확실해도 처벌할 수 없었다.
임금이 간쟁을 무시하거나 막으면 입을 다물고 아첨한다.
챕터 3.어떻게 아첨을 물리치나?
성종 강목 공부 중:왜 당 현종이 연호를 천보로 바꿀 때 말리는 신하가 없었나?
시강관 노공필:이임보가 바른말 하는 신하를 쫓아내서.
송 휘종이 시, 글씨, 그림, 음악 좋아하자 채경이란 간신이 황제의 사치 도움.
권력 독점하고 유능한 인물 삼백 명 붕당으로 몰아 금고함.
결과: 휘종은 아들 흠종과 금나라 포로가 되어 수치스럽게 죽고 북송은 망함.
아첨을 물리쳐라. 작은 아첨이 커져서 큰 아첨이 된다.
서경 상서편 이윤:
거슬리면 대개 도리에 맞고, 내 뜻에 맞으면 대게 도리에 어긋난다.
사기 유후세가 장량:
충성스러운 말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실에 이롭고 독한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 이롭다.
어떻게 충언과 아첨을 구별하나?
답은 마음 공부다.
감공:마음을 거울처럼 텅 비게
형평:마음을 저울처럼 평평하게
두 가지를 하면 저절로 구별된다.
어떤 말이 네 마음에 거슬리거든 반드시 도에 맞는지 알아보고, 어떤 말이 네 뜻에 맞거든 반드시 도에 어긋나는지 알아보라.
챕터 4. 간쟁이 정치에 미친 영향.
성종 때 간쟁을 너무 잘 받아줌. 그러자 대간이 권력을 장악하고 횡포를 부림.
대신은 현실주의자. 대간은 원칙주의자.
그런데 대간이 힘이 너무 세지자 대신은 하고픈 말이 있어도 못 했다.
대간은 자신의 의견을 공론이라 부르고 소수 의견을 낸 자들은 탄핵됐다.
탄핵에 변명을 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고 탄핵된 신하는 스스로 사직서를 내야 했다.
왕은 보통 사직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면 대간들은 총사직을 하거나 복합(연좌 농성)을 했다.
애당초 임금과 대신은 방어만 하고 대간은 공격만 하는 불리한 게임. 승부는 뻔한 일이었다.
성종 25년간 대간의 간쟁은 7170회 있었다.
연평균 287회. 이전 임금 평균의 다섯 배다.
대간의 간쟁은 주로 탄핵이 42퍼센트. 관리 임명에 대한 시비가 28퍼센트.
인사 관련이 총합 약 70퍼센트로 인사권을 위협했다. 그 대상은 주로 고위직이었다.
최고기록
1위 임사홍 140회
2위 한명회 107회
3위 유자광 56회
(이렇게나 알뜰할수가?)
나머지는 다양한 주제가 있었다.
성종 초 지지세력이 없고 어린 왕 성종은 힘을 발휘하려면 기존 세력을 약화시켜야 했다.
그래서 간쟁을 이용해 한명회 등 공신들을 물러나게 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대간들의 힘이 세져서 대간들은 대신들을 우습게 보고 임금의 말도 잘 따르지 않게 됐다.
이것이 연산군이 말한 능상지풍이다. 윗사람을 업신여기는 것.
연산군은 대간들의 간쟁에 최대한 회피하고 미루다가 무오사화, 갑자사화로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폭정으로 망했다.
이 권력 게임은 중종 때도 반복됐는데 임금과 대간이 함께 공신을 억제하다가 대간이 중종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중종 9년 2월 대간이 자질이 부족하다는 명분으로 영의정 송질 및 4인의 교체를 요구했다.
중종은 거부했다.
대간은 하루 5~9회 간쟁하고 매일 사직했다.
복직을 명하면 다시 간쟁하고 또 사직했다.
5월 29일은 하루에 열 번 사직했다.
대간을 제어할 남은 방법은 폭력 뿐이었다. 기묘사화가 일어났다.
이때부터 대간은 권력투쟁의 도구가 됐다.
정리!
1.간쟁은 임금이나 부모에게 하는 바른 말이다.
신하에게는 간쟁할 의무가, 임금에게는 간쟁을 들을 의무가 있었다.
2.간쟁은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을 도구다. 왕의 폭정을 막을 제동장치이다.
3.간쟁은 에둘러 말하기와 과격하게 말하기가 있다.
간관들은 과격하게 말하기를 선호했다.
4.임금은 간쟁을 거부할 수 없었다. 폭군이란 명성을 얻거나 바른 말 하는 신하를 잃을 수 있기 때문.
5.아첨에는 마음공부를 해서 살펴야한다.
마음공부가 되면 군자와 소인을 분간할 수 있다.
