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주로 영화 위주로 파오다가 누구나 취미 생활에서 한번씩은 맞는 그 고비를 맞게 되었다.
일종의 병목이라고 해야할지, 매너리즘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그냥 현타라고 해야할지,
그동안 파왔던 그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싹 지루해지고, 아니 그보다는 힘에 부치는 그런 경지가 오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그냥 할수없이, 아니 무너지는 그런 공허함을 안간힘을 써서 붙잡아보려는 듯이 독서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이 글은 그 무너지는 것을 막으려던 안간힘의 부산물이다.
뒤에서 얘기하는 지하로부터의 수기의 화자가 글을 쓰는 명목상 목적처럼, 책을 읽고 잡상이 떠오르고 그 잡상을 어찌할 줄 모르기에 그냥 부질없이, 시간을 때우려고 머리에 뜨는 그대로 적는 글들이다.
1.패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도서관에 있던 책들 중 가장 얇고 가장 기이한 제목을 가지고 있었기에 고른 한편.
그리고 나는 이 선택을 후회하였다.
피터 한트케를 잘 모르지만 권말의 해석을 보니 작가의 특성상 나의 고통은 당연한 듯 싶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인물의 행동들, 미끄러지며 허공 흩어지는 대화들, 의미를 맺으려 노력하나 산산히 터져버리는 주인공의 정신상태, 인물과 엮일 듯 하며 제시되지만 결국은 비껴서는 사건들.
이 모든 것들이 그것도 건조하게 진행되며 참으로 몰입하기 힘든 상태의 경지를 보여줬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작가를 이해하니 어느 정도 말이 되는 것 같다.이다.
한트케는 당시 독일의 사실주의적인 경향에 반기를 들었다고 했고,
해석에서는 이 작품이 자신의 전위성과 그런 사실주의간의 일종의 타협이라고 해석했지만, 내 생각에는 이 작품은 전위성이 더 강한 것 같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소설은 인과관계, 대화, 교훈이나 의미 등 일반적인 사실주의 소설에서는 정석으로 진행될 부분들이 완전히 삐걱거리고 있다.
주인공이 의미를 찾으려고 할 수록 세상(과 소설)은 점차 이해 불가능의 영역으로 빠져나가고, 우리가 소설 속 사건들과 그 인과성을 파악하려고 할수록 우리 역시 주인공과 같은 지경으로 빠져든다.
이는 마지막 장면에서 패널티킥 앞에 선 골기퍼가 키커의 의도를 이해하려 할수록 골이 먹히기 쉬워지는 불안으로 대표되어 나타난다.
결국 소설은 어떤 사회적인 소통 불가능성, 현대 사회의 소회를 비판하는 사회적 목적보다는 (물론 개인적으로) 기존 소설의 작법들과 명확한 사실주의 소설들에 대한 조롱 겸 비판의 의미가 강해보인다.
2.관객모독
패널티킥 이후 이 희곡을 읽어보니 피터 한트케의 주요 소재에 대한 이해를 더 넓힐 수 있었다.
현재 한국에서도 유명한 이 연극의 대본은 그야말로 포스트모더니즘한데
극과 현실의 장막을 집어치워버리고, 희곡이라는 연극의 한 요소 외에는 다른 연극의 구성요소들을 부정해대며, 최후에는 배우와 관객의 위치마저 역전시켜버린다.
역시 사실주의적인 문학에 대한 저항, 언어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이 깊게 녹아들어있는 한편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러면서 패널티킥보다도 더 짧고, 화끈하며, 욕설자치로 끝난다는 것 자체가 이 작품을 패널티킥보다 높게 쳐주게 만들었다.
물론 일단 연극을 한 번 봐야지 싶다.
3.알레프
보르헤스의 유명한 단편집인 픽션들을 전에 한번 읽었으나, 알레프를 읽으면서도 픽션들에 대한 내용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알레프가 더 색다르게 느껴질 수 있었던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이 책은 명목상으로는 단편집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컨셉앨범처럼 연작소설집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첫번째 감상이다.
전체적으로 소설들의 주제가 '모든 것' 이자 '아무것도 아닌 것'인 이중성과 양면성에 관한 것인 면도 이런 통일성에 한 몫을 하며
죽지 않는 사람 바로 뒤에 죽은 사람을 배치하거나, 표제작이자 히브리 문자의 첫 글자인 알레프를 맨 마지막에 배치하는 편집적인 장난 역시 그러하다.
또 아스테리온의 집의 주인공 아스테리온에 대한 힌트가 자기 미로에서 죽은 이븐 하캄 알 보크하리에서 제시되는 등 작품들 간 직접적인 연관성도 강력하다.
이렇게 총체성을 강하게 띄는 이야기들에, 양면성과 총체성을 주제로 삼은 이 소설집을 읽으며 최종적으로 느낀 것은,
참으로 미묘하게도 총체성에 대한 약간은 부정적인 인식이었다.
대부분의 작품들에서 '모든것'(또는 양면성)의 상태에 도달한 자들은 거의 '신의 글'에서처럼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거나 아무것도 아닌 것의 상태에 도달한다.
