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네간의 경야는 많은 이들이 뽑는 가장 어려운 소설이다. 어떤 이들은 소설이라 보기를 거부한다. 이렇듯, 피네간의 경야는 제임스 조이스가 만들어낸 문제작이요, 포스트모더니즘의 맹아(萌芽)이다. 피네간의 경야의 가장 큰 허들은 바로 조이스어 이다. 조이스는 수 많은 언어의 단어로 만들어내며 글을 이어나갔다. 그의 천재적인 재능을 17년간 쏟아부었으니 이해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걸 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기 위해 피네간의 경야 주해본과 온라인 주석을 참조하며 노력을 했다. 비록 중간에 그런 것들을 관두고 본문만 읽었지만 어떤 길을 선택하던, 나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실 경야의 내용은 어찌보면 매우 간단하다. 아일랜드 민요인 피네간의 경야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기에 큰 틀에서는 매우 쉬운 소설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그의 세계를 만드는 언어가 수많은 이들에게 외면당할 정도로 큰 장벽을 만들고 있다.
피네간은 처음과 끝이 이어지는 순환 소설이다. 소설의 첫 문장 riverrun은 소문자로 시작되고, 마지막 문장은 a loved a long the로 끝이 난다. 그래서 추락으로 사망했던 던 주인공이 4부 회귀(ricorso)에서 다시 살아 돌아온다. 이 회귀는 어떤 뜻일까? 보편적으로 피네간의 경야는 잠바티스타 비코의 순환 역사를 재현시켰다고 본다. 베케트의 <단테 브루노 비코 조이스>의 제목만 봐도 그가 비코한테서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잠바티스타 비코는 어떤 사람인가? 읽어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으니 넘어가자. 경야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조이스는 동서양을 이 책 안에 최대한 많이 담아내려고 했다는 것이다. 타밀어와 산스크리트어가 등장하기도 한다. 당장 4부 회귀(ricorso)가 성화! sam'dhi로 시작 한다. 이런 피네간을 감히, 잡소리로 분석을 해보픈 마음이 들어, 그 완성되지 않은 초고를 한 번 내어본다.
경야의 앓음다움 초고
피네간의 경야는 매우 복잡하고도 이해 불가한 책이다. 오랜 시간 많은 학자들이 매달리며 그에 대한 분석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퍼즐을 어느 정도 풀었다고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모자란듯하다. 그럼에도 도전을 하는 이유는 그 퍼즐이 아닐까 싶다. 이 퍼즐을 나름대로 풀기 위해 본문은 김종건 교수 <복원된 피네간의 경야> (어문학사,2018)와 내용 이해를 위해 <피네간의 경야 주해> (고려대학교출판부, 2011)을 선택하였다.
0. 추락과 회귀
피네간의 경야를 관통하는 두 단어이다. 추락과 회귀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추락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자. 피네간에서 내포하는 추락의 뜻은 신의 벌과 인간의 몰락으로 해석된다. 주인공의 추락을 암시하는 번개 소리가 있는데 이 소리는 10번에 걸쳐 등장한다. 이는 신의 처벌이기도 하다. 북유럽 신화의 신이던, 성경의 하느님이던 상위 존재의 처벌이 내려진다는 것이다. 이 처벌은 인간의 몰락과도 겹치게 되는데, 성경에서의 원죄로 몰락하는 것(fall), 루시퍼의 추락(fall)으로 피네간 혹은 인류의 몰락/추락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추락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우리는 어떤 한 잡설가의 우주의 개념을 적용해보도록 하자.
1. 추락
세상에는 두 우주가 있다. 쁘라브리띠와 니브리띠. 쁘라브리띠는 동적인 우주이다. 생성과 소멸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우주이며 진행, 진화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니브리띠는 정적인 우주이며, 퇴행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으나 정지된 우주로 본다. 쁘라브리띠는 중력과 반중력이 있어 끝없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계점에서 다시 내려온다. 그렇기에 시간이 한쪽으로만 흐르지 않고, 시작도 끝도 없는 원운동만을 하지 않는다. 양극을 가진 타원형만이 이를 충족한다. 양극을 가진 타원형은 또한 생명을 뜻하기도 하는데, 남성의 성기와 여성의 성기의 모양을 상기시킨다. 피네간에서 가진 추락의 의미는 ‘중력‘으로 아래로 끌어내리는 자연의 운동이다. 그리고 신들은 쁘라브리띠에서 우주적 진동을 하며 생성과 파괴를 끊임없이 하고 있는데, 피네간의 번개는 신들이 내린 처벌이자 모래시계처럼 중력으로 다시 아래로 끌려 내려가는 인간의 몰락이다.
2. 꿈
피네간의 경야는 꿈과 무의식을 표현하려 했다고들 한다. 꿈을 알기 전에 먼저 잠을 알아야 한다. 잠은 쁘라브리띠의 우주에 떨어진 니브리띠의 한 조각이다. 정확히 ‘꿈 없는 잠’이 그렇다. 니브리띠는 흐름이 없는 곳으로 무의식으로 비유되겠다. 이러한 상태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은 꿈이 없는 잠 상태이다. 그러나 꿈 없는 잠 상태가 니브리띠 그 자체인 것은 아니다. 태풍의 눈처럼 흐름이 있는 곳에 흐름 없는 것으로 쁘라브리띠를 지우는 니쁘리띠 인 것이다. 이렇게 꿈 없는 잠을 살펴보았으니 꿈을 다루도록 하자. 인간의 꿈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는 잠에서 이루는 꿈, 그리고 현실의 목표로 두는 꿈이다. 이는 각각 무의식/의식으로
(탈장.....)
3. 회귀
추락을 한 우리 주인공이 다시 돌아온다. 앞서 말했듯이 쁘라브리띠는 중력과 반중력으로 이루어져 있다. 추락은 중력으로 만들어진 일이라면, 회귀는 반중력의 일일 것이다. 이 회귀는 윤회인데, 생성과 소멸을 하는 우주이니 이 순리는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순히 윤회로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잠-꿈 관계에서 보았듯이 니브리띠를 추구하는 묘사들을 뒤엎고 쁘라브리띠의 우주로 되돌아온 것이다. 주인공이 관에서 다시 일어서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추락의 의미와 반대로 인류가 다시 일어선다는 뜻이다. 별들을 보러 지옥(관)에서 올라온 것이며 무한의 순환(추락과 회귀)을 이어나가게 된다. 추락은 위에서 떨어지는 것이고, 떨어졌음에도 다시 위로 올라가는 것이니, 또다시 떨어지고 올라가는 것을 반복해야 할 인간의 앓음다움이다.
조이스어 사전이 있었다면 조이스식 언어유희를 좀 더 앓음답게 즐길 수 있을 텐데 아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