6.성종은 위의 이론대로 간쟁을 열심히 따랐지만 대간들이 권력을 잡고 윗사람을 업신여기는 풍조를 만들었다.
재이론
재이란 하늘과 땅의 이변이다.
정상이 아닌 자연현상.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은 인간사에 집중했다.
하늘과 땅은 깊이 의논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나라가 유교를 지배 이념으로 채택하자
유가는 다른 학파의 사상 흡수했다.
음양가의 이론으로 천 지 인을 하나로 연결.
임금이 그 연결축.
그러자 천재지변이 정치적 의미를 띄기 시작함.
1.우주와 인간세상은 같은 기운이고 서로 통한다.
2.하늘은 임금에게 백성을 맡겼다.
3.백성이 힘들면 하늘과 땅이 감응해 재이가 나타난다.
4.재이는 임금에게 하늘의 판결 또는 경고다.
5.임금은 반성하고 잘못을 고쳐야 한다.
6.상서는 성군의 치세에 나타난다. 다른 시대에 나오는 상서는 가짜다.
재이는 왕권을 약화시키는 무기로서 사용됐다.
경연관은 상서보단 재이를 중요시했다.
챕터 1
재이는 왜 생기나?
상나라 때 하늘:
변덕스러운 폭군. 제사나 주술로 대응.
주나라 초 하늘:
최고의 인격신. 재변은 하늘의 꾸지람.
춘추전국시대 하늘:
자연=하늘. 하늘과 인간은 같은 기운으로 연결 됨.
인간의 잘못이 부조화를 부름.
중용:
나라가 장차 흥하려 할 때는 반드시 상서로운 조짐이 있고,
나라가 장차 망하려 할 때는 반드시 불길한 조짐이 있다.
모순이 있다.
하늘이 인격체라면 경고
유기체라면 감응
인격체이면서 유기체일수는 없다.
그러나 학자들은 얼버무렸다.
동중서:하늘이 이렇게 훈계하는 것 같습니다.
송나라 성리학자들은 이 개념을 이어받았다.
천심=민심
하늘이 눈과 귀가 있어서 보고 듣는 것이 아니라,
인민이 보고 듣는 것이 곧 하늘이 보고 듣는 것이다.
일식은 주기적인 현상인데 임금이 뭔 잘못이냐?
주희:임금이 덕이 많으면 일어나야할 일식이 안 일어난다.
난세일 때 재이:경고
치세일 때 재이:분발해라.
난세일 때 상서:가짜
치세일 때 상서:안심하다 망치지 말고 신경 꺼라
조선의 경연관들은 특정 재이가 특정 문제에 연관된다고 안 함.
포괄적으로 대응. 어떠어떠한 게 잘못이라고 콕 찝어서 대응하기 어렵다.
그러나 뭉뚱그려 설명하면 여러가지 개혁이 가능하고 설명도 쉽다.
딜레마!
이 이론을 버리면 왕은 천명(하늘의 명)을 주장할 근거가 없어지고 신하는 임금을 비판할 기회가 없어진다.
연산군:
일식 월식은 상도가 있어서 예측도 하는데 왕이랑 뭔 상관?
답변:
주자가 한 말 되풀이. 임금이 지극히 덕이 있으면 일식 월식이 사라진다.
임사홍은 성종 9년에 흙비가 내렸을 때 재이가 아니라고 주장했었다.
성종의 책임 아니다. 그러자 홍문관, 예문관이 상소. 간신 낙인 찍었다.
왕은 그저 무조건 반성하는 수 밖에 없었다.
챕터 2.무엇을 반성하나?
신화에 상나라 탕왕 때 가뭄이 7년간 계속됐다.
탕왕이 몸소 빌기를
1.정사가 한결같지 않은가?
2.백성들이 생업을 잃었나?
3.궁궐이 화려한가?
4.여자들이 참견이 많나?
5.뇌물이 행해지나?
6.아첨꾼이 많나?
이렇게 정성껏 기도하니 비가 왔다고 한다.
철종 경연 사략 부분.
철종:
"7년간 가뭄인데, 왜 이때 처음 기도했나?"
시독관 조시위:
"탕왕은 7년간 계속 기도했다."
왜 그동안 비가 안 왔냐고 묻지 않고 넘어갔다.
성종 주강 때도 가뭄 대책으로 위 일화를 언급했다.
연산군이 재변에 대응하는 방법을 묻자 검토관 이과가 위 일화의 반성 6가지를 열거했다.
검토관 이과:임금은 마땅히 두려워하고 반성해야합니다. 이를 우연으로 돌리고, 소홀히하면 안됩니다.
시경-운한 편도 본보기였다.
