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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끔 사람들이 내게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뭐냐고 물어보면 난 어벤져스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다들 엄청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당연한 거다. 남들이 좋아하면 일단 까고 보는 베베 꼬인 특성에다가, 맨날 좆도 이해 안가는 이상한 인문학 책이나 읽고 있다보니 당연히 존나 이름도 못 들어본 예술 영화 같은 게 나올거라 예상했을 테니까. 뭐 사실 어벤져스는 내가 그렇게 좋아할 만한 영화는 아니다. 일단 나는 성격이 존나 꼬여있기 때문에 저런 사나이 간의 연대와 노력 승리 같은 주제의 이야기는 기겁하면서 싫어한다. 게다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 힙스터에요라고 외치는 나에게 어벤져스는 너무 투투투투투메인스트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벤져스를 좋아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어벤져스는 내가 처음으로 영화관에서 본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 내가 본 거라곤 메가마인드나 토이스토리 같은 애니메이션 영화고(별로라는 게 아니다. 지금도 가끔 본다) CG라고 해봤자 디 워 같은 거나 봤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어벤져스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이것이 영화다 라고 외치는 듯한 그 압도적인 광경. 영화관에서 그정도로 압도되는 경험은 이후 한 번도 못 경험해봤다. 내게 있어서 어벤져스는 단순히 히어로 영화가 아니라, 영화가 무엇인가인지 알려준 최초의 영화니까.
그렇게 나는 어벤져스를 보고나서 마블의 팬이 되었고, 내 학창시절은 마블로 가득했다. 친구들이랑 모여서 타노스는 총에 맞으면 죽는지 아닌지로 토론하다 싸움이 나고, 닥터 스트레인지가 존나 쎄다는 어디 블로그 찌라시 같은 거에 낚여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다들 코믹스는 돈 주고 사지도 않는 채 어디 블로그에 있는 내용으로 스스로 내용을 상상하고... 남들이 보면 한심해 보이겠지만, 적어도 그 때의 나와 내 친구들은 진심이었다. 그렇게, 마블은 내 학창시절의 일부가 되었고, 어벤져스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영화가 되었다.
2.
어벤져스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영화라면, 해리포터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책이다. 나는 해리포터 이전까지 딱히 문학을 좋아하지 않았다. 솔직히 고전문학? 초딩이 읽기에 재밌는 건 단 한권도 없다. 자전거 도둑 이딴 노잼 교훈덩어리 스토리 봐서 뭐함.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솔직히 재미로만 따지면 판타지 수학대전도 못넘음ㅇㅇ. 그런 내가 해리포터를 읽기 시작하고, 밤을 샜다. 난 살면서 책을 밤 새서 읽어본 적이 없다. 잠이 많기 때문이다. 근데 이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밤 샜음. 주인공 삼총사는 상상 이상으로 귀여웠고, 마법은 상상 이상으로 멋있었다. 퀴디치는 상상 이상으로 박진감 넘쳤고, 연회는 상상 이상으로 흥미진진했다. 기숙사 배정부터 움직이는 복도, 금지된 숲, 도서관 금지 구역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마법 학교였으니까.
이 때 이후로도 탐닉한 책들은 사실 많다. 댄 브라운, 기욤 뮈소, 베르나르 베르베르, 파울로 코넬료,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대중 소설가부터,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위대한 개츠비, 그리스 비극, 카프카의 장편들 까지 내가 사랑하는 책은 많았다. 그러나, 해리포터는 다르다. 해리는 나와 같이 성장했다. 11살 꼬꼬마 때 호그와트 편지 받고 싶어서 12시 알람 맞춰놓던 그 소년은 벽장 안에 있는 해리의 이야기를 읽었고, 학업 스트레스로 고통받던 때의 청년은 엄브릿지한테서 고통 당하던 해리의 이야기를 읽었다. 나는 해리포터와 같이 자랐고, 해리포터를 꿈꿨다.
학창시절 때, 빗자루 타고 다니면서 혼자서 퀴디치하고, 디멘터랍시고 후드 뒤집어쓰고 놀다가 선생님한테 걸려서 혼나고, 아씨오 소환마법 말하면서 친구한테 물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고, 임페리오 하면서 친구 팔다리 가지고 놀던 나는 진심으로 해리포터를 사랑했다. 20대 초반 때, 신비한 동물사전 보러 가고 스파오 가서 해리 포터 잠옷 맞출 때 역시 나는 해리포터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해리포터는 단순히 재밌는 책, 재밌는 영화가 아닌, 내 학창시절의 일부였으며,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때의 파편이니까.
