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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대 총장을 역임한 영화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는 도쿄대 불문과를 나온 오에 겐자부로의 2년 과후배인데, 당시 교내 잡지에서 습작 소설을 연재하던 하스미 시게히코가 대학 재학 중에 최연소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오에 겐자부로를 질투한 것으로 알려져 있음

영화배우겸 감독 이타미 주조는 널리 알려졌듯 오에 겐자부로의 처남이고 어릴 때부터 절친인데, 하스미 시게히코의 열렬한 추종자라서 강연도 맨날 따라다녔고 초등학생 숙제검사 맡듯 자기가 본 영화를 죄다 보고했다고 함. 하스미의 영화이론에 근거해 찍은 이타미 주조의 데뷔작이 <장례식>인데, 시사회에서 하스미가 보고 나서 “최악이다“ 라고 말한 뒤 둘은 절연. 이후 이타미는 연출 스타일도 바꿔버림. 나이 50에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이후 이타미 주조는 야쿠자에 의한 폭행이라든가, 불륜 스캔들 등으로 순탄치 않은 인생을 보내다 결국 쟈살했는데, 이는 오에 겐자부로에게 엄청난 충격을 줘서 이 사건을 다룬 자전적 소설 <체인질링>의 집필 계기가 됨. 

한편 하스미 시게히코는 처음에는 오에 겐자부로에 비판적 지지를 보내며 <오에 겐자부로론> 등을 집필했고, 오에의 노벨상 수상 무렵에는 완전한 지지로 돌아서게 됨. 반대로 오에는 하스미와 가끔 대담이나 하는 정도의 관계였는데, 이타미 주조의 쟈살 이후로 “오에 겐자부로는 문예지에 하스미 시게히코의 글이 실리면 무조건 쓰레기통에 버린다” 라는 묘한 소문이 퍼짐. 이 소문이 당시에 매우 유명했는지 하스미 본인이 “오에 씨의 글에 비하면 제 껀 잡문이니까요. 버려져도 어쩔 수 없다” 고 언급하기도 했음.

어쨌든 오에와 하스미는 이타미 주조 샤망 이후로는 대담 등도 일절 안하고 하스미 측의 일방적인 구애 외에 오에 쪽에서는 일언반구도 언급이 없었는데,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얼마 전에 오에 겐자부로가 죽었고, 하스미 시게히코는 언론을 통해 추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