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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좋은 책이나 영화를 보고 순간의 고양감에 취해

다른 사람들이 그 작품에 남긴 리뷰등을 찾아보곤 한다.


리뷰를 읽고 작성자의 다른 인간으로서의 흔적들을 훑으며(갤로그라던지, 블로그의 다른 글이라던지) 

나는 부끄럽게도 '얘는 이 좋은 작품을 읽고 왜 이렇게 살까?' 같은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그 순간의 도취가 잦아들면 

나는 여지없이 내가 경멸했던 리뷰어들과 마찬가지로 

이전과 다름없이 똑같은 나태하고 찌질하고 부족한 삶을 사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내가 리뷰어들에게 내뱉은 병신같은 비난은 사실 나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었던 거다


그래서 진정 인생을 바꿀만한 깨달음이 무엇인지,

그것을 내가 정말 느꼈다면 왜 오늘도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지 말이다


안나 카레리나 마지막 장의 레빈의 깨달음은 그런 내게 위안을 줬다

삶의 의미를 찾기위해 

수많은 책들과 사람들 종교사이를 방황하던 레빈 역시

나름의 내적 깨달음을 얻었지만

여전히 변함없이 서툴게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는 이런 독백을 한다


‘아냐 말할 필요는 없어 이건 비밀이야.

이것은 나에게만 필요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중요한 비밀이야.

이 새로운 감정은 나를 바꾸지도, 나를 행복하게 하지도 않아.

그리고 내가 상상하던 것처럼 갑자기 나를 계몽시키지도 않아.

아들에 대한 감정 역시 마찬가지지.

역시 뜻밖의 선물은 없었어. 믿음인지 아닌지, 난 이게 무엇인지 모르겠어.

하지만 이 감정역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통을 통해 들어와 내 영혼속에 견고하게 뿌리를 내렸어.’


나는 독서가 내게 가져다준 것들을 이 독백보다 더 잘 설명할 자신이 없다.

독서 뿐만 아니라 영화, 음악, 아니 내 인생의 모든 순간 모든 경험들이

내게 가져다 준 깨달음은

 결코 말로 명료하게 표현할 수 없으며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이러한 깨달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따져보거나 반박할 수 없다. 

레빈의 말했듯 영혼속에 견고히 뿌리내릴 뿐이다.


이 깨달음을 지식이나 이론의 형태로 꺼내보려 해봤자

기껏해야 서점에 널리고 널린 자기계발서의 뻔한 문장들만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지점에서 문학의 존재 의의가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진리는 가르쳐질 수 없다는 것.이 깨달음을 나는 일생에 꼭 한번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했다. 그 시도가 바로 싯다르타이다.’


라는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위대한 문학은 가르쳐질 수 없는 것들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으며 그저 아름답게 형상화한다.


안나 카레리나는 시대의 천재 톨스토이가 너무나 섬세하고 예민하고 조심스럽게

그 자신의 삶과 깨달음을 형상화시킨 작품이다. 

너무 너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