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햄릿> 감상1: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494426&page=1
<햄릿> 감상2: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494427&page=1
<햄릿> 감상3-1: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494428&page=1
<햄릿> 감상3-2: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494430&page=1
<햄릿> 감상3-3: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494431&page=1
10
햄릿 뭐라고, 그게 어린애들이란 말인가? 누가 걔들을 데리고 있지?22) 생활은 어떻게 꾸려가고? 고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까지만 배우 노릇을 할 건가? 그들이 자라 일반 배우가 된다면―더 나은 대책이 없는 한 그렇게 될 게 뻔한데―자기네 작가들이 그들이 이어받을 직업을 헐뜯게 만든 건 잘못이었다고, 나중에 말하지 않겠어?
로젠크란츠 사실이지, 양편 모두 요란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자극하여 시비걸게 만들어도, 온 나라 사람들이 그건 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동안은 애들 작가와 일반 배우들이 줄거리를 놓고 주먹다짐을 벌이지 않으면, 그 작품엔 아무도 돈①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햄릿 그럴 수가?
길든스턴 아, 저간에 머리싸움이 많이 벌어졌습니다.
햄릿 애들이 승리를 차지했는가?
로젠크란츠 예, 그렇고말고요. 헤르쿨레스에다 짐까지요.
햄릿 별로 이상할 건 없지, 왜냐하면 내 삼촌이 덴마크 왕이니까. 내 부친이 살아 계셨을 때는 그에게 입을 삐죽거리던 친구들이 왕의 초상화 한 점에 스물, 마흔, 쉰, 백 냥의 금화①23)를 내고 있으니 말일세. 허 참, 이건 뭔가 자연스럽지 못한 데가 있어, 학문으로 밝혀내면 알겠지만.
22)누가 어린애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묻고 있다. 어린애들은 아무 것도 모른 채 그들에게 이용당하고, 멍청하게 스스로의 입지를 더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햄릿이 비판하고 있는 대상은 정치적 권력 집단이 아니라, 그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경제적 사고의 형상의 변용(變容)을 의미한다. 그러한 경제적 사고는 기술과 결합하며, 물질의 현실재를 요구한다. 경제적 사고에 대응하는 것은「반사」,「방사」, 또는「반영」과 같은 관념이며, 이러한 표현들의 각각은 물질적 관계와 동일물질이 취하는 형상의 변용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비유에 의해서 관념적인 것은 경제적 사고양식에 고유한 물질세계에로 편입된다. 예컨대 주지하는「경제」사관에 의하면, 정치적 입장이나 종교적 입장은 생산관계들의 이데올로기적인「반영」이며, 이 이론을 그 자신의 척도에 따라서 바로 경제사관에 적용시키게 된다. 우리들은 심리학상의 설명에서 자주「투사」라는 말을 듣는다. 투사, 반영, 반사, 방사, 전달과 같은 비유는 거기에「내재하는 고유한」즉물적 기초를 구한다. 이와 반대로 경제적 사고방식에서 독립되어 있는 정치적 관념인 가톨리시즘은 단순한 경제가치 이외의 것에 기초를 두어야하기 때문에 경제적 사유에서 본다면 비즉물적(非卽物的)이다. 가톨리시즘은 경제의 절대적 즉물성과는 반대로 뛰어나게 정치적이다. 정치의 메카니즘은 자기 고유의 법칙을 가지며, 정치에로 조립된 역사상의 다른 대조직과 마찬가지로, 가톨리시즘도 이 법칙에 따르는 것이다. 16세기 이래 교회「기구」가 점차로 고정되어 온 것, 더구나 낭만주의 사조가 존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이러한 고정화가 나아가고 중세기 이상으로 중앙집권화된 관료제 조직이 된 것, 사회학적으로는「제수이트주의」로서 특정 지워지는 이러한 모든 것들은, 프로테스탄트와의 투쟁 뿐만 아니라 당시의 기계주의에 대한 반항에서도 해명될 수 있다. 17세기에 기계론적 자연관이 생기면서 국가는 권력기구로서 발전하고, 모든 사회관계의 「사물화(事物化)」가 생긴다. 정치는 단순히 경제적인 것 이상인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생산과 소비 이외의 카테고리에 의거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와 같은 사회정세 중에서 교회조직도 장갑차와 같이 점차 확고하고 고정된 것이 된다. 그러나 이 사태는 그것만으로 정치상의 결함이나 노후한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다만 이러한 사태 속에 아직 이념이 숨쉬고 있는가의 여부이다. 어떠한 정치체제도 권력주장의 단순한 기술만으로는 한 세대 이상 존속할 수는 없었다. 정치적인 것에는 반드시 이념이 포함되어 있다. 정치는 권위 없이 존재할 수 없으며, 어떠한 권위도 확고한 파토스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그것은 특수한 타당성과 권위의 요구를 의미한다.