3.
학창시절 하스스톤에 미쳐서 인생을 바쳤을 때가 있다. 당시에 셧다운제가 있어서 셧다운제 30분전까지 한국섭하다가 셧다운제 걸리기 직전에 미국섭으로 바꿔서 게임할 정도로 진심이었다. 그 때의 기억이 떠올라 오랜만에 하스스톤을 유튜브에 검색해봤다. 내가 고딩 때 잼게 보던 스트리머들 중 하스스톤을 아직까지 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대회는 사라지고, 그 누구도 하지 않는 망겜이 되었다. 물론 하스스톤 생태계가 멈춘 건 아니었다. 투기장 하면서 쓰레기트래쉬게임이라 욕하던 침착맨은 지금 월클이 되었고, 투기장 고수 식빵아재 옆에 입 잘 털던 친구는 지금 200만 유튜버 슈카월드가 되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던 하스스톤 생태계는 아니었다. 갱스 오브 가젯잔을 보며 낄낄대던 그 때의 추억을 책임져주던 사람들은 다들 변했다.
오랜만에 모교 거리를 걸었다. 코로나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가게가 문을 닫고 새롭게 열었다. 20대 초반, 그냥 놀러가고 싶어서 과방에 죽치다 인원 차면 곧장 술마시러 가던 그 시절의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들은 이제 다들 뿔뿔히 흩어졌다. 가게도 사라지고,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도 사라지고, 오직 나만 남았다. 나만이, 이 쓸쓸한 회한의 공간에서 멍하게 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냥 그런 거다.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시절이 있다. 숨만 쉬어도 내일이 기대되던 시절이 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시절이 있다. 그리고, 그 시절의 중심에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책이 있다. 공간은 변한다. 사람은 변한다. 관계는 변한다. 그러나 과거는 변하지 않는다. 다만 희미해져 갈 뿐.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그래서 결코 잊고 싶지 않는 과거를 불러내기 위해 어벤져스를, 해리포터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신비한 동물사전 3가 망작이라고 욕을 먹어도, 롤링 여사의 트윗 때문에 맨날 설정이 바뀌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해리포터를 사랑한다. 아니 사랑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난 오늘도, 해리포터를 읽는다. 이제는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과거를, 나라도 불러내기 위해서. 모두가 퇴장한 그 단톡방에서, 나만은 여전히 그 누구에게도 닿지 않는 연락을 보낸다.
p.s. 이거 사실 라노벨 대회 리뷰 용으로 쓴 건데, 사실 내청코는 내가 다 성장한 뒤에 읽은 책이기도 하고, 뭣보다 라노벨 좋아하는 사람들은 깊이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안된다 뭐 이런 글 읽고 빡쳐서 초고 다 엎고 다르게 써서 대회에 제출했었음. 근데 원래 초고 다시 읽어보니 뭔가 이대로 버리긴 아까워서 변형해서 내가 좋아했던 해리포터로 바꿔서 씀. 그래서 혹시 글 내용중에 약간 앞뒤가 안맞거나, 뭔가 다른 내용이 들어가 있을 수 있으니 그런 거 있으면 댓글로 지적좀.
돌붕인데 개추드림요
오 글 존나 잘 썼네
주최자가 원하는 영국맛 라노벨이 해리콧털 말하는건가?
난 셜록홈즌줄 알앗는데
중딩때 쉬는 시간이 끝난다는 거에 대해서 처음으로 아쉽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재밌게 읽었었는데... - dc App
쉬는 시간 끝나는건 항상 아쉬운거 아님??
찐1따라서 오히려 수업 시간이 좋았다.... 쉬는 시간마다 인싸들 난리 치는 것도 고통이었고 애초에 책 읽는 거 말고는 할게 없다 보니... - dc App
진짜 찐따는 자기 자리 뺏겨서 책 못읽는데 이새끼 가짜네
필력 지린다 - dc App
아직도 돌겜하는 돌붕이 동서남북으로 울부짖으며 개추
아직 탈출 안한거면 지능문제아님?
좋다 - dc App
소름 쫙 돋네 눈물의 개추
지금 청년 세대 중에 해리포터가 어린시절 자체인 사람들 꽤 많을 듯... 나도 그 중 하나임.... 눈물의 개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