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네간 대회에 글이 별로 없어보여서 예전에 썼던 거 수정 및 일부 재탕합니다.




스포가 있을 수도 있어


그런데 스포 당해서 어쩔건데?


어차피 피네간은 스포 당해봤자 아무 의미 없는 책인데



책의 첫 장, 첫 챕터는 사실 독서가들에게 가장 친숙한 챕터일지도 모른다.


책과 거리가 먼 이들조차 독서에 흥미를 느끼곤 책 한두장, 혹은 몇 문장을 읽고 도망가는 경우가 많으니까.


1장만 읽는 경우도 많고, 굳이 1장에 대해 쓰는 것은 너무나도 진부할지 모르지만, 본래 첫인상이 가장 중요한 법이다.


경야 또한 마찬가지다. 경야의 1부 1장은 사실 말 그대로 '프롤로그'이자 책 전체의 요약본이다.




1장의 첫 4문단은 여러 분류표에서도 매번 중요하게 단독으로 뽑히는데, 이 4문단이 책 전체의 요약이라서 그렇다.


물론 스포도 아니고, 애초에 경야를 읽고 나면 아 요약본이구나! 하는데 사실 무의미함. 조이스는 변태같이 1장 자체를 요약본처럼 썼으면서 또 다시 첫 4문단을 책의 요약으로 해버림.


첫문단은 국내 유일 번역본에서 '강은달리나니'로 번역한 그 유명한 riverrun으로 시작하는 문장인데 원서에선 첫문장에 소문자로 시작되면서 애초에 '시작'부분이 아님을 암시한다.


<강은 달린다, 이브와 아담 교회를 지나, 해안의 변방으로부터 만의 굴곡까지, 반복되는 큰 마을들을 지나 호스 성과 그 주변까지 우리들을 되돌려준다.>


강이 주어인데 대체 왜 달리는 걸까?


당연하지만 이 책을 끝까지 읽어야 왜 강이 달리고, 우리들을 되돌려주는지 이해할 수 있는데, 스포지만 그냥 바로 마지막 문장 가져옴.


'가는 길, 외롭게, 홀로, 사랑하는 이와, 멀어지며 강은 달린다, 이브와 아담 교회를 지나, 해안의 변방으로부터 만의 굴곡까지, 반복되는 큰 마을들을 지나 호스 성과 그 주변까지 우리들을 되돌려준다.'


강, 혹은 더블린의 리피 강은 이 소설의 메인 히로인 중 하나인 아나 리비아고, 소설 마지막에 아나는 홀로 핀과 헤어지며 강이 바다로 흐르듯 바다로 가야만 한다.

이것만 봐도 알겠지만, 피네간은 씹-비극 눈물이 앞을 가리는 최루성 비극 근친 야설이다.


여러모로 율리시스와 피네간이 대비되는데, 서로 낮과 밤을 다루고, 희극으로 끝나고 비극으로 끝난다는 점에서 변태적일 정도로 대비된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동시에 여동생 근친 야설물을 다루는 변태 조이스는 그래도 근친각은 살아있다! 고 외치듯 한 가지 장치를 내놓는다.

유명한 사실이지만, 피네간은 끝문장과 첫문장이 이어진다. 

이렇게 끝과 첫문장이 이어지면서 이 소설이 끝없이 반복되므로, 강이 바다로 갔다가 다시 순환하듯 이 소설은 무한히 반복된다. 비극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근친각은 살아있다는 뜻이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지만, 다시 밤이 오듯.


첫문장으로 첫문단이 끝나지만, 이미 이야기의 요약은 끝나버렸다.


2,3,4번째 문단도 비슷하다.


사랑의 비올 연주자 트리스탄 경이 북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와서 웰링턴의 반도 전쟁을 치르거나, 성경 속 모세의 일화가 반복되며 그대는 성 패트릭이다 소리를 듣거나,


이 소설의 또다른 주인공들인 핀의 쌍둥이 아들 쉠과 샤운이 소개되거나, 혹은 경야에서 가장 중요한 추락을 상징하는 벼락 소리가 들려오거나.


