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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기억을 되짚어 보면 즐거운 꿈이 기억에 남은 적은 별로 없다. 찝찝한 꿈, 무서운 꿈, 내 내면이 읽힌 것 같은 괴이한 꿈만이 기억 속에 남아 이따금 나를 소름끼치게 할 뿐이다. 그런 꿈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현실의 나에 대한 모종의 암시처럼 생각되기 때문에, 혹은 때로 현실이 꿈과 같은 방식으로 끔찍하기 때문일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을 읽는 일은 깨지 않는 짙은 악몽 속을 방황하는 일과 같았다. 길지 않은 책이지만 페이지가 쉬이 넘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꿈이 주술사에게 운명으로 읽히듯이, 이 책은 인간의 굴레에 대한 가장 짙은 암시로 내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그는 마치 뱃멀미를 하는 것 같았다. 심하게 요동치는 바다 위에 있는 배를 타고 있는 것 같았다. 물결이 밀려와 나무 벽들에 부딪히고, 복도 저쪽 깊은 곳에서부터 덮쳐오는 물소리처럼 쏴아 소리가 들려오며, 복도가 좌우로 흔들리고, 기다리고 있는 복도 양편의 소송 당사자들이 가라앉았다 솟아올랐다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자기를 안내해가는 아가씨와 남자의 평온한 태도를 더욱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는 그들에게 내맡겨져 있었다. 그들이 그를 놓아버린다면 그는 널빤지처럼 쓰러질 게 분명했다.
이 책을 읽는 과정이 꿈처럼 느껴진 순간이 어디었느냐 하면, 바로 요제프 K가 법정을 찾아가는 대목이었다. 다락방에 위치한 법원의 풍경에 대한 기이한 묘사들은, 분명 처음 보는 공간이지만 본 듯해서 찝찝함과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 오래된 악몽 속의 공간들과 다르지 않았다. 다락방과 법원은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 곳이지만, 카프카가 묘사하고자 하는 비이성적인 악몽의 분위기는 두 공간의 조합으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자연스레 글을 읽는 나는 그곳의 탁한 공기에 답답해하는 요제프 K처럼 묘한 압박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쓰러진 그의 앞에서 직원들이 아무런 동요 없이 자신들의 말을 시작하면 더더욱 혼란스러워져 갔다. 그리고 법원에서 뛰쳐나가는 순간 악몽에서 풀려나는 듯한 기이한 감상까지. <소송>이 법원이라는 공간을 악몽처럼 묘사하는 방법은 데이비드 린치의 연출이 어린이 장난처럼 보일 만큼 기이하다.
...그런 권한은 당신이나 나나 우리 모두가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최고 법원만 갖고 있습니다. 그곳이 어떻게 생겼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며, 또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알려고도 하지 않지요. 우리가 아는 판사들은 피고인을 고소에서 완전히 해방시키는 큰 권한은 갖고 있지 않지만, 고소로부터 느슨하게 풀어주는 권한은 갖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당신이 그런 식으로 무죄 판결을 받을 경우 얼마 동안은 고소에서 벗어나게 되지만, 고소는 그 이후에도 계속 당신의 머리 위를 떠돌다가 상부의 명령이 내려지기만 하면 즉시 효력을 나타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소송의 공간인 법원이 악몽의 공간처럼 묘사되는 것처럼, <소송>에서는 소송 그 자체가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어떤 편집증적인 공포와 괴로움의 산물처럼 보인다. 요제프 K가 변호사를 만나고, 상담을 받고, 화가를 만나서 조언을 듣거나 하면 잠깐은 이 책이 선사하는 악몽에서 깬 기분이 든다. 소송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과 그에 대해 제시하는 해결책들은 꽤나 흥미있게 잘 읽히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 보면 그 해결책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들이 태반인 게 문제이다. 위에 인용한 화가와의 대화 일부분을 보면, 결국 소송에 대해 절대적인 효과를 내는 해결책이란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이 책을 가장 공포스럽고 기이하게 만드는, 동시에 작가 카프카의 심리에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소송의 공간인 법원이 악몽의 공간처럼 묘사되는 것처럼, <소송>에서는 소송 그 자체가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어떤 편집증적인 공포와 괴로움의 산물처럼 보인다. 