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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혜, 「<최필공전>의 핵심어 세 가지: 감화(感化), 군사(君師), 중국원류설(中國源流說)」, 『한국문학과 예술』, 31, 2019
최필공은 의관 출신 중인으로, 원래 천주교 신자였으나 신해박해 당시 정조의 감화를 통해 천주교를 버리고 일반 백성으로 돌아간 인물
『최필공전』은 정조의 명으로 홍양호가 지은 글 원래 최필공은 천주교 신자였으나 정조의 집중적인 감화 정책으로 주변인의 설득과 형벌에도 완강히 저항하던 최필공은 마음을 바꾸어 천주교를 버리고 감화되었으며, 정조는 그에게 녹봉을 지급하여 장가를 다시 갈 수 있게 도와주어 회복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정조의 감화 정책의 성과를 강조한다. (103~105쪽)
두 번째 키워드는 군사(君師)이다. 정조는 자신을 군사로 칭했다. 이는 최필공의 감화 과정에서도 들어나며, 『최필공전』의 집필 의도 중 하나는 ‘군사’로서의 왕의 절대적인 위치와 영향력을 선포하려는 의도에서 이 글이 쓰여졌다. (108쪽) 궁극적으로 저자는 『최필공전』을 통해 군사로서의 자리매김은 결국 이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려는 정조의 정치 방식을 드러냄. (110쪽)
또한 『최필공전』은 중국원류설을 주장하기도 함. 명말청초 인물 황종희가 처음으로 주장한 이론이다. 서양의 뛰어난 과학기술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문화적 자부심을 고양하기 위한 목적으로 ‘중국원류설’이 인기를 얻었다.
이는 천주학에서도 마찬가지로 『최필공전』에도 드러나 중국에 원래 천주학이 있었으나, 성인의 등장으로 정학(正學)이 밝혀졌다는 것이다. 정조 역시 최필공 사례의 천명을 통해 성인처럼 정조의 정치가 전국을 평안하게 할 것이라는 확신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111~114쪽)
정조는 『최필공전』을 통해 맹자가 양주와 묵적과 같은 이단을 물리쳤듯이 자신도 감화를 통해 이단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유학적 자신감을 드러냈다. 또한 자신의 군사론을 통해 왕권을 강화시키고자 했다. (115쪽)
그러나 최필공은 천주교로 돌아가 신유박해 당시 죽음을 당했고, 천주교가 다스려질 것이라 믿었던 홍양호의 예상과 달리 천주교의 교세는 꺾이지 않았다. 이는 역설적으로 정조의 의도와 그에 대한 실패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115~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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