(이 점은 실제 아일랜드 민요 '피네간의 경야' 내용을 알아야하는데, 피네간이 말 그대로 사다리에서 떨어져서 죽었다가 살아난다는 내용인데 이 사실만 알면 됨)


이 추락에 대한 이야기가 초기엔 침대밑 이야기로 들려오고, 그 후엔 기독교적인 전승으로 내려왔다는 내용까지, 끝없이 조이스는 이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3번째 문단에서 추락과 '바바바달가라타카미나론콘브론투오투운투르바후완스칸투후후루덴투르누크! 벼락 소리를 다루었다면


4번째 문단에선 본격적으로 트리스탄과 이졸데 테마, 그리고 저승 등의 모티브를 강조한다.


 '금하려는 의지를 거스르는 이곳의 충돌은 대체 무엇인가, 동고트족이 서고트족을 목 조르고 있구나! 브레켁 케켁 케켁 케켁! 코악스 코악스 코악스! 우알루 우알루 우알루! 콰우와아!'


이 문장은 그야말로 변태같은 문장이다. '동고트족이 '오스트로고스'라서 oystrygods, 서고트족이 '비시고스'라서 fishygods로 써놓는 조이스식 언어유희에 부랄을 탁치며 웃으면 된다.


브렉켁 코악스 코악스는 아리스토파네스의 '개구리'에 등장한 유서 깊은 개구리 울음 소리 표기다.

저승에 사는 개구리들의 울음소리라 저승 모티브가 바로 보인다.


'포위하곤 폭풍처럼 몰아쳐라. 아일랜드의 일족들이여, 나를 두려워하라! 성 로렌스시여, 구해주소서! 눈물로 무장한 채 두려워하라. 죽여라죽여죽여: 함께, 함께.'


그 후로 본격적으로 경야의 시작, 말 그대로 아직 인류의 역사가 아닌 신화의 시대가 시작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추락과 상승이다. 추락을 위해선 우선 올라가야하고, 추락했다면, 다시 올라가야한다.



 ‘늙은 참나무들은 토탄이 되어 누워있지만, 아직 느릅나무는 재가 잠든 곳을 뛰어넘고 있다. 그대가 추락한다면, 그대는 다시 상승해야한다.’ 



'호호호호, 미스터 핀, 그대는 다시 미스터 핀-어게인이 되리라! 어느 월요일 아침엔, 오, 너는 포도겠지만! 일요일 저녁엔, 아, 그대는 식초가 되고 말 거야! 하하하하, 미스터 펀, 그대는 또 다시 정화되겠지!


 그렇다면 목요일에 이 비극을, 이 지방자치 죄악 사업을 전해주는 사절과 같은 이는 무엇인가? 우리의 카바 신전은 아직도 아라파트 산의 천둥의 증언을 들은 마냥 진동하면서도, 우리는 연이은 세월 내내 듣곤 한다, 천국 밖을 돌진하는 하얀 돌을 달래듯 자격 없는 무슬림 무에진의 돌 같은 합창을. 정의를 찾기 위하여 우리와 함께 남으라.’



월요일엔 아직 포도지만, 너무나도 늦어서 일요일엔 식초가 되어버린다는 조이스의 유우머...


참으로 young하고 mz합니다


동년배들 다 피네간 읽는다!!



그래도 원래 '피네간의 경야' 민요가 있는 만큼, 1장에서 이 민요를 다룬다.


술에 취한 피네간이 사다리에서 추락해서 사고로 죽고, 사람들이 그의 장례 경야에 모였지만, 알콜중독자라서 술냄새 맡고 되살아난다는 내용이다.



 ‘머리가 무거워지자 그의 머리가 흔들렸다. 그곳엔 물론 벽이 우뚝 솟아있었지. 멍청아! 녀석이 사다리에서 헛디뎠군. 젠장! 그가 죽었어. 머저리야! 아몬 신이 그의 류트를 즐겁게 연주할 때엔 마스타바 무덤, 마스타바 무덤을. 전 세계에 보여야해. 


 쪼개졌다고? 내가 봐야겠어! 매쿨, 매쿨, 이럴 수가 그대, 왜 죽었나? 이 피곤한 목요일 아침에? 흐느끼는 그들이 피네간의 크리스마스 경야를 열기로 하자 온 나라의 훌리건들이 경악하며 쓰러지곤 그들의 우울함이. 풍요롭게 흘러넘치도록 울부짖었다.‘


'피네간'은 끝Fin과 다시again의 조합이면서 동시에 아일랜드 영웅 핀 매쿨이고 아무튼 이것저것 다 쓰깠다.


