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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감상1: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494426&page=1
<햄릿> 감상2: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494427&page=1
10
길든스턴 지나치게 행복하지 않으므로 행복합니다. 행운의 여신이 쓴 모자 위의 단추는 아니지요.
햄릿 그렇다고 그녀의 신발 밑창은 아니겠지?
로젠크란츠 둘 다 아닙니다,9) 저하.
햄릿 그럼 자네들은 그녀의 허리께쯤, 아니면 중간 정도의 호의를 받으며 산단 말인가?
길든스턴 실은, 허리 조금 밑에 살지요.
햄릿 그녀의 은밀한 부분에 산다고? 아, 그건 정말 사실이야, 그녀는 창녀10)니까. 무슨 소식이라도?
로젠크란츠 없습니다 저하, 세상이 정직해진 것 외에는.
햄릿 그럼 종말11)이 가까웠군. 허나 자네들 소식은 진실이 아냐.12) 좀더 구체적으로 물어보지. 여보게 친구들, 운명의 여신으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았길래, 그 여자가 자네들을 이곳 감옥으로 보냈는가?
9)그들이 보편성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뜻한다. 이 대화에서 로젠크란츠와 길든스턴은 시민사회의 모습을 대변한다.
10)여기서 사용된 ‘창녀’라는 단어는 모든 이들에게 베푸는, 모두의 고뇌와 열정을 자신 속에 담고 있는, 폭넓은 사고의 전술(前述)이며, 신성한 의지의 표출이다.
11)정직을 종말과 연관시키는 이 구절은 죽음의 이중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종말’이라는 단어는 죄에 대한 인식과, 죄에 의한 죽음의 결과가 은총과 연관된 개념임을 압축하고 있다.
12) 작중에서 왕과 폴로니어스는 케사르를 대변하는 인물로써 등장하며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구조를 만들어 내지는 못하고 단지 지도(指導)를 행할 뿐인, 헬레니즘시대와 케사르시대의 유복자로서의 권력 보유자로써, 존재하고 있는 구질서의 잔재 속에 자신을 위치시키며, 그들에 대한 복종과 순종을 얻기 위해 구질서를 이용한다. 이 대화상에서 로젠크란츠와 길든스턴은 왕의 충신을 대변하는 입장으로써 오늘날의 시민사회를 대변하고 있다. 세상이 정직해졌다라는 그들의 이기성에서 기인한 거짓된 보편성의 믿음은 여기서 시민사회의 보편성, 즉 국민결의를 뜻하는 것이며, 햄릿은 그것을 착각이며, 환상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보편성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도취된 망각의 동물이며, 급기야 자신의 죄를 잊고 죄에 대한 인식을 전혀 하지 못하는, 보편성의 진짜 의미를 배제하는 이기적이며 겸손하지 못한 노예에 불과하다. 그들은 앞으로 나아가기를 혐오하며,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을 인정하길 거부하고 고착화되어지는 정체(停滯)만을 목적으로 둔 채, 이 땅위에서 자신만의 환상을 축조한다. 구름 위에도 자신과 꼭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는 어리석다. 그것은 이 땅위에서 결코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독선(獨善)이다. 근본적으로 무정부주의적인 그들의 본능에 따라서, 모든 권력은 어떤 악한 것, 비인간적인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확실히 시간 속에서 모든 권력에 내재하는 악에의 유혹은 최후의 날까지 배제할 수 없으며, 그것이 이루어지는 시점은 이곳 땅위가 아니라, 천상 속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세속의 모든 권력을 거부함으로써 이러한 대립을 잠시 회피하고 덜 불쾌한 환영을 좇는 행위는 최악의 비인간성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의미 있는 전쟁을 파괴전으로부터 구별하며, 니힐리즘적인 탈법화(脫法化, Vergesetzlichung)의 백지상태(白紙狀態, tabula rasa)에 대항하여 구체적인 질서를 구출해낼 가능성의 존재 여부를 부정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관념은 이것에 대한 시종일관된 응답이며, 그것은 사회를 생산과정의 위치에 따라서 즉물적으로 구분하기 때문에 경제적 사고에 일치된 관념이다. 이것의 의미는 모든 대표의 부정이야말로 프롤레타리아트적 계급관념의 정신양식에 속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민사회는 이미 아무것도 대표하지 못하며, 오늘날 도처에서 반복되는 보편적인 이원주의에 운명을 맡기게 된다. 즉 시민사회는 자기의 양극성을 노출하고 한편에서는 부르주아지에로, 다른 한편으로는 어떠한 것도 대표할 수 없으며, 고작해야 자기 자신을 대표할 뿐인 보헤미안으로 분열한다. 이와 같은 대표 없는 비형상성은 자기의 상징을 다른 시대로부터 빌리지 않으면 안된다. 