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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정의하는 순간 그것은 고도가 아니게 된다.



아무리 고민하여도 의미가 없는 인생임을 알지만, 그럼에도 무엇인가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감정. 너무나 막연하여 정의조차 할 수 없는 그 감정을 저자는 '고도(Godot)'로 형상화한다.



'아무리 고민하여도 의미가 없는 인생임을 알지만'. 이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카뮈가 말하는 '철학적으로 자살한 인간'들은 자신들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무척 구체적으로 설정한다. 그들은 ’고도‘를  한낱 각자 인생의 목적으로 '정의'한다. 고도를 존재하게 하는 대전제를 삭제한다.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들은 내 인식체계 속에서만 유효하다. 내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이 미미한 인식 또한 찰나에 존재하며 필연적으로 소멸한다. 나는 언제부턴가 이 갑갑한 사실에 매몰되어 우울증을 앓고 있다.


"그럼 갈까?"

"가자."

‘둘은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나는 내가 블라디미르이며 에스트라공임을 알았다. '그들'의 처지가 '우리'의 처지임을 알았다. 냉수마찰로도, 라디오 체조로도 벗어날 수 없는 이 우울증 속에서도 내가 자살하지 않는 이유는 '고도'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임을 알았다.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던 막연한 감정에 '고도'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그것은 너무나 적절하여 나를 한동안 멍하게 만들었다.


'고도'를 동일히 느끼고, 그것을 책으로 쓴 사람이 있음에 나는 위로 받았다. 감정의 동요는 그날 밤까지 지속되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나는 생각하였다.



'둘은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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