주나라 선왕이 가뭄이 계속되어 이 시를 읊으며
모든 재앙을 자기 한 몸에 내려 달라고 빌었다.
그러자 하늘이 비를 내렸다.
왕이 기도해도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그 기도는 형식적이고 정성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재이에 왕은 공구, 수성해야 했다.
다만 하늘에서 조선은 동북쪽 하늘에 해당한다.
다른 쪽의 재이는 중국 분야니 신경쓸 바 아니었다.
이 이론을 거부한 왕은 연산군과 세조밖에 없다.
상서는 어지간하면 인정 안 했다. 상서라고 인정되도 왕은 자만하지 말고 더욱 두려워해야 했다.
그것이 임금 길들이기에 유용하기 때문이다.
당 태종 때 흰 까치가 침전 근처 홰나무에 둥지를 틀었다. 당 태종은 상서를 보고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흰 까치가 아니라 현인을 얻는 것이 상서라는 것이다.
경연관들은 위 일화를 좋아했다.
챕터 4. 어떻게 반성하나?
1.감선-수라상 음식 감선
2.피전-왕이 정전을 피해 비좁은 곳에서 생활
3.구언-비판과 조언을 구한다.
4.휼형-억울한 죄수가 없게 한다.
5.제사
6.철악-음악을 멀리한다.
7.철시-시장을 닫는다.
이 의례는 성종 이전까지 별거 없다가 성종 때 확 늘었다.
이전 77년간 23회였던 감선을 재위 25년간 22회
실시했다.
이전 17회 실시한 구언을 18회 하였다.
이전 2회 실시한 피전을 15회 했다.
성종 이후 재이 대응법은 표준화됐다. 형식화.
재이가 생기면 임금은 근신하고 피전, 감선, 구언을 했다.
정리!
1.양면성
상서로 칭찬. 재이로 견책.
2.편중성
재이는 중시 상서는 배격. 신하들은 임금 비판.
3.허구성
가뭄, 홍수는 거의 매년 있다. 일식 월식인은 주기적인 현상인데도 경연관들은 이 이론을 버리지 않았다.
절검론
경연관들은 왕에게 세 가지 강령을 가르쳤다.
1.백성을 사랑하고 민생의 어려움을 알아라.
2.백성을 덜 부리고 세금을 덜 거둬라.
3.임금이 앞장서서 절약하고 검소해라.
세가지는 연결된다.
백성을 사랑하면 백성의 삶을 개선해야한다.
유가에서 재물은 총량이 정해져 있다.
국가가 많이 차지하면 백성의 몫이 줄고
국가가 적게 차지하면 백성의 몫이 는다.
백성을 사랑한다면 재물과 노동력을 덜 거둬야한다.
덜 거두면 재산이 부족하다.
그만큼 왕이 절약해야한다.
백성을 사랑하는 치민은 하늘의 명령이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역성혁명의 근거가 된다.
백성=근본
백성=하늘
왕은 궁궐에서 자라 백성의 어려움을 모른다.
경연관들은 백성의 형편을 자주 논의해야한다.
서경 상서 무일 편 주공:안일에 빠지지 말라.
문왕은 허름한 옷을 입고 밭일을 했으며, 새벽부터 한낮까지 밥 먹을 틈도 없이 백성과 함께했다.
시경 칠월 편도 자주 언급.
상서 군아 편:여름에 덥고 비와도, 겨울에 몹시 추워도, 불쌍한 백성들은 원망하고 탄식한다.
유가의 목표는 가볍고 공평한 부세가 목적이다.
그런데 항상 백성의 부담은 늘 무겁고, 재정은 부족했다.
제도를 바꿔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특권층은 부세를 거의 부담하지 않고
관리들은 착취를 심하게 했기 때문이다.
유학자들은 이런 현실을 외면했다.
왕은 모든 일에 사치를 걱정하고 절감해야했다.
임금이 앞장서면 온 나라 사람들이 보고 배우기 때문이다.
신화
절검의 전형은 요와 순의 의식주衣食住였다. 요임금의 집은 띠(풀)로 지붕을 덮고, 그 끝을 가지런하게 자르지 않았으며, 다듬지 않은 통나무를 서까래로 얹었다.
대청은 높이가 3척이고, 흙으로 만든 계단은 겨우 3단이었다. 의복은 겨울에 사슴가죽 옷을, 여름에 칡
으로 짠 옷을 입었다.
음식은 현미와 기장으로 지은 밥과 명아주잎과 콩잎으로 끓인 국을 질그릇에 담아 먹었다.
순임금도 거친 음식을 먹고 거친 옷을 입었다. 몸소 쟁기와 가래를 잡고 농사일에 늘 앞장섰기 때문에, 넓적다리와 정강이에 털이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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