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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밝히고 넘어가지만, <객관성의 칼날>은 무척이나 낡은 책이다. 이 책이 나온 것은 1960년으로 지금으로부터 무려 60년 이상의 간격이 떨어져 있으며, 이 책에서 다루는 과학사는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 등의 정말로 흥미로운 현대적 인식 전환의 순간들을 전혀 다루지 않고, 세부적인 요소들 중 현대에 반박되거나 심하면 부정되기도 한 것들이 많다. (갈릴레이, 뉴턴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더욱이 어떻게 일반적 사상이 과학으로 인도되었는가를 분석함에 있어서 단순한 인과관계의 분석 뿐 아니라 다소 목적론적인 서술이 들어간 부분도 많다. (본성적인 객관성의 추구를 논하기에 계몽으로 인도된 계몽이라든가) 그리고 이건 어쩔 수 없는 영역이겠지만, 책에서 다루는 내용들에 대한 출처를 찾는 것도 그리 쉽지는 않다. (한 예시를 들자면 미국 과학자들이 대체로 어느 작은 종파의 영향 아래에 있는 중서부 대학들에서 주로 나왔다고 하는데, 영어로 검색해봐도 관련 연구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을 가치가 있는 것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뼈대만 남기고 많은 것들을 깔끔하게 쳐낸 과학의 역사만을 생각하느라, 과학은 그 뼈대만으로 구성될 수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구체적으로는, 과학자들이 어떻게 그러한 전제를 세우고 어떻게 그러한 생각을 해나갈 수 있었느냐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데에 있어서 말이다. 우리는 에너지라는 한없이 추상적인 물리량을 다루는 데에 너무나 익숙하느라 해밀토니안을 별 생각도 없이 적용하면서도 물리가 얼마나 신기한 가정 위에 서 있는지를 미처 떠올리지 못한다. 지금은 잊혀진 학설의 주창자로만 알려져 멍청한 선조로 이따금 회자되는 인물들이 어째서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었는지를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리고, 어쩌다가 과학이라는 이 다른 모든 학문들과 이질적인(물론, 그 금자탑 꼭대기에 서 있는 수학은 제외하고) 학문이 이런 식으로 생길 수 있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객관성>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들, 익숙하지 않은 이름들이 그 당시의 '과학자'로서가 아니라 지식인으로서 어떻게 사고하고 어떻게 우리에게 익숙한 결론들을 하나씩 내리게 되었는지를 짚어가는 책이다. 어떻게 운동 체계로서의 세계가 서서히 목적론적인 우주를 대체하고, 변덕스러운 시약 제조술이 정량화된 화학으로 변해가고, 생물학과 지질학이 어떻게 독립적인 학문으로서 자리매김하며 보다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체계를 갖추게 되었는가 등등을 다루며, 열역학과 광학 등의 분야에서 어떻게 과거와 마찬가지로 형이상학적인 가정과 총체적인 세계관이 가설을 세우고 이를 설명하게 도와줬는지를 설명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말미에나 겨우 살짝 다루고 넘어가는 아인슈타인이야말로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라는 점이 이 책이 얼마나 낡은 책인지를 다시 한 번 짚어주는 것만 같다. 아인슈타인은 태생적 다독가로 고전들을 즐겨 읽었으며, 에드거 앨런 포가 올베르스의 역설에 대한 해법 등의 우주론적 통찰들을 가득 담아서 쓴 괴작 <유레카>는 아인슈타인이 우주를 바라보는 시각에 영향을 주었다. (최소한, 그가 이 괴작을 좋아해 여러 번 읽었다고 언급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틀림없이.) 더 현대에 나아갈수록 과학과 다른 학문 사이의 연결고리가 희박해져 가는 것 같지만, 무언가 우리가 현재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다시 한 번 도약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 도약의 기틀이 되어주는 것이야말로 그러한 토양일 테다.
그럼에도 한 가지 유념할 만한 것은,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과학이 실패하는 부분이다. 과학은 대체로 어떤 일이 어떤 식으로 일어난다, 하는 행동을 체계적으로 계산하고 예측하는 데에 능했다. 그러나 과학자가 이 체계 내에서 그것의 이유를 찾고 이를 통하여 전체적인 행동 양상을 하나의 논리로 설명하려는 과정은 늘 실패했다. 혹자는 이것이 과학의 한계라고 하기도 하겠지만 (저자가 서두에서 언급하듯), 나는 그것은 논점을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과학이 그럴 수 없다'를 넘어서 있다. 무엇도 그럴 수 없다, 라는 말에 더 가까울 테다. 투철한 신학자였던 뉴턴이 세간의 오해와는 다르게 세계를 물리학적 체계 하에서 돌아가는 신의 의지로 설명했지만, 체계가 더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신의 운신처는 점차 사라져갔다. 이것은 뉴턴의 잘못이 아니다. 외려, 물리학이 세상을 최대한 이해하는 데에 성공했고 나머지는 그나마의 근거도 없이 접근하느라 무의미한 설명을 늘어놓을 뿐이라는 게 정확하리라. 세상에는 정말로 그런 의미라는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향해서 우리는 오늘도 조금씩 더 나아가고 있다.
추신: 별로 재미는 없다
문과 대학생이 읽을 수 있는 책임?
중간까지면 뭐... 사상사를 따라가는 거라 지성사 영역의 책에 더 가깝다고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