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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쁘신 분들은 첫번째 문단과 마지막 문단만 읽으셔도 됩니다. 중요한 부분볼드체로 해놓았습니다.


성경은 신앙과는 별개로 인문학적 교양을 위해서 필수다. 학문의 주류인 서구문명이 성경을 토양 삼아 꽃피었기 때문이다. 한편, 접근성이 좋지 못한 텍스트이기도 하다. 성경의 배경은 무척 낯설다. 이스라엘은 우리로부터 참 먼 나라다. 그래서 고대 이스라엘의 문화·역사적 배경 아래 성경을 연구하는 고대근동학을 배워야 한다. 오늘 알아볼 『구약성경과 작은 신들』은 고대근동학 입문을 위한 교양서이다.

저자는 성경의 두 특성을 보여주며 세간의 오해를 바로잡고 신앙을 깊게 하고자 한다. 두 특성은 수용성주체성이다. 이스라엘인들이 주변 문화를 수용하면서도 주체를 잃지 않으며 성경을 써왔다는 것이다. 작은 민족인 이스라엘은 타국의 큰 신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겸손하게 경청하는 동시에 이 놀라운 민족은 수용은 하지만 수동적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되려 큰 신들 위에 자신들의 신을 세웠다. 그들이 주체를 지켰던 노력을 학계는 이스라엘 특유의 탈신화(Entmythologisierung)라 부른다.

이에 책은 내내 고대근동어를 살핀다. 근동에서 '강하다'로 통용되던 단어가 히브리어에서는 '약하다'로 뜻이 역전된 사례에서 그들이 언어체계에서부터 차별점을 두고자 함이 드러난다. 다른 예로 그 유명한 파리대왕, 바알 즈붑이 있다. 바알은 '주인'을, 즈붑은 '파리'를 의미한다. 본래 바알의 호칭 중 '주불루'가 있었다. 히브리어로 바알 즈불, 영도자 바알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신학자들이 바알을 격하하기 위해 즈불 대신 즈붑으로 바꿔 파리의 주인이라 낮춰 부른 것이다. 탈신화라며 거창하지만 어쩐지 졸렬한 방식이다.

졸렬하더라도 그만큼 이스라엘에게 위협적이었던 바알을 엿볼 수 있다. 이스라엘 신학자들은 성경 전체에 걸쳐 바알의 탈신화를 애썼고, 때문에 저자는 본책의 한 챕터를 '3부 풍우신'으로 바알에게 할애한다. 바알은 젊고 매력적인, 인기 있는 신이었다. 물이 귀했던 근동에서 바알은 비바람을 다스렸다. 더군다나 그의 딸은 이슬이었다. 매년 장마를 겪는 우리에게 이슬은 연약한 모습이지만 고대근동인들에겐 풍요의 상징이었다. 히브리어로 이슬은 '탈'이다. 다윗의 다섯째 아내 '아비탈'은 '내 아버지는 탈'이라는 뜻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인들 사이에도 이슬신 숭배는 깊게 파고들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구약성경은 이슬의 인격을 빼앗고, 이슬이 하느님의 피조물일 뿐이라 누누히 강조한다. 잠언 3장 20절은 '그분의 지식으로 심연이 열리고 구름이 이슬을 내린다.' 말한다. 욥기 38장 28절에서 욥은 '비에게 아버지가 있느냐? 또 누가 탈(이슬방울들)을 낳았느냐?'라 묻는다. 다니엘서 3장 64절은 이슬과 비, 즉 바알의 딸들, 뿐만 아니라 바알까지도(신화에서 바알은 때때로 딸들의 모습으로 현현한다) 창조주 하느님을 찬양시킨다. '비와 이슬아, 모두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히 찬양하여라.'

바알은 메소포타미아의 신일 뿐만이 아니라 '주님'이라는 뜻으로 고대근동에서 일반적으로 신을 부르던 말이다. 소유주의 의미가 강해 물건, 땅, 노예를 가진 주인을 뜻했다. 하지만 성경은 하느님을 주님이라 부를 때 절대 바알이라 부르지 않았다. 권위를 지닌 주인, '아돈'의 어원은 아버지. 야훼 하느님을 '나의 주님', '아도나이'로만 불렀다. 하느님이 우리를 노예처럼 소유한 것이 아니라 업적과 기적을 통해 보여준 사랑에서 비롯한 참된 권위로 우리를 가지는 것이다. 이스라엘인들은 이러한 신중한 단어 선택으로 하느님이 마냥 엄격하고 잔혹한 신이 아님을 말했다. 한국어 성경은 바알과 아돈을 모두 주님으로 번역해놓아 차이를 알 수 없다. 때문에 저자는 자주 히브리어 원문으로 성경을 읽는 중요성을 역설[力說]한다.

잔인한 하느님과 마찬가지로 성경은 독단적이고 배타적이라 오해받는다. 아브라함이 되기 전 아브람은 사제이자 임금인 멜키체덱에게 축복을 받는다. 멜키체덱이 땅을 지으신 하느님, '엘 코네 아레츠'라며 신을 부르는데(창세기 14장 18절), 이후 아브람은 소돔 임금을 만나 같은 호칭으로 제 하느님을 부른다. 이처럼 작은 민족, 이스라엘은 큰 민족들의 문화를 독창적으로 재해석해 주체를 잃지 않으면서 규모와 영향력을 키워나갔다. 저자는 구약성경과 주변민족의 관계를 들여다보면 오해를 풀고 성경이 소통과 성찰을 통해 성장한 책임을 알 수 있다 말한다.

…까지 저자가 가진 교인으로서의 관점에서 쓴 감상이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현재 냉담자인 내게는 야훼는 잔인하고 성경은 오만하다. 아무래도 교양서다보니 평신도들을 대상으로 쓰여져 학문적 사실에 과하게 의미와 교훈을 부여한다. 그게 비약적이게 느껴지기도 했다. 비교인이라면 거슬릴 수 있다. 그래도 고대근동학 입문서로는 손색 없다. 구약성경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독갤에 성경도 읽지 않고 어찌 고전을 찬미하냐며 꾸준히 글이 올라 오길래 도움이 될까 책을 찾아 읽고 감상을 쓰게 되었다. 나는 다음에 저자의 보다 전문적인 전작 『구약성경과 신들』이나, 번역서인 『고대근동의 신화와 성경의 믿음』이나 『고대 근동 문학 선집』을 찾아 읽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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