 피네간의 경야는 대체적으로 원본인 민요의 내용을 그대로 따라간다. 사람들은 모여서 슬퍼하고, 그의 생전과 변함없는 모습에 구슬퍼하며 술꾼인 그를 위하여 위스키와 맥주를 준비한다.  


 ‘비록 그의 몸이 뻣뻣히 굳었어도 변함없군, 프리아모스 오림이야! 그는 성실하고 즐겁게 일하는 젊은이였지. 그의 머릿돌을 갈고, 맥주1통을 두드리자고! 요즘 세상에 이런 죄를 또 어디서 듣겠어? 깊은 곳에서부터 먼지투성이 피델리오 서곡을 들으며. 그들은 얼굴이 천장을 바라보도록 그를 침대에 눕혔다. 그의 발밑엔 위스키 한 통을 놓았고. 기네스 한 통은 머리 위에 놓았다.’


 허나 그는 민요에서처럼 곧바로 부활하진 않는다. 한바탕 술에 취한 그의 경야를 찾아온 이들은 피네간의 남은 아내 애니 루니(아나 리비아)의 이름을 연호하며 웰링턴 박물관으로 향한다. 


 사람들은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웰링턴 박물관 이곳저곳, 주로 워털루 전쟁과 관련된 자료들을 구경하며 떠들고, 웰링턴의 이름과 행적은 농담의 소재로 쓰인다. 

웰링턴이 아일랜드 출신이라 그렇다.


 '이쪽이 박물관으로 가는 길입니다. 들어갈 때 모자를 주의하세요! 이제 당신은 윌링돈 박물관에 있습니다. 이쪽은 프러시아의 총이죠. 이쪽은 프랑스. 끝. 이쪽은 프러시아의 깃발과 컵과 접시입니다. 이쪽은 프러시아 깃발을 꿰뚫었던 총알이죠.’


 박물관을 나온 이들이 만나는 것은 한 여자인데, 그녀는 이야기를 나르는 이다. 마치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아나 리비아의 편지를 나르는 우편배달부를 암시하듯, 조이스는 꽤나 긴 문단들을 그녀에 대하여 할애한다.


 '당신이 내게 묻는다면, 내가 답해드리죠. 호! 호! 그리스인들이 다시 일어나고, 트로이인들은 몰락하죠, (그림조차 두 이야기가 있어요) 예측할 수 없는 샛길 속에서,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세상을 도시인들이 거주할 수 있는 방으로 만든답니다. 젊은 여인이 이야기를 나를 때, 젊은 남자들은 집사의 뒤에서 조잘거리라 해요. 그녀는 런던이 잠들 때 그녀의 기사의 의무를 알겠죠. 돈 좀 있나요? 그가 묻죠. 내가 뭐요? 미소 지으며 그녀는 답해요. 그럼 우리 모두 결혼한 앤처럼 되는 거죠, 그녀는 용병이니까.’


 이제 장면은 다시 관에 잠들어있는 피네간으로 향한다. 그러나 아직도 그가 다시 깨어나려면 멀었다. 그러자 이번엔 아일랜드의 역사로 장면은 전환된다.


 ‘그러므로 자신의 넓고 오래된 역사관 속에 있는 우리의 헤로도토스 마몬 리비우스가 4 개의 사실을 말했지, 그러곤 보름이 가까워졌을 때, 바일레 연대기 속 푸른 책에 그걸 적었지, 오늘날 북더블린에서.’


 짤막하게 아일랜드의 몇 역사 기록들이 전개된 후, 이번엔 특이한 대화가 끼어든다. ‘주트’와 ‘뮤트’의 대화인데, ‘주트’는 앵글, 색슨족과 함께 잉글랜드를 찾은 세 번째 게르만 계열 종족이고, ‘뮤트’는 개이자 귀머거리를 의미한다.



 그들의 대화는 역사의 연장선에 있다. 대부분은 조이스식 말장난이지만 끝나곤, 또 다시 진중한 말투로 역사에 관하여 이야기가 시작된다.



