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492377
피네간의 경야 리뷰 (part 1/2) - 추락 다시 추락독갤을 만만하게 보고 폰리뷰 썼었는데(참고: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490975 예비고2... 피네간의 경야gall.dcinside.com여러 차례 빠져나가려는 정신을 애써 붙잡으며 꾸역꾸역 피네간의 경야 리뷰를 썼건만 내게 돌아온 건 실1베행뿐이었다.
뭐가 문제일까 고심하다가 깨달았다.
여기서도 경야를 읽은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 내가 글을 잘 쓰든 못 쓰든, 읽지도 않은 작품 리뷰에 공감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리하여, 본인은 문단 단위로 분석 및 해석을 시도하던 2부 리뷰는 때려치우고, <홀리 모터스>라는 영화와 경야와의 연관성에 주목한 일종의 가이드 리뷰를 해볼 작정이다.
(아래는 증거자료...)
(이렇게 메모하면서 읽고 있었다)
레오스 카락스의 <홀리 모터스>라는 영화를 아시는지? 누-독을 오간다면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일 텐데, 영화를 잘 모르는 독붕이들을 위해 소개하자면,
이렇게 도스토옙스키 닮은 아저씨가 하루 동안 9가지의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영화이다.
왜 갑자기 영화 얘기를 꺼내는가? 이 영화와 <피네간의 경야>가 많은 부분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첫째, 굉장히 난해하다.
둘째, 단편적인 에피소드는 있을지언정 뚜렷한 스토리가 없다.
셋째(이게 가장 중요한데), 형식적으로도 비슷한 면이 있다.
그럼 비슷한 면이란 무엇일까 묻지 않을 수 없게 되는데, 부족하나마 답을 해보자면 다시 세 가지를 들 수 있겠다.
첫째, 끊임없이 움직이는 등장인물들.
둘째, 끊임없이 변화하는 등장인물들.
셋째, 끊임없이 숨(기)는 등장인물들.
상당히 두서 없는 이야기가 될 듯한데, 우선 첫째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자.
1. 움직이다(Move) & 말하다
주인공이 살게 되는(영화 안에서는 '연기한다'라고 표현한다) 두 번째 인생은 모션 캡처 배우이다. 주인공은 아크로바틱하게 움직이기도 하고, (검열삭제)를 하기도 한다. 동작 하나하나에 의미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리는 그가 '움직인다'는 사실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 경야에서도 마찬가지로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는데, 이 움직임은 육체적인 움직임과는 조금 다르다.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힐 수 있는 경야에서는 말이 곧 행동이고 설화 속 이야기가 곧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헛소리를 지껄이고,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핀트가 잘 잡히지 않는 산만한 이야기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코드는 '추락'이다. 1부에서 말했듯 추락은 죄책감과 깊은 연관이 있다. 반면 <홀리 모터스>에서 등장인물들의 끊임없는 움직임은 '상실'을 드러낸다. 가까운 이의 상실, 나 자신의 상실, 마음의 상실. 그러나 이 역시 죄책감과 연관성을 가진다.
후반부 일종의 뮤지컬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 우수 어린 장면에서 우리는 가까운 사람을 상실한 이의 자책감, 꼭 자신이 그 사람을 잃은 원인이 아니더라도 인간이라면 응당 느끼게 되는 종류의 죄책감이 전해져 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홀리 모터스>에서의 끊임없는 움직임, 이곳에서 저곳으로의 움직임을 우리는 죄책감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한 인간의 필사적인 발버둥으로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경야>에서의 끊임없는 헛소리, 장광설을 우리는 마음을 옭아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려는 사투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홀리 모터스>에서는 이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표현할 뿐이지만, <경야>에서는 이 장광설마저도 결론은 추락 이야기로 다다르고 만다는 점을 이 둘의 대조점으로 둘 수 있겠다.