기계는 전통을 가져오지 못하며, 구상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러시아의 소비에트 공화국에서 마저도 자기를 상징하는 문장으로서 낫과 망치 이외의 것을 찾을 수 없었다. 이와 같은 영혼없는 기계화는 소여(所與)의 분열(分裂), 이간(離間), 결합(結合)을 필요로 하는 안티테제(Antithese), 하나의 「무차별점(Indifferenzpunkt)」을 가진 외 극성(外 極性), 해결곤란한 균열상태이며, 자기 자신을 부정함으로써 긍정에로 도달하는 이외에는 다른 어떠한 발전도 불가능한 가장 깊은 미결상태이다. 제3자 사이에서 체결된 조약이 중요하다는 국민결의의 논거는 부당전제(不當前提, petitio principii)를 내포하고 있다. 그들의 관념으로는 공동의 공간과 포괄적인 공동의 공간질서가 문제로 되는 경우에 어느 누구도 제3자가 될 수 없다. 간접적인 관계 당사자의 이해(利害)라고 해서 반드시 직접적인 관계 당사자들의 이해보다 덜 강렬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념은 어떠한 조약도 체결할 수 없다. 그것은 유토피아적 환상 불과하다. 이와 달리 오늘날을 지배하는 프로테스탄트적인 이원론에 반하는 가톨릭의 대표의 이념은 자신의 고유한 힘과 존엄을 가지는 것을 표방하기에 이른다. 또한 가톨릭의 대표의 이념은 인격적 권위의 관념에 강하게 지배되기 때문에 대표하는 것도 대표되는 것도 일정한 인격적 존엄을 주장한다. 다만 도덕 신학적이며 법률적인 판단이 그 힘을 그 자체로부터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공간질서로부터만 끌어낸다는 사실이다. 대표의 관념은 결코 물질적 관념이 아니며, 우수한 의미에서 대표 가능한 것은 인격만을 의미할 뿐이다. 더구나 단순한「대리」와는 다르며, 이 대표자는 권위있는 인격이거나, 대표됨으로써 곧 자신도 인격화되는 이념의 어느 것이 된다. 국민결의에 의해서 형성된 법학이 효력을 가지는 기존의 법을 단순히 전달하는 것에 불과한데 대하여, 대표의 이념은 그들과 대등한 권한을 가지는 당사자로서 기존의 법과 교섭하여 새로운 법을 창출한다. 만약 그것이 정치적 지령에서 독립하여 단지 법의 기본원칙에만 따른다면, 정의의 이념에 보다 접근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개개의 국가로부터 독립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있는 것, 즉 대표하는 것을 표방하고 국가와 대치하기에 이를 것이다. 「정의관은 가능한 한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서로 상충되고 갈등적인 입장의 철학적 및 종교적 교리들과는 독립적이어야만 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정치관이란 말하자면 정치적인 것이지 형이상학적인 것은 아니다. 정치적 자유주의는 해당 정치관 그 자체가 의미하는 바를 넘어서는, 어떠한 특정 형태의 형이상학적 또는 인식론적 교리들을 제공하지 않는다(존 롤스, 『정치적 자유주의』, p90)」. 「사회라는 것이 자신의 이러한 일들을 최종적으로 마무리 지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시점은 없다(존 롤스, 『정치적 자유주의』, p101)」. 이러한 위구(危懼)는 모두 주권이라는 개념에서 나오는 것이다. 누가 주권자인가를 결정하는 권력은 하나의 새로운 주권을 의미하며, 이와 같은 권한을 가지는 재판소는 스스로 새질서를 산출할 수 있는 초국가적·초주권적 존재가 될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왕국은 결코 영원한 제국이 아니며, 반대로 자신의 고유한 종말과 현재의 무한히 긴 시간(gegenwärtiger Äon)의 종말에 주의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역사적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하는 기독교의 본질적인 것이다. 기독교왕국의 계속성에 있어 결정적이며 역사지배적인 개념은 억지자(抑止者)의 개념, 즉 카테콘(Katechon)의 실행이다. 여기서 <왕국>은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현재의 무한히 긴 시간의 종말을 저지시킬 수 있는 역사적 세력, 데살로니가 후서(後書) 제2장에 있는 사도 바울의 말에 따라 보유(保有)하고 있는(qui tenet) 하나의 힘을 의미한다. 새로운 질서가 지금까지 존속해온 법적 상태로부터 저절로 도출되지는 않는다. 새로운 질서는 대부분의 경우 기존의 주권자의 의사에 반하여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것으로부터 자기주장의 계기를 통하여 법과 자기주장의 상극이라는 가능성이 생기며, 이와 같은 대표의 이념은 비인격적인 정의 이념 이외에 힘으로 가득찬 자기 고유의 인격을 대표하게 될 것이다. 영광으로 가득찬 권력의 광휘와 정의와의 영원한 길항작용은 그와 같은 표방에서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보편성의 개념은 그 속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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