 ‘(멈춰) 너, 이 점토 책에 집중해봐, 얼마나 진귀한 표식들이 (제발 멈춰) 이 알파벳 속에 있는데! 너는 (우리와 그대가 이미 끝내놓았으니) 이 세계를 읽을 수 있는가? 모두가 들어본 이야기와 같다. 많은. 민족들과 뒤섞인 민족들. 셰콀 은화. 그들은 살았고 웃었으며 사랑했곤 끝이 나자 남았다. 죄에 의하여. 

너의 왕국은 메디아인과 페르시아인들에게 나누어지리라.’ 



 그대는 이 책-세계-를 읽을 수 있는가? 그들은 살았고 웃었으며 사랑했곤 끝나자 남았다. 죄에 의하여. 


 이 부분은 마치 경야의 핵심과도 같은 부분이다. 과연 이야기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원죄처럼, 모두들 그저 살고, 웃고, 사랑하며 남았을 뿐이다. 


 자연스레 쐐기 문자를 기록하는 점토판에서부터 시작된 글쓰기의 역사는 아일랜드 역사를 기록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성경 속 <다니엘서>에서 바빌론의 왕 벨사살이 왕국이 메디아인과 페르시아인에게 쪼개진다는 문자로 된 신탁을 받았듯, 죄로 인하여 몰락하는 것 또한 필연적이고 기록되어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록된 이야기 중 핵심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일랜드에서 모든 뱀을 쫓아내었다는 성 패트릭(애칭 ‘패디)의 일화다. 뱀은 선악과를 유혹하여 인류를 원죄로 추락시킨 존재다.



 ’쉿! 사방에 뱀이 벌레처럼 득실거리잖아! 우리 더블린이 뱀의 소굴이 되었어. 놈들은 푸른 초원 위의 금지된 사과가 끓는 가마솥 속에서 자라나선, 잉글랜드로부터 우리의 섬으로 왔지, 그러나 패디 위핑햄과 그의 추종자들이 기어 다니는 놈들을 가리키자 물러가곤‘



 그러면서 조이스는 또 다른 우화를 소개하는데, 얄 반 후터와 장난치는 말괄량이의 우화다.



 '늦은 밤, 구석기 시대만큼 옛날 옛날에, 아담이 땅을 갈고, 그의 여인이 물레를 돌렸을 때, 보랏빛 몬테노테 남자가 매일 괴롭힘 당하고, 제일 고귀한 강이 그녀만의 길을 흐르고 있었을 때, 모두가 사랑을 위한 눈빛을 한 채 모두를 사랑하며 살고 있었을 때, 얄 반 후터가 뜨거운 머리를 높이 치켜든 채 자신의 램프하우스에서 차디찬 모두가 손을 이마에 얹고 있었다. 그의 두 작은 쌍둥이, 우리의 사촌인 트리스토퍼와 힐러리는 기름 먹인 천이 깔린 마룻바닥 위에서 인형을 가지고 놀며 그의 사무실, 성, 흙집에 있었다. 하지만 디아뮈드처럼, 그의 성탑 안 여관에 찾아오는 유일한 이는 그의 조카-며느리인 '장난치는 말괄량이(프랭크퀸)'였다. 프랭크퀸은 장밋빛을 취한 채 그녀의 재치로 문과 마주하였다. 그러곤 그녀는 불을 붙였으니 아일랜드는 빛에 휩싸였다. 그리곤 그녀는 문을 향해 예쁜 파리 사람처럼 말했다: 마크 왕 같은 계집애들아, 내가 우편배달부처럼 보이냐? 그러자 그렇게 다툼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문은 그녀, 네덜란드 혈통의 그레이스에게 답했다: 쾅! 그러자 그레이스 오말리는 쌍둥이 트리스토퍼를 납치하여 거친 황무지로 그녀는 달리고, 달리고, 달렸다. 그러자 얄 반 후터는 그녀 앞으로 점잖게 러브콜을 전보로 보내었다: 멈춰라 도둑아 멈추곤 내 에린으로 돌아와라 멈춰라. 

하지만 그녀는 그에게 답했다: 그럴 일은 없어.’



