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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순신, 이야기 중국사ㅡ진순신은 시바 료타로와 동시기를 살았던 일본 역사소설의 거목이었다.(동시에 전문적인 사학자기도 했다.) 주로 중국사에 관한 글을 썼고 해당 책은 중국사 5000년을 4천페이지 정도로 축약한 통사다. 이걸 다 읽은건 아니고 총 7권 중 1권만을 골라 읽었다. 후한의 성립에서 남북조 시기 까지의 역사를 다룬 파트였고 평소 관심이 많은 주제였다. 책 두께는 550페이지 정도로 제법 두껍지만 그럼에도 해당역사를 다 다루기엔 많이 축약되었다. 일반대중에겐 개론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역덕에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양질의 도서였다고 생각한다. 가령 유비가 장세평으로부터 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협객의 대의에 감명을 받은 장사꾼의 호의가 아니라 비즈니스적 욕구였다는 해석이 재밌었다. 유비는 평소 말과 개를 좋아하는 고급취미를 갖추었고(동물애호가가 아니라 사냥애호가라는 뜻이다.) 카리스마와 인망이 있어서 주변에 사람이 많았다. 장세평은 이들을 자신의 보디가드로 두고 싶었기에 무기와 말을 줬다는 것이다.

학자 진순신은 대단히 삐딱한 사람인 것 같았다. 마냥 사람에 대해서 좋게 평가하질 않고 그가 가진 한계를 분명히 기술한다. 그리고 겉으로 보기엔 선의로 이뤄진 일들도 속으론 어떤 의도가 있었다고 의심하길 좋아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임용한 비슷하다. 또 역사적 인물들 중심의 기록에 가려진 민중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가령 삼국지를 다루는 부분에서 그는 결코 해당역사가 영웅들의 낭만의 시대가 아니었음을 주장한다. 군벌들의 전쟁을 위한 끝없는 징병과 징세로 후한말 4천만 정도였던 인구는 천만명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유비 같은 귀 큰 놈의 한황실 대의 같은게 과연 얼마나 민중의 마음에 부합한 것이었을까.


전봉준, 혁명의 기록ㅡ저자의 이름은 이이화다. 알 사람은 아는 그런 사람이다. 그는 허균과 동학운동의 연구에 업적을 남겼고 그의 대표작인 한국사 이야기는 만화로도 출간되 백만부는 넘게 팔렸다. 역사의 대중화에 공헌한 바가 있다고 하겠다. 다만 사족으로 몇자 적자면 이사람도 틀린말은 종종 했다. 가령 고려말 왜구가 약탈은 해도 사람은 안죽였다는 식으로 글을 썼는데 지랄이고 존나 잔학무도했다. 전쟁의 승리를 기원한답시고 어린애 하나를 납치해 배를 가르고 내장을 빼내서 그 속을 쌀로 가득채워 제사를 지냈다.(미드소마가 차라리 문명인들이다.) 그밖에 견훤을 자꾸 진훤이라고 고집하는 묘한 언행도 있었다.

아무튼, 사족은 이쯤에서 끝내고. 그는 앞서 말했듯 동학이 전공인 학자였다. 그런 그가 말년에 출간한 책이 바로 전봉준의 평전이었다. 총 페이지는 280이지만 실질적으로 267페이지 정도의 텍스트인데, 동학운동의 시작과 끝에 대해 모두 다뤘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핵심은 다 갖춘 것 같았다. 다소 전봉준에 대한 빠심이 짙게 느껴지는 책이었다. 그는 정말이지 책만 읽으면 이순신 급의 인격과 신통함, 능력을 갖춘 인물이었다. 농민반란을 이끌면서도 부르주아 계층들에 대한 탄압을 자제하려 노력했고, 혹여나 농민군이 백성에게 민폐를 끼칠까봐 '개와 닭을 먹으면 복 날아간다.' 는 거짓말을 치지 않나, 조직 안의 배신자가 자신을 암살하기 직전에 잠에서 깨어 그를 교화시키고, 일본정부에서 조선의 근대화와 그의 목숨구명을 미끼로 회유해도 그는 속지 않고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걸 또 작가가 출처를 다 밝히며 글을 쓰니 아무래도 전봉준이 인물은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는 왜 실패했을까?

일본에 항거하는 조선인이 동학교도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겐 조정도, 관군도, 일본도 모두 적이었으며 민중들 또한 자신의 목숨이 소중한 방관자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외로운 영웅이었다. 불에 뛰어든 의로운 나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