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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오천 년 역사에서 고종만큼 평가가 갈리는 군주가 있을까? 순종이 일제에 의해 강제로 즉위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고종은 조선 왕조의 주권을 쥐었던 마지막 왕이었다. 또한 고종은 조선을 손아귀에 넣으려던 여러 외세의 위협에 광무개혁을 시행하고 다른 외세를 끌어들이는 등 나름대로 대응했으나, 이러한 저항이 큰 결실을 거두지 못한 채 일제에게 나라의 주권을 넘겨주고야 만 비운의 왕이기도 했다. 고종이 격동의 시대를 워낙 순탄치 못하게 살았던 군주라 개화기를 전공한 사학자들 사이에서도 그가 시행했던 정책들, 그중에서도 특히 광무개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고종에 대한 평가는 상이하게 갈리는 편이다. 대세의 육중한 흐름을 결국 이겨내지 못한 개혁 군주인가? 급변하는 시대에 끝내 적응하지 못한 봉건 군주인가? 역사에서 고종의 가치관과 의도를 명확하게 단언할 수 있을 만큼의 확실한 정황 증거가 관측된 적이 없다 보니, 고종을 둘러싼 학자들의 주관은 자연스럽게 다른 인물들을 견줄 때보다 강하게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한 사건을 두고 엇갈린 관점의 주변 사료를 인용해 정반대의 결론을 내리는 일 역시 비일비재했다. 오늘날까지도 고종이라는 인물을 가늠하기 위한 연구가 계속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 어떠한 형태로의 의견 합치를 이루지 못했으며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 역시 고종이라는 군주가 어떻게 평가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마음 한편에 계속 품고 있었다. 나는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지만 그만큼 역사를 다른 학문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봐야만 하는 학문이라는 사실 역시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거기에 역사에 대한 내 식견이 부족하다는 점까지 고려해 고종에 대한 서적을 찾아 읽고 판단하기를 여러 차례 유보해왔지만, 어쩌다 대학 교양 수업으로 한국사 관련 강좌를 신청해 들을 기회가 있었고 또 그 강좌를 담당한 교수님께 평소 품었던 고종에 대한 의문을 여쭌 결과 그에게서 고종황제 역사 청문회를 읽어보기를 권유받을 수 있었다. 고종황제 역사 청문회2000년대 초중반에 있었던 고종과 고종 집권 시기에 대한 한 논쟁을 시간순으로 정리한 책이다. 아마 교수님께서는 한 학자의 고종을 바라보는 다소 편향된 시선에만 몰입하기보다는 고종을 둘러싼 복합적인 시선 속에서 자신만의 관점을 한 번 주체적으로 생각해보라는 의도에 그 책을 소개했으리라.



책의 핵심 내용을 살피기 전에, 논쟁에 뛰어들었던 학자들의 대다수가 단 한 사람의 역량으로는 외세에 사사건건 위협받던 개화기 조선의 국운을 되살릴 수는 없었다는 관점에 대체로 동의했다는 점을 먼저 언급하고 싶다. 고종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든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든 간에 상관없이, 또 고종을 능력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든 무능력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든 간에 상관없이 조선이 외세에 집어삼켜진다는 미래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는 것이 공통적인 인식이었다. 이 책은 고종이 어떠한 사람이고 또 어떻게 행동했더라면 더 나은 결과를 맞이할 수 있었을까를 논하는 책이 아니라, 일제가 조선의 주권을 침탈하고 나라를 쥐어짰다는 준엄하고도 슬픈 역사적 사실 아래에서 빛이 바랬던 고종의 의중은 과연 어떠했나를 주목하는 책이라는 점을 꼭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고종은 과연 어떠한 사람이었을까.