2. 변화하다(Change) & 변신하다
<홀리 모터스>를 난해하게 만드는 일등공신은 리무진을 타고 시내를 돌아다니며 아홉 가지의 다른 인생을 연기한다는 영화의 설정 그 자체일 것이다. 남자는 변화한다. 노파가 되었다가, 살인자가 되기도 하며, 그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약혐 주의)
<경야> 역시 마찬가지이다. 주인공은 죽었다가, 살았다가, 물고기가 되었다가, 인간으로 돌아왔다가 한다. 주인공의 아내 또한 늙었다가 젊어졌다가 하며, 그의 쌍둥이 아들들도 거인이 되었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가 한다. (심지어 이야기를 서술하는 인물마저 3인칭 서술자에서 등장인물 중 한 명으로 바뀌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끊임없이 변신하는 모습 속에서 본래 모습을 찾는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홀리 모터스>에서나 <경야>에서나 이들의 본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름을 제외한 거의 모든 것이 바뀐다. 영속성은커녕 하나의 일관된 성질을 찾기조차 힘들다. 이젠 우려먹기도 지칠 정도로, 죄책감의 코드만이 지독하게 나타난다. 충분히 말했으니 죄책감에 관한 이야기는 넘어가도록 하고, 다른 주제를 찾아보자면 '운율'을 들 수 있겠다. <홀리 모터스>와 <피네간의 경야> 모두 음악적인 리듬을 지니고 있다. 일정한 리듬의 한 챕터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주인공은 다음의 삶으로 넘어간다(홀리 모터스). 일정한 리듬의 장광설이 끝나고 나면, HCE(피네간의 이니셜)을 이용하는 서술이 등장한다(피네간의 경야). 주인공이 연기하는 삶은 매번 달라지고, HCE 알파벳을 빌어 서술하는 내용도 매번 달라진다.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변한다는 사실뿐이다. 모든 것이 변한다, 는 다른 말로 모든 것은 찰나에 지나지 않는 일시적인 장난에 불과하다, 를 의미한다고 비약을 해보자. 그렇다면 이 음악적인 리듬이 설명이 된다. 때가 다가오면, 잠깐 가졌던 것들(일시적인 성질들)은 종언을 맞는다. 지나간 것을 돌아볼 틈도 없이 우리는 새로 다가오는 모든 것에 충실해야 한다.
3. 숨다(hide) & 숨기다
추상적인 이미지가 난무하는 <홀리 모터스>에도 내 감정을 건드린 장면은 존재했다. 임종을 맞는 삼촌과 그를 옆에서 보살피는 조카를 연기하는 부분인데, 정확히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 주지 않아 막연한 동정심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서늘함이 느껴졌다. 연기에 몰두하는 와중 두 배우가 주고받는 대화를 가만히 듣다 보니 소름이 돋았던 것이다.
이 둘은 방금 전까지 눈물을 흘리면서 가지 말라고 애원을 하다가도, 상대방에게 다음 스케줄에 대해 묻는다. 붉은 안경의 평론가가 말하듯, 모두가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이 아픈 삶 또한 누군가 맡은 배역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긴 하지만, 우리 또한 사람을 대할 때 본모습을 완전히 보여주지는 않지 않는가) <경야>의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다. 고도를 기다리며 뺨치게 난해한, 피네간의 쌍둥이 아들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자세히 읽어보면 그들이 자신의 아버지의 실족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상대방이 말을 빙빙 돌려 하는 것에 대해서만 짜증을 낼 뿐 자기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는 제3자의 일인 양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어차피 죽음도 일시적인 현상이고, 다시 살아날 것이니 상관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다만 한 가지 드러나는 태도는 무관심이다. 끊임없이 변화하고(여기서는 모든 등장인물이 변화하니 말이다) 모습을 바꾸는 세상 속에서는, 뭐 아무래도 다 좋다고 생각하게 되고 무덤덤해지는 것이다. '추락'에 대해 서술자가 아닌 사람이 처음으로 언급하는 부분이 이 쌍둥이의 대화 파트다. 누군가에겐 그토록 심각했던 문제인 죄책감과 추락이, 한낱, 또다른 누군가의 말장난거리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정확한지는 모르겠는데, 조이스는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자평했다고 한다. 미치도록 난해하게 썼지만, (추락과 죄책감이라는 코드도 집어넣긴 했지만) 이건 아무 의미도 지니지 않는다. 한낱 유희에 불과하다(이제 알겠는가? 피네간의 경야는 오락용 소설이다...).
아무튼, 정리하자면 이는 삶이라는 연극과 이야기의 이야기이다. 누군가 누군가의 말을 받고, 또 변화하고, 다시 건네받은 이야기를 주무르며 결국은 원점으로 되돌아와, 이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고 외친다.
맥베스의 한 구절로 글을 마친다.
인생은 걸어다니는 그림자일 뿐.
무대에서 잠시 거들먹거리고 종종거리며 돌아다니지만
얼마 안 가 잊히고 마는 불행한 배우일 뿐.
인생은 백치가 떠드는 이야기와 같아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차 있지만
결국엔 아무 의미도 없도다.
실베추
소분추
또 읽고보니까 피네간도 ㄹㅇ 사람 새끼가 못 읽을건 아닌가보네
ㄴㄴ 정신 여러번 나갈뻔함 소분 23배쯤
킹무위키보면 오마주 존나 많고 가장 유명한건 카프카 성이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데 보임?
파트 하나만 읽어서 잘 모르겠는데 성경 오마주는 엄청 던져놓음
결국 '조이스'했다네
애초에 H.C.E.가 "험프티" 침프턴 이어위커의 준말임
차를 타며 항상 독서갤러리를 보고 있는데 영이 제 몸에서 빠져 나갈 것 처럼 희그덕 하며 보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