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앨범 커버 하나 올려두고 이거랑 비슷한 느낌 주는 책 추천해 달라 했을 때 추천받은 책이다.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목 그대로 환상동화들로 가득한 소설이다. 헤세의 단편집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단편집이다 보니 전체적인 내용이나 주제에 통일성을 가지는 책은 아니다. ‘난쟁이’와 같이 일반적인 동화 풍 소설이 있는가 하면 ‘유럽인’같이 당시 이성 중심적인 사람들을 풍자한 내용의 소설들도 있다. 그 중에서 성장, 그리고 과거에 대한 추억에 대한 글들이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헤세 작품은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황야의 늑대 정도만 읽어봤는데 셋 다 성장과 관련된 소설로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헤세는 성장소설 작가로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이 책에서도 그러한 내용이 다수 등장한다. ‘시인’이라는 작품에서는 시에 관해 통달하기 위해 자신의 현실을 버리고 현자를 찾아 떠난 주인공이 등장하고 ‘피리의 꿈’처럼 사람의 인생을 형상화한 작품도 눈에 띈다. 한편, ‘등나무 의자 이야기’처럼 성장에 실패하는 존재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헤세의 작품은 데미안의 초반부에서처럼 유년 시절에 대한 섬세한 묘사, 혹은 그 자체에 대한 동경 등이 드러나기도 한다. ‘아우구스투스’나 ‘마법사의 유년 시절’등이 이러한 경우에 속할 것이다. 둘 다 아직 미성숙한 시절의 환상적인 면모를 보여주며 우리가 어릴 때 체험했던 여러 미지의 경험들, 예를 들면 혼자만 있다고 생각하는 존재나 어른들이 들려주던 이야기에 담긴 신비한 힘 등에 대한 표현이 잘 드러난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
때론 이러한 유년 시절의 그리움에 맞물려 어른 세계에 대한 반감이 책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순수함, 환상과 동떨어진 속물적인 현실을 헤세는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위에서 언급한 ‘마법사의 유년 시절’은 더 이상 어린 시절과 같은 풍경이 보이지 않는 주인공이 이를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통해 작가의 생각을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러한 어른 세계의 대한 반감이 옳다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세계의 보호 속에 순수한 유년 시절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의 맨 마지막에 헤세가 최초로 쓴 ‘두 형제’라는 작품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역시 첫 산문이라 그런지 묘사나 전개가 기존의 헤세의 작품에 비해 약간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어딘가 풋풋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우리가 이러한 동화 풍 소설에서 생각할 수 있는 전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타락해진 주인공은 다시 순수한 시절로 돌아가려고 노력하고, 평화와 사랑에 대해 강하게 주장하고, 어딘가에 오해가 생겨서 누군가 죽기도하고 등등 어딘가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가볍게 헤세가 쓴 동화나 단편들을 보고 싶다면 읽어봄직한 책 정도라 생각한다.
의외로 헤세의 환상성이 강한 단편 소설은 작품이 꽤 여럿 됩니다. 민음사에서 나온 <환상 동화집>+<환상 소설집> 그리고 종문화사에서 나온 <헤세의 이야기꾼> 합치면 대략 윤곽이 나오는데, 단편만 1천 페이지 정도 됩니다. 본래 시인 지망이었고 낭만적인 환상을 좋아하는 작가여서, 작품도 작가 기질과 잘 어울리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