고종황제 역사 청문회속 논설의 중심에는 두 명이 있었다. 이태진 전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이하 이태진)가 일본의 조선 강제 병탄이 없었더라면 조선은 자주적 근대화를 성취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내재적 발전론자이며, 내재적 발전론자 중에서도 고종의 역량과 개혁 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학자에 속한다면 설전 상대인 김재호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이하 김재호)는 조선은 이미 내적 성장 여지가 없는 상태였으며 근대 경제성장이 일제강점기에 이루어졌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지지하는 뉴라이트 계열 학자로 분류된다. 분명 논쟁의 중심에 이태진은 고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김재호는 고종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는 명확한 차이점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 둘의 논쟁을 보다 거시적인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이 논쟁은 실상 고종에 대한 논평이라기보다는 그 당시의 대한제국을 근대화를 도모했던 국가라고 봐야 하냐 아니냐를 두고 한 논쟁이라고 봐야 한다. 조선은 근대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을 착실하게 밟고 있었으며 고종은 일본이 아니었다면 분명 유의미한 성과를 이루었을 것이라고 주장한 이태진과 이 시기 조선을 근대를 추구하던 국가라고 볼 수 없으며 망국에는 고종의 책임 또한 크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한 김재호. 이 두 사람의 논쟁은 당시 큰 화제가 되어 과거 식민지 근대화론자들과 관점이 너무나도 달라 건설적인 토론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었던 몇몇 내재적 발전론자들이 식민지 근대화론자들과의 설전에 참여하는 결정을 내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당시 시끌시끌했던 이 두 사람의 설전에 뛰어들어 의견을 피력한 학자들 역시 많았다. 단순히 이태진, 김재호 두 사람의 의견에 지지와 반대를 표한 의견들이 가장 많았으며, 두 사람의 의견에 전면적 내지는 부분적으로 동의하지 않은 채 고종황제에 대해서, 혹은 이 당시 고종과 조선이 근대를 목표로 두고 있었는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 의견들 역시 그에 못지않게 많았다. 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자면 이태진은 내재적 발전론자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의견, 김재호가 근거로 든 통계에 대한 신뢰성이 부족하다는 의견, 이들이 논쟁하고 있는 근대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근대의 의미에 해당하는지 의문이 간다는 의견, 고종 한 사람에게만 집중하기보다는 고종 뒤의 왕권과 정치적 관계에 더 큰 주목을 쏟아야 한다는 의견 등 두 사람의 논쟁만으로는 분명 수면 위에 올라오지 않았을 만한 다각도의 새 관점들이 난무했다. 개중 서영희 교수의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대한제국의 근대화 가능성과 고종의 역량은 무시하면서 일제강점기의 경제성장을 인정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떤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경제성장은 성과물이 고스란히 일제의 손에 들어가 우리에게는 의미가 없는 성장이었는데 강점기 직전 조선의 경제 상황과 일제강점기의 경제 상황을 견주는 저의가 무엇인가라는 의견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백 보 양보해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근거로 으레 내세워왔던 추정치에서 비롯된 통계를 가감 없이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그 당시의 경제성장과 그 성장 이상의 물적, 인적 자원이 수탈당했다는 엄연한 역사를 서로 구별하려고 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준엄한 역사적 사실에서 의도를 배제하려는 시도를 지극히 단순히 바라봤을 때는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을 가져다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사람들과 세력들의 의도와 결과를 의식적으로 배제한 역사적 사실에 어떠한 가치와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설명과 설득은 매우 미흡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결국 이 논쟁은 고종이 그의 비자금을 어떤 곳에 어떻게 쓰려고 했는지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기에 평행선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일제가 고종의 행적이 자주적인 결과를 낳기 전에 고종을 억압하고 제지했기 때문에, 학자들은 자신의 주장을 신뢰도가 다소 떨어지는 주변 문헌들로 뒷받침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논쟁의 발발 시점부터 이 논쟁이 극적인 형태의 합치를 이루는 결말을 기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고종황제 역사 청문회역시 어떠한 명확한 결론이 나지는 못했다. 서면으로만 논쟁을 주고받던 인물들을 한데 모아 서로의 의견을 재확인하는 것에서 그쳤을 뿐이다. 고종을 바라보는 여러 학자의 시선을 소개했지만, 독자에게 따로 어떠한 형태의 결론을 제시해주는 책은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내 독후감을 자평해보자면, 아무래도 내가 고종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을 그렇지 않은 시선보다 강하게 비호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는 고종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 인물 두 사람 중 한 사람인 이태진은 고종을 매우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또 이태진과 주로 논쟁을 주고받았던 이가 뉴라이트 계열 학자인 김재호라는 점 때문에 자연스레 고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더더욱 많은 온정적인 표현을 쏟게 되었기 때문이다. 책 안의 대결 구도가 너무나도 명확한 나머지 주목받지 못했지만. 굳이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입을 빌리지 않더라도 고종을 부정적으로 바라본 학자들 역시 많았다. 이 책은 태생적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자들과 뜻을 달리하면서도 고종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학자들의 주장이 눈에 띄기가 힘든 플롯이었기 때문에, 애초 목적이었던 이 책 한 권만으로 고종에 대한 평가 굳히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고종과 조선은 반외세와 반봉건이라는 다소 서로 상충하는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는 버거운 과업을 떠맡고 있었음은 자명하다. 하지만 또한, 고종의 개혁 방안은 지극히 비현실적이거나 시대착오적인 면을 너무나도 많이 품고 있었기 때문에 개혁 실패의 책임을 오롯이 과격하게 급변한 시대에만 미룰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고종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책을 따로 찾아보도록 하겠다. 내재적 발전론을 지지하는 학자가 쓴 책 중에서도 고종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책이 따로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