요제프 K가 변호사를 만나고, 상담을 받고, 화가를 만나서 조언을 듣거나 하면 잠깐은 이 책이 선사하는 악몽에서 깬 기분이 든다. 소송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과 그에 대해 제시하는 해결책들은 꽤나 흥미있게 잘 읽히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 보면 그 해결책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들이 태반인 게 문제이다. 위에 인용한 화가와의 대화 일부분을 보면, 결국 소송에 대해 절대적인 효과를 내는 해결책이란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이 책을 가장 공포스럽고 기이하게 만드는, 동시에 작가 카프카의 심리에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변신>에서 나타난 자신이 어느샌가 무언가로 변해 버릴 수 있다는 막연한 공포감, 또는 요제프 K의 심리를 서술하는 방식에서 드러나는 그가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강박적이고 세세한 관찰들 모두 카프카가 짧은 인생 동안 그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커다란 불안감에 휩싸인 채 살았다는 증거와도 같으며, 소송은 결코 끝나는 게 아니라 길고 긴 노력 끝에 겨우 유예시킬 수 있으며 그조차도 어느 순간 다시 눈 앞에서 다시 시작된다는 말은 그의 그런 불안감이 영원히 해소되지 않는다는 절망적인 선언이나 다름이 없다.
과연 카프카는 어떤 체험으로부터 소송을 이런 공포스러운 이미지에 결부시키려 했는지도 책을 읽는 내내 흥미로운 상상으로 자꾸만 떠올랐다. 실제로 법학 박사학위를 지녔던 그는 당시의 법원과 재판 과정에 대해 꽤나 지식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카프카는 어찌된 영문인지 1년만에 법조계 생활을 접게 된다. 사실 현 시대에 재판, 법정에 관련된 창작물을 떠올리라 하면 대부분이 공명정대한 정의와 가려진 진실을 밝혀내는 일종의 '사이다' 장르의 작품들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100여년 전 법학 박사까지 할만큼 법에 대해 큰 관심과 목표, 혹은 집착일 수도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던 카프카가 실제로 목도한 건 비이성적이고 엉망진창인 과정과 기이한 꼼수가 가득한, 도저히 공명정대한 정의란 게 이루어질 수 없는 난장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요제프 K가 돈과 사업을 다루는 은행원으로써 깔끔한 처리에 집착하는 모습을 카프카의 모습이라고-비록 오독일 수도 있겠지만-투영해 본다면 이런 상상이 결코 틀린 생각처럼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렇게 카프카에게 법은 '공정과 정의'에서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와 불안의 상징'으로 바뀌어 버렸다. 이것이 <소송>의 주요 골자이다. <소송>은 부조리와 악몽으로의 초대장처럼 내게는 느껴진다. 카프카는 글을 쓰는 내내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려, 혹은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의 위에 있는 막연한 불안을 보여주는 눈이 되려 고민을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소송>에서 이야기가 언급되는 하나의 부분이 있다. 신부가 나타나는 대목이다.
문지기의 단순한 성격이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그는 법의 내부에 대해서는 모르고 늘 반복해서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입구 앞의 길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그가 내부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들이라는 것도 유치한 수준이며, 시골 남자에게 두려움을 주고자 언급했던 대상에 대해 자기 스스로도 두려워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아니, 문지기는 시골 남자보다 더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시골 남자는 법 내부의 무서운 문지기들에 대한 얘기를 듣고도 내부로 들어가려고만 하는데, 문지기는 아예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그 점에 대해서는 우리는 아무것도 들은 바가 없습니다.
