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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 존나 옛날에 적었는데 지금이라도 올려봄...
그리고 원래 다른 커뮤니티에 올릴 생각으로 쓴 글이라서 갑자기 이상한 말 튀어나올 수도 있음.
양해 부탁함.
필자가 처음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필자 본인이 이전에 플레이 하였던 미연시 게임 ‘상사상애 로리타’ 그리고 ‘새끼손가락 약속 로리타’에 크게 감명을 받고 군대에 와서 시간이 썩어나던 차에 ‘국방부에서 서적 구입비도 지원해주니 원조 페도 소설이 그렇게 명작이라던데 한 번 읽어볼까??’ 싶어서 책을 구입한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이 책을 완독하였는데 필자가 상상하던 것과는 그 내용이나 방향성이 크게 달랐으므로 이에 대하여 한 번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감정이나 서술방식에 대해 이야기할 듯 하다.
이 작품은 크게 두 부분(1부와 2부)으로 나뉘어져 있으나 필자는 이를 더욱 세분화하여 네 부분으로 나누었다. 1부는 주인공인 ‘험버트 험버트(가명)’가 소아성애자가 된 경위와 그의 이상성욕 그리고 그의 변태성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과 험버트가 그의 평생의 사랑인 롤리타를 만나게 되는 부분으로 나뉘고 2부는 험버트가 모종의 방법으로 롤리타를 취한 후 그녀를 겁탈하고 그녀와 함께 미국 전역을 유랑하는 부분과 롤리타가 험버트에게서 탈출하고 험버트가 이를 뒤쫓는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이제 각각의 부분에 대해 말해보도록 하겠다.
먼저 맨 첫 번째 부분인 험버트의 변태성은 그냥 이 책 본편의 첫 문장을 보기만 해도 전해진다. 상당히 유명한 문장이고 서브컬쳐 작품들에서도 한 인물의 변태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때그때 알맞게 변형되어 쓰인 바가 있으니 이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에게도 익숙하리라 예상한다. 이 소설의 첫 부분을 그대로 적어보겠다.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혀 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롤.리.타.
아침에 양말 한 짝만 신고 서 있을 때 키가 4피트 10인치인 그녀는 로, 그냥 로였다. 슬랙스 차림일 때는 롤라였다. 학교에서는 돌리. 서류 상의 이름은 돌로레스. 그러나 내 품에 안길 때는 언제나 롤리타였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필자로서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필자는 맨 첫 문장을 보고 주인공의 롤리타에 대한 도를 넘어선 애정과 집착을 엿볼 수 있었고 두 번째 문단에서는 주인공이 롤리타의 키에 대해 묘사했는데(4피트 10인치는 약 147cm라고 한다.) 이를 통해 주인공의 소아성애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으며 그 아래 서술된 묘사된 내용을 통해 롤리타라는 소녀에 대한 집착과, 소아성애라는 주인공의 취향을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어린 여자아이에 대한 집착이라는 험버트라는 인물의 기본 속성을 정리해 강조하며 전달한다고 느꼈다.
이 문장이 나온 이후에는 주인공의 어린 시절과 그 때의 PTSD에 대해 설명한다. 아마도 자신이 소아성애 취향을 가지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었으리라. 그 이후 서술되는 내용은 어린 여자아이가 자신에게 얼마나 매력적으로 비춰지고 얼마나 자신을 흥분시키는지에 대해 열심히 서술한다. 이러한 내용이 담긴 예시는 유자챈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으므로 굳이 그런 표현에 대한 예시를 여기에 담지는 않겠다. 천박한 단어를 조금 고상한 단어로 바꿔주기만 하면 이 책에 나온 문장과 완벽히 같은 문장이 나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여러 감정을 느꼈지만 그 중 가장 돋보이는 감정은 단연 ‘혐오감’이었다. 필자 본인 또한 로리타를 소재로 한 미연시 작품을 많이 해 보았고 그런 작품들을 상당히 즐겼지만 이 책에 묘사된 것 처럼 현실의 아동에 대해 성욕을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제 다음 부분으로 넘어가려고 한다. 그러나 두 번째 부분은 나에게 별 감흥을 주지 못했으므로 바로 세 번째 부분으로 넘어가겠다.
