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소전 초기 상당한 궤멸과 그로인한 혼란속에서 탈영병이 숱하게 쏟아져나옵니다
아래는 모스크빈이라는 소련 적군 정치위원의 기록입니다.
---------------------------------------
모스크빈은 7월 15일 처음으로 탈영병을 사살하였다. 그는 서우크라이나 출신이었다.
3주 간의 포격,행군,수면박탈과 테러는 그를 일종의 한계지점으로 이끌었다. 그의 죄목은 동료들에게 항복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총을 쏘지 말자고
설득 했다는 것이었다. 결국에 그는 모스크빈을 대면하게 되었다. ‘내 생각에는 히틀러에게 경례한 것 같았다. 소총으로 받들어 총을 하더니
Scrub?으로 향했다‘ 부대의 다른 우크라이나 출신에게 맡기기엔 너무 심한 일이었다. ‘붉은 군대의 슐야크 일등병이 등 뒤에 총을 쏴서 처형하였다‘
그리고 정치위원이 다가갔다. 죽어가는 병사는 그의 전 동무들에게 심한 욕설을 내뱉었다. ‘독일군들이 네 놈들을 모조리 죽일 거다!‘, 그가 외쳤다
‘그리고 너! 이 피에 쩔은 위원놈! 너부터 목이 매달릴 거다!‘ 모스크빈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나강 리볼버 권총을 뽑고 온 중대가 보는 앞에서
그를 쏴버렸다. ‘병사들은 이해할 것이다, 개는 개처럼 죽여야 한다‘
--------------------------------------------
당시 모든 소련 사람들이 독일군의 침입을 싫어한건 아니었던거 같습니다, 적어도 개전초기까지는요
지금 벨러루스나 우크라이나 지역들의 사람들이나 특히 집산농장에서 차출된 병사들은 스탈린이라면 이를 갈고(드러내진 못하더라도)
프로파간다와는 다르게 왜 싸워야하는지 이유를 못찾고 탈영을 선택한 병사도 많았다고 하는군요
여하간 책은 아직까지는 소련군이 개발살나고 후퇴하는 지점까지 읽었는데, 이후에 반격하는 부분에서 얼마나 달라지는지 궁금해집니다.
일단 지금까지 소련군은 너무 엉망진창이에요 보급도,작전계획도,방한 준비도,하다못해 초급 장교의 자질마저도 심히 떨어지는
오합지졸이라는 설명뿐이네요..
답없는거 맞음. 저때 소련은 파쇼와 마찬가지. 물론 다른 유럽국가들도
마크 마조워의 암흑의 대륙을 읽으면서 환상을 다 깼지요 ㅋㅋ
저때 연합국과 추축국의 차이는 한발자국 더 나아갔냐, 덜 나아갔냐의 차이.
그 한발짝 때문에 유럽은 이미지 세탁 오지게했지. 유럽이 나치나치 거리는거 내로남불 같아서 혐오스러움
저는 독일쪽 서술을 많이 보는데, 개전 초기에 독일은 스탈린에 실망한 군중들이 자발적으로 자기편이 될 줄 알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독일군이 가한 폭력적인 점령작전과 점령지의 횡포가 소련인들이 뭉치게 한거 같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해당 내용은 '구데리안' 자서전의 내용을 인용했습니다.
음 '이반의 전쟁'에도 똑같은 내용이 반복해서 나와요. 독일군도 별 다르지 아니한걸 깨닫고 실망하고, 사람들이 돌아섰고 소련은 그 틈을 타 당시 엔카베데 요원들을 보내서 전선 뒤에서 파르티잔 교육도 시켰다고 하더군요. 애당초 독일은 아인자츠그루펜같은 부대를 운용하고, 콜호스도 고대로 남겨놓고 뭘 바란건지 모르겠습니다 ㅋㅋ
1933년 우크라이나에서 1천만명 정도가 스탈린이 주도한 관제기아에 의해 죽었습니다 - 스탈린은 2년 동안 우크라이나에서 식량을 빼내가고, 다시 보급하지 않아서 일부러 굶겨 죽였습니다 -공식 발표는 400 만명. 비공식 1천만명 또는 2천만명 사망까지도 추산합니다. 그리고 1941년 독소전이 발발합니다. 스탈린이 우크라이나를 일부러 천만명 이상 굶겨 죽이면서 생지옥으로 만들었는데, 불과 6~7년 후 독소전이 터진 것입니다. 독소전 초기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스탈린에게 이를 갈고 있었지만, 독일에게는 별 유감이 없었죠. 더구나 우크라니아는 항상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꿈꾸었고, 19세기까지 우크라이나 귀족 자제들은 독일 사관학교에서 교육받은 경우도 많았습니다. 우크라이나 사람 입장에서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습니다
확실히 왜들 그렇게 탈영했는지 이해가 가네요.. 다음 책은 그 관제기아에 관한 책을 읽을 예정인데 빨리 읽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