23)경제사관에 속하는 즉물성의 체계가 등장하기 시작했다라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여기서 돈과 금화는 물질적인 개념이며, 이는 프로테스탄트적인 이원론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관념 속에 존재하고 있는 형상의 변용을 의미한다. 현대의 모든 영역은 근원적인 프로테스탄트적 이원주의의 지배하에 있다. 이와 같은 논술이 진행됨에 따라서 이러한 이원주의는 그 다양한 형상들 속에서 여전히 자주 언급되지 않으면 안되게 된다. 그 일반적인 기초는 하나의 자연개념이며, 이것은 기술과 산업에 의해서 변혁된 오늘날의 세계에 이미 실현된 것이다. 오늘날 자연은 돌이나 철이나 유리의 결정이나 거대한 큐비즘을 가지고 지상에 가로 놓인 대도시의 기계적 세계에 대한 대극물로 생각되며, 이 기술왕국의 대립물은 미개의, 어떠한 문명에도 오염되지 아니한 야생의 자연이며, 이 자연은「인간이 참을 수 있는 한도의 고통을 가지고서는 들어갈 수 없는」출입금지 구역이다. 예컨대 보통 행해지는 신학적 논증에서 신은 국왕이 국가를 통치하듯이 세계를 통치한다고 하며, 신은 알지 못하는 중에 우주라는 기계를 조종하는 발동기가 되어 버렸다. 대도회지에 사는 현대인의 상상력은 그 아주 미세한 점에 이르기까지 기술적·공업적인 표상으로 가득차고, 그들은 이러한 표상을 반대로 우주적인 것이나 형이상학적인 것에로 투영하는 것이다. 세계는 이러한 소박한 기계론적이며 수학적인 신화에 대해서 하나의 거대한 발전기가 된다. 이와 같은 세계관에 관한 한, 계급의 상위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속에는 프롤레타리아트적 계급관념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사고 속에 바로 가톨리시즘의 정치이념에 대한 현대의 본질적인 대립이 존재하는 것이다. 경제적 사고가 자신의 객관성, 공정성, 합리성이 자연과학적·기술적 사고방식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가톨리시즘의 이념과 정확하게 모순된다. 로마 가톨릭의 자연관은 인간의 노동에 의해서 합리화되며, 철저하게 기술화된 세계와 문명에 오염되지 아니한 낭만적인 자연과의 이와 같은 분열을 전혀 알지 못한다. 따라서 가톨리시즘의 이와 같은 반대물의 복합체는 경제사관에 의하여 변용되지 아니한다. 이것은 아마 가톨릭 국민은 프로테스탄트 국민과 달리 그 대부분이 농민이며 대산업을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인 사실이다. 왜 적어도 가톨릭 교도는 위그노파나 퓨리탄과 같은 대규모적인 이주가 전혀 없었던 것일까? 그 까닭은 가톨릭 국민이 프로테스탄트 국민보다도 가난하였기 때문이다. 빈곤, 필요, 그리고 박해를 받아서 가톨릭 교도가 이주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향수를 결코 상실하지는 않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