그러나 세 번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 소설의 머리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 책의 형식은 말하자면 회고록의 형식을 띤 소설이다. 그리고 첫 부분에 존 레이 주니어 박사라는 가공의 인물의 입을 빌린 머리말이 등장하는데 이 부분에서 필자는 본 작품의 주인공 ‘험버트 험버트’가 범죄자 신분으로 회고록(이 책의 본편 내용)을 작성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에서 유추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진행되며 철저히 주인공의 입장만을 기술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인 험버트 이외 다른 인물들의 심리상태를 알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현실에서 벌어진 사건들마저 주인공의 입맛에 맞게 수정되어서 기술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부디 이 사실을 인지하고 필자를 따라와주기 바란다.
험버트가 롤리타를 취한 후 그녀를 성적으로 착취하며 그녀를 권리를 박탈하여 마치 죄수처럼 다룬 것은 책에도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필자가 이미 말한 대로 이러한 행위를 당한 당사자-롤리타-의 심리 상태는 알 수 없었을 뿐만이 아니라 주인공인 험버트는 일체의 감정표현 없이 그저 담담히 서술하였기에 독자는 그가 행한 범죄가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망각하게 되고 심지어 공감하게 될 지도 모른다. 사실 필자는 책을 읽으면서 사실 험버트가 롤리타를 강간한 것이 아니라 둘 사이의 동의가 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잠시나마 하였을 정도였다. 그러나 가끔씩, 정말 가끔씩 등장하는 냉소적인 한 문장 때문에 필자는 현실을 자각하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약간의 충격 또한 받았다. 솔직히 이 부분이 이 소설 전체에서 필자가 가장 큰 감명을 받은 부분이었다. 사실 이 부분이 필자가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가장 큰 이유이므로 이 부분을 소설에서 그대로 옮겨보도록 하겠다.
(중략) 이 바보는 내가 보여주려는 신기한 세계보다 시시하기 짝이 없는 영화 나부랭이와 진저리가 나도록 다디단 사탕 따위를 더 좋아했다. 햄버거와 험버거 중에서 고르라고 한다면—틀림없이, 서슴없이—전자를 선택할 것이다.
(중략) 우리는 방방곡곡을 누볐다. 그러나 사실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의 기나긴 여행은 이 아름답고 믿음 깊고 꿈 많고 드넓은 국토를 구불구불한 점액의 흔적으로 더럽혔을 뿐이고, 돌이켜보면 그때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귀퉁이가 접힌 지도 한 다발과 너덜너덜한 안내서, 닳아빠진 타이어, 그리고 한밤중에—밤이면 밤마다—잠든 체하는 내 귓가에 울리던 그녀의 흐느낌이 전부였다.
이런 식으로 이 작품의 텍스트는 한 범죄자의 범죄 행위를 정당화하는 한편 동시에 자신의 범죄행위를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서 독자로 하여금 감정의 큰 낙차를 유발시킨다.
이제 필자가 이야기하고 싶어했던 이야기는 전부 한 듯 하다. 그러니 이제 모든 글이 다 그렇듯이 적당히 끝맺는 말을 하고 글을 끝내도록 하겠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는 본 작품 때문에 생겨 현재 서브컬쳐계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인 ‘로리’ 또는 ‘로리콘’이라는 단어가 주는 인상과는 전혀 다른 매우 무거운 소설이었다. 필자가 이 글에서 묘사한 부분은 그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으며 훨씬 더 많은 재료가 들어있으니 부디 이 소설을 직접 읽어보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 부족한 글을 여기까지 읽어준 독자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바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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