 실제 이 이야기는 아일랜드의 여자 해적이었던 그레이스 오말리의 일화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하는데, 그녀가 더블린의 영주의 조카를 납치했다는 전설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러나 조이스는 이를 피네간식 신화로 바꾸어버린다.


 피네간이 아담이며 아나 리비아가 여신이듯, 얄 반 후터와 장난치는 말괄량이의 이야기는 곧 인간과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투쟁으로 상징화된다. 


 그러나 이러한 다툼의 끝은 살육이 아닌, 아일랜드식 술판이다. 마침내 화해를 한 이들은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두 번째 천둥소리가 또다른 이야기 속에서 나타나게 된다. 바로 가게 문을 닫는 천둥이다.



 ‘그러자 그가 박수를 치며 무례하게  말안장에 손을 올리곤, 명하자 그의 굵은 목소리가 그녀로 하여금 가게를 닫을 것을 말하였다, 머저리. 그러자 멍청이가 가게 문을 닫고 (Per-kodhuskurunbarggruauyagokgorlayorgromgremmitghundhurth-rumathunaradidillifaititillibumullunukkunun!) 모두 자유롭게 마셨다.’



이야기가 끝난 이후 다시 우리는 민요 피네간의 경야로 돌아오게 된다. 



 이제 피네간을 완전히 떠나보내기 위하여 그를 위한 추도사가 진행된다.



 ‘오 행복한 추락이여! 악이 없는 곳에선 선이 나올 수 없도다. 힐과 릴이 한때는 동료 속에 있었으나 저승 명부에 올랐으니 자랑스러워할지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문구를 패러디함으로서 시작되는 이 추도사는 곧 인간의 구원이 있기 위하여 몰락, 원죄가 있어야함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모두가 구원받을 예정이란 축복 속에서 피네간의 죽음을 추모한다.


 그러나 이야기는 원래의 방식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민요 속 피네간의 경야처럼, 술 냄새를 맡고, 죽은 피네간이 관에서 일어서게 된 것이다.



 ‘내 결혼식에 와인을 가져왔나, 신부와 침대를 가져왔나, 내 장례에 울어줄 것인가? 경야라고? 위스키!


 네 영혼 따위 악마에게 팔아버려! 네놈이 내가 죽을 때까지 마신 거냐?


 이제 진정하세요, 피니모어 씨, 제발요. 퇴직연금 받는 신처럼 휴식을 취하고, 제발 밖으로 걸어 다니지 말자고요.’ 



 되살아난 피네간에게 사람들은 경악하며 두려워한다. 그들은 다시 피네간을 저승으로 되돌리기 위하여 그를 설득하기 시작한다. 언젠가 우리 모두 그에게 갈 것이며 이렇게 섭리를 거스르는 것은 구원에 어긋나며 그가 구원받을 것이라는 등등 어떻게든 사람들은 그를 돌려보내려고 하고, 죽었던 피네간의 아내까지 가세하자 다행히도 피네간은 다시 관에 눕는다.



 ‘무덤 위에서 밤이 되자 그녀는 마지막 눈물을 흘린다. 디 엔드. 하지만 언제나 똑같은 방식대로 돌아가는 세상이지. 길과 법을 따른 시간. 애도를 위한 나무나 머리카락은 필요 없어! 알랑거리는 촛불이 출렁거릴 때. 아나-스타시스, 잘 지냈어! 가장 고귀하고 가치 있는 허리군, 아담들과 곧 돈을 낼 소송꾼들인 그 아들들이 말한다, 그녀의 머리가 이토록 갈색이었던가. 그리고 곱슬곱슬하고 물결치네. 이제 넌 영면이나 취해! 핀 더는 그만!’


 ‘이제 넌 영면이나 취해! 핀 더는 그만!’은 신화의 끝남을 알리는 외침이다. 이제 신화 속 피네간은 완전히 죽어 사라졌다. 그렇지만 이제 우리는 역사가 시작되고, 또다른 피네간, 험프티 침프튼 이어위커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다시 반복될 것임이 암시된다.


 이렇게 피네간의 경야의 첫 번째 장은 신화 속 피네간의 끝을 알림으로서 본격적으로 이어위커 일가의 이야기가 또 다시 시작됨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어위커 일가의 이야기는 어떻게 될 것인가?




피네간의 경야를 읽으면 알 수 있다.


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