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이 아름다운 소녀였다.




***




우리의 주인공 민오는 평범한 대학생이지만 남들과는 조금 다른 점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도덕적 강박에 시달리며 '그릇됐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


다른 하나는 요즘 들어 '등이 아름다운 소녀'의 등을 미는 꿈을 자주 꾸는 것.



유약한 소녀를 어둠 속으로 밀어 떨어트리는 자신의 행위에, 비록 꿈이지만 민오는 '그릇됐다'는 감상에 괴로워하고 있다.



그리고 또 다시 같은 꿈을 꾸는 민오 앞에 그녀가 나타난다.



"그릇됐다고 생각하면 그만두면 되지 않느냐?"


그녀는 등이 아름다운 소녀였다.


"미얄이다."


그리고그녀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을 민오에게 전한다.


"네가 꿈속에서 여자를 밀던 그 순간, 현실에서도 여중생 추락사고가 발생했다는 말이다."





정말 그릇된 일이 아닐 수 없다.


생면부지의 사람을 다치게 하다니.......



죄책감에 괴로워하고 있는 민오에게 미얄은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자는 동안 꿈을 꾸지 않는 약물이 담긴 주사기를 주는 대신, 자신의 노예가 되라고.


노예가 되어서, 함께 꿈을 죽이자고.



그리고 꿈을 죽인다는 것은 곧.......





***




미얄의 추천을 관통하는 주제는 꿈이다.


여기서 꿈이란 단순히 수면 중에 일어나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의 바람, 혹은 숙원과 같은 것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자 어떠한 꿈을 꾸고 있다.


그 꿈을 자신이란 존재를 지탱하는 기둥으로 삼고 있는 동시에 그들은 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희생할 수 있다.


그것이 자기 자신이든, 타인이든, 심지어 세계조차도.



그리고 미얄과 민오는 그들의 꿈을 죽이려 한다.


인간이, 인간이란 그릇을 벗어나는 꿈을 꾸는 건 '그릇된 일'이기에.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의문을 던져 준다.



타인의 꿈을 부수는 미얄은 어떤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어쩌면, 그녀의 행동이야 말로... 그릇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 리뷰는 그릇된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이 소설은 현재 연재가 중단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본 소설의 작가인 오트슨은 먼 옛날 드림워커라는 사이트에 '갑각나비'라는 소설을 연재한 뒤 장기간 연중했듯이, 이 소설 또한 2019년부터 쭉 멈춰 있는 상태다.



작가인 오트슨에 대해 얘기하자면 괴담, 공포, 미스터리를 다루는 소설가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씹덕인 것은 분명하지만 작가로서의 정체성은 위에 언급한 세 가지에 치중되어 있다.


미얄의 추천은 그런 작가가 쓴 라노벨로, 라노벨로서 읽는다면 어설픈 부분이 꽤나 눈에 띈다.


모에, 이능배, 캣파이트.


'라노벨'하면 떠오르는 캐릭터 상이나 시추에이션이 스토리에 녹아들지 못한 채 군데군데 끼어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트슨의 소설로서는 나름 볼 만한 소설이다. 특히 4권은 어설픈 라노벨 흉내는 그만두고 본인의 강점을 십분 발휘해 집필한 것으로 현재에도 미얄의 추천 중 최고의 파트로 꼽히고 있다.



또 한 가지 더 고평가할 점이라면 한국적 소재를 많이 차용했다는 점이다.


라노벨에 '한국적' 어쩌고 타령은 이미 식은 주제지만, 미얄의 추천이 나오던 시기에는 꽤나 진지하게 고찰하던 주제였다.


오트슨이 선택한 방법은 한국의 설화나 무속신앙을 소설의 모티브로 가져온 것이다.


라노벨적인 서사에 용어만 한국의 것으로 바꾼 것이란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단순히 바꾸는 것조차 못했던 라노벨들을 생각해 보면 고무적인 성과였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지금은 미얄의 추천도 오트슨도 일선에서 물러난 존재가 되었지만 당시의 파급력만큼은 분명 무시할 수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저 시절에는 오트슨만큼이나 본인의 광기와 변태성을 드러내는 작가가 드물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의 변태성을 증명하는 문장을 마지막으로 리뷰를 마치려 한다.


"꿈을 죽이러...... 나를 죽이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