극중극인 <법 앞에서>는 작가 생전에 출판되지 못한 <소송> 본작과는 달리 이미 공개가 되었던 단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법 앞에서>가 극중극으로써 <소송> 내부에 등장하는 장면은 더욱 기묘하다. 극중극에 대해 분석하고 논의하는 과정이, 극중극을 쓴 작가 자신의 손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작가가 단편을 발표하고 반응을 본 뒤에 작성된 건지. 혹은 반응을 보기도 전에 이미 글을 써 놓고 반응을 유심히 관찰했을지는 나로써는 알 수가 없다. 사실 둘 다 굉장히 소름끼치는 이야기이긴 하다. 어찌되었건 법과, 법을 묘사하는 이야기인 <법 앞에서>, 그리고 <법 앞에서>에 대해 해석하는 신부와 요제프 K의 모습은 어쩌면 벗어날 수 없는 불안과, 불안을 설명하는 이야기인 <소송>, 그리고 그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의 관계가 생각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저 위의 인용구를 옮겨 적고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기묘하게도 저 인용 부분의 문지기가 카프카 본인의 처지를 얘기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문지기는 지나가던 행인을 법으로 초대하지만, 그리고 본인은 이미 들어간 적이 있는 사람이지만 더 깊이 들어갈 생각 따위는, 어쩌면 두 번 다시는 들어갈 생각을 않는다. 그는 조금밖에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설명해야만 하는 사람이고 안내해야 하는 책무를 지닌 사람이다. 어쩌면 여기에서도 카프카가 책을 쓰면서 느낀 자괴감이 드러난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신부가 얘기하듯 이는 모두 어떤 의견일 뿐이다. 글은 글로써 존재할 뿐. 그리고 법은 법으로, 불안은 불안으로 존재한다.
그때 아래쪽 길에서 광장을 향해 나 있는 작은 계단에 뷔르스트너 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가 맞는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분명 비슷한 점이 많았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뷔르스트너 양인지 아닌지는 K에게 전혀 중요하지가 않았다...(중략)
...그래서 그는 그들 앞쪽에서 그 아가씨가 걷고 있는 길을 따라 방향을 잡았다. 그것은 그녀를 따라잡는다거나 그녀를 가능한 한 오래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단지 그녀의 출현이 그에게 주는 의미심장한 암시를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카프카의 장편 소설은 전부가 미완성이고, <소송> 역시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의미심장한 설정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내게 가장 의미심장한 건 <소송>에서 등장하는 여성들의 역할이었다. 그들은 갑자기 요제프 K에게 다가와서 그를 유혹하거나 시선을 흐트러트리는데, 그 발산력이 소송이라는 불안의 구심력으로 빠져들어가는 소설의 이야기를 일종의 천체 섭동 같이 규칙적으로 환기하는 역할을 하는 것만 같다. 주로 등장하는 여성은 요제프 K의 하숙집 옆 방에 사는 뷔르스트너 양과,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는 하녀 레니가 있고 또 인상적인 이들로는 화가의 방 근처의 소녀들, 그리고 미완성된 부분에서야 짧게 언급되는 어머니가 있다.
이들 여성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소송으로 휘말려들어가는 요제프 K의 발걸음을 그 발걸음이 타성에 의한 것이든 자성에 의한 것이든 상관없이 저해한다. 그리고 묘하게도 요제프 K 본인은 소송을 막중하게 생각하면서도 그 방해물일 여성들에게 관심을 쏟는다. 미완성인 <소송>으로는 이 기묘한 인력을 느낄 수는 있지만 설명하기는 어렵고, 실제로 이 글이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설명할 수 있었을지도 잘 모르겠다. 이런 부분들까지 더해서 <소송>은 더 기이한 악몽처럼 결코 해석할 수 없는, 이 글이 말하고자 하는 불안감처럼, 하나의 온전한 글로써 남을 뿐이다.
작중에서 신부가 K 보고 "당신은 기만당하고 있군요" 라고 이야기했듯이 우리도 살아가면서 합리의 탈을 쓴 비합리성에 늘상 기만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아. 좋은 리뷰 고마워
멋진 작품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