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읽은 젊은 베르터의 고통도 원래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알려져 있지만
베르터, 베르테르 차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슬픔은 고통에 비해 제목이 책의 정서를 다 못나타낸다고 생각하거든
상실의 시대처럼 내용에 맞게 새로 제목 쓸게 아니라면 원래 작가 의도대로 오역 고치는게 맞다고 본다.
베르터, 베르테르 차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슬픔은 고통에 비해 제목이 책의 정서를 다 못나타낸다고 생각하거든
상실의 시대처럼 내용에 맞게 새로 제목 쓸게 아니라면 원래 작가 의도대로 오역 고치는게 맞다고 본다.
난 상실의 시대가 싫다 내용에 맞게 새로 쓴다는 것의 기준이 없으니 불가능
ㅇㅇ 사실 아얘 제목 새로 안 다는게 맞음. 부제 정도면 모를까.
상실의 시대도 오역임?
오역은 아니고 원제가 노르웨이의 숲인데 출판사에서 안팔리니까 제목을 바꿈. 그리고나서 잘팔림
그렇구나 노르웨이의숲이 무너가했는데 ㄳㄳ
독어 공부했던 친구 말론 베르테르의 슬픔이 오역은 아니라던디? - dc App
슬픔은 그 독일어 단어를 나타내기에 너무 좁은 의미라더라
독일어 'die Leiden'이 고통, 괴로움, 슬픔으로 전부 해석될 수 있는 단어지. 젊은 베르터의 경우는 고통보다는 고뇌가 더 적절하다고 봄.
그래? 난 고통이 더 적절해 보이던데...
젊은 베르테르의 비탄 어떠냐
앵무새 죽이기
나는 젊은.이 더 거슬림. '젊은 아무개'란 말을 누가 쓰냐
그럼 한글로 붙일만한 말이 별로 없는디 수식어를 아예 없이야 하나
청춘이라 아픈 베르터
연애의 기억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