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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존나 크네
슴살 때 처음 고전을 읽겠다고 셰익스피어, 햄릿을 집어들고 읽었었는데,
수년만에 다시 읽은 햄릿은 상당히 다르게 다가왔음
당시에는 책을 읽고 햄릿인지 나인지 모를 자아의 팽창을 크게 느꼈었고 탁월한 비유에 감탄만 나왔었는데
이제사 다시 읽어보니 내가 경험한 그 자아의 팽창 어디서 기인했고, 그 탁월한 비유들은 어떤 목적으로 나타났는지 알게 되었음.
햄릿을 포함한 거의 모든 인물들은 자신의 속내를 감추고 연기를 하고 있음.
그들은 단지 자신들의 죄악 때문이 아니라, 그 죄악을 감추는 탓에 나타난 표리부동으로 인해 고통받음
그 표리부동을 끊임없이 솜씨 좋게 지적하는 인물이 바로 햄릿이고,
겉와 속의 불일치로 인해 그들의 자의식, 자아는 독자, 관객들이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팽창됨
비대해진 자아는 불일치를 감당할 수 없어 고통 받는 것임
비단 햄릿의 솜씨 뿐 아니라
언행의 불일치, 겉모습과 속내의 불일치, 사회적 규칙과 개인의 욕구의 불일치가 작품 모든 곳에 녹아있고,
그 모든 불일치가 모든 장면 속 모든 인물들의 자아를 팽창시켜, 나는 그 존재를 느낀 것이었음.
그리고 셰익스피어가 쓴 대사들의 통찰력이 비범할 정도의 보편성을 지녔기에
그 당시의 나조차도 그 위대함을 느낌으로나마 알 수 있었던 것임..
그의 대사들은 통찰력과 보편성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예리한 수술칼처럼 죄인들의 치부를 정확히 갈라 속내를 끄짚어 내는데 탁월한 솜씨를 보이는데
그 칼날을 모든 인물에게 들이대 그들의 겉과 속을 뒤집어 보여줌으로서 메타인지적 기능을 만들어낼 수 있었음.
책의 뒷부분에 실린 햄릿 해설에서도 지속적으로 언급하는 극중극, 메타연극적 요소가
이 표리부동과 위선의 폭로를 작품의 모든 층위에 존재하게끔 만들어 준 덕분에
작품 햄릿은 그 자체로 메타적 기능을 가질 수 있었고,
때문에 그의 동료가 남긴 말처럼 셰익스피어는 한 시대의 시인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시인이 될 수 있었음
단지 통찰력과 보편성, 그리고 탁월함만으로는 모든 시대의 시인이라는 명예를 얻을 수는 없었을 것임
왜냐하면, 그것만으로는 결국 잘쓴 비극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러나 햄릿의 메타적 요소, 자아의 팽창을 드러내는 독백과 극중극이
자아라는 절대적 보편 가치를 작품의 핵심으로 이끌어 올렸고,
모든 시대에서, 자아를 가진 모든 이들은 햄릿에 이끌릴 수 밖에 없게 된 것임
대사 한줄 한줄이 압도적인 작품이라 연구하듯이 읽고 쓰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를 끝낼 수 없을 것 같은 작품임..
여석기 선생님께서는 실제 연극 텍스트와 관련이 가장 깊은 판본을 번역 텍스트로 삼으셨다고 하셨는데
뒷부분 작품해설도 연극 작품을 중점으로 해설해주시고 계심
김재남 역본은 좀 더 산문적이라 상화이해가 잘 됬던 반면, 여석기 역본은 좀 더 연극적이라 대사가 더 잘 와닿았던 차이도 여기서 오는 거 같음
연극의 배경 장치를 포함한 배우 설명 등등은 아무래도 배경지식이 없으니 머릿 속으로 거의 그려지는 이미지도 없어 아쉬웠지만
시대에 따라, 배우에 따라, 연출가에 따라 달라지는 햄릿 해석과 연출의 시대적 변화는 재밌었음
기본적인 셰익스피어식 연출부터, 정치 풍자극을 지나 가정의 비극, 자의식의 탐구, 현대의 모습을 투영한 해석까지
참 다양하게 변주 되어온 역사가 있었던 건데
소개된 작품 모두가 햄릿이라는 작품으로서 기능하는 게 놀라웠음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각자의 시대적 개인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해 해석하는 모습에도 감탄을 했지만,
그 수많은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햄릿이라는 작품적 정체성 하나 만큼은 변하지 않는 본질에도 감탄을 했음..
마지막에 실제 연출가들의 대담도 짧게 실려있는데 그거 안 읽었으면 아쉬울 뻔
암튼 잼썻다.
다음 햄릿 3독은 최재서 역본으로 읽어보는 걸로
셰익스피어의『햄릿』은 복수극으로 고안되었다. 그런데 이 복수극의 주인공이자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복수자는 작가에 의해 믿기 어려울 만큼 기이한 방식으로 형상화되었다. 이 기묘한 복수자는 진정한 복수자라기보다는, 거의 그 반대에 가까울 정도로 고뇌에 찬 채 자신에게 부여된 복수 청탁에 대해서도 확신하지 못하는 문제적 인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오직 복수자를 주제화하는 방식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것과 같은 형태의, 전형적인 복수극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 되기에 이르렀다.
복수 청탁뿐만 아니라 복수심마저도 복수자 자신의 성찰 때문에 변질되어버리는데, 여기서 복수자가 거듭하는 성찰이 복수를 수월하게 감행하기 위해 요구되는 실천적 수단과 방도를 궁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복수 자체를 윤리적이고 복잡한 문제로 만들기에 이른다.
극의 형식을 대변하는 극중인물로서, 복수자이자 행위자여야할 복수극의 주인공 스스로가 자신의 성격과 동기에 내면적 변형을 겪게 된다. 우리는 이를 ‘복수자 유형의 햄릿화(Hamletisierung des Rächers)’라고 부를 수 있다.
근데 어디 나오는 글임? 내가 햄릿을 잘 읽어낸 게 맞다는 소린가?
니 본문이랑 비슷한 내용이긴하지. 칼슈미트 <햄릿이냐 헤쿠바냐>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