표제작 알레프에서의 주 관찰 대상(이름이 기억 안난다)조차 알레프를 읽고 쓴 시는 우리와 화자에게 별 감동을 안겨주지 못했고말이다.
이처럼 전 작품집에서 완전한 초월의 상태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구심을 보이는 듯 하며,
이는 장자의 호접지몽 일화에서 "나비와 장자 사이에 구분이 있을 것이다"라고 적힌 것을 떠올리게 하였다. 즉 최소한의 구분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마 포스트모더니즘의 거두이면서도 보르헤스가 보인 보수적인 태도가 이런 면에서 기인하는 건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물론 보르헤스 작품들이 그렇듯(또 물론 나는 두 권밖에는 안 읽었지만,) 저자의 박식한, 그리고 현란한 인용과 가짜,진짜 주석들은 독자를 지치게 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위에서 언급한 여러 특성들 덕분에 생각하면서 잘 재미있게 읽었다.
4.에드가 앨런 포 단편선
역시 어렸을 때도 많이 읽었던 소설들이지만 머리 좀 굵고 읽어보니 명불허전이다.
공포소설의 대가라는 평 답게 검은 고양이, 아몬티야도 술통, 구덩이와 추, 적사병의 가면은 여전히 문체로나, 내용으로나 무시무시했다.
그럼에도 이번에 소설들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단편들은 새로 읽은 도둑맞은 편지와 리지아였다.
도둑맞은 편지는 추리소설가로의 포의 면모를 잘 볼수 있었던 수작이었다.
그동안 수업에서 들었던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으면 그 사람의 표정을 짓고 떠오르는 생각을 기억하면 된다"는 구절이 어디서 나왔나 궁금해했는데 여기에서 나왔다.
셜록홈즈처럼 안락의자 탐정의 진수를 보여주는데 사실상 추리와 해결을 거의 원큐에 끝낸다는 점에선 홈즈보다 나은 면도 있으려나?(홈즈팬들에겐 ㅈㅅ)
리지아는 실제로도 작가의 대표작으로 많이 꼽힌다는데 그런 표현이 이해가 갔다.
포의 문체로 어딘가 퇴폐적인 면이 있는 리지아의 수상쩍은 외모 찬양부터 시작해서, 그녀의 의지가 타오르는 임종 장면, 무언거 기기묘묘하면서도 매혹적인 신혼방의 묘사, 그리고 광란의 최후까지.
매혹적이면서도 으스스한 포의 정수가 담겨있다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소설들을 다 읽고서 머리에 남는 포 소설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소설의 화자들이 비이성적인 상황에 직면해서는 지극히 이성적으로 표현, 묘사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작품집 말미에 역자의 해설에도 지적된 이 특징은 해설의 견해처럼 낭만주의와 합리주의의 결합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이런 소설 속 화자들이 결국은 비이성적 상황에 굴복하고, 소설 속에서 스스로 비이성적인 면을 드러냄으로 인하여, 이성과 합리성을 더욱 철저히 조롱하는데 뜻이 있다고 보여진다.
5.지하로부터의 수기
독서 갤러리 덕분에 문예출판사 번역본으로 잘 읽었다. 땡큐!
가장 공감하고 비웃고 연민하면서 읽은 소설이다.
주인공 이 지하 방구석폐인새끼가 휴학하고 빌빌대는 나하고 비슷한 면이 있어서일까?
그가 설파하는 의욕의 상태, 즉 이상에서 벗어나고 스스로를 배반하며, 막상 자유가 주어지면 빌빌댄다는 그의 개똥철학 인간론에 약간은 공감해서일까?
친구들 모임가서 찐따새끼마냥 찌질대는 모습
그러면서도 속에서는 은근히 가까운 근미래 중국 후배 아Q마냥 정신승리를 시전하는 모습
그러면서도 이 모든 것을 깨닫고 결국은 다시 또 자기혐오로 침잠하는 모습이 낮설지 않아서일까?
1부의 악명속에서도, 그런 면들을 찾아내고 비교하면서 읽었기에 패널티킥보다도 수월하게 읽어넘길 수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 또 빌빌댄다는 느낌이 강하게 찌를 때면, 다시 읽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반면교사와 스승 그 중간을 생각해야겠다.
도스토예프스키 다른 장편들은 생각이 나면 읽어봐야지. 분량 덕분에 엄두가 잘 안난다.
뭐, 일단은 이정도 읽었다.
지금은 오헨리 단편선을 사서 조금씩 읽는 중이다. 그의 반전 스토리는 지금은 약간 흔한 것이 되었을지 몰라도 그의 서술 스타일은 맘씨 좋은 아저씨가 구전동화 읽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김승옥 작가의 무진 기행 역시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책장을 썩히고 있었는데 읽어봐야겠다.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도 약간씩 읽고 있는데 주로 도시를 상상하며, 명상하듯 느리게 읽어나갈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SF를 탐독할 때 사두고 그 시기가 글 첫머리에 언급했던 것처럼 짜게 식어버렸기에 못 읽었던 낙원의 샘도 읽어야겠다.
그럼 모두 즐거운 독서 하시길!
읽어보니 쓰다가도 현타온것같네. 다음엔 더 잘써야겠다.
아녀... 이런거 좋음. 날생선처럼 거친거.. 디씨의 장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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