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노벨은 쓰레기다.


이것이 23년간, 그러니 23살의 망생이가, 또는 18살때부터 41살이나 쳐먹고도 아직도 글을 놓지 못한 병신이 써내는 아주 확고한 진리이자 망상이다.


라이트노벨은 취급하기도 역겨운 병신 소설이며, 인간을 본질적으로 무너뜨리는 가상의 섹스판타지라고도 할 수 있다.


만약 위 글을 보고 역겨움이 들었다면 뒤로 가기를 눌러도 좋다.


또는 나를 욕해도 좋다.


왜냐면 나는 그 누구보다 라이트노벨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라이트노벨에 웃고


누구보다 라이트노벨을 사랑했고 


누구보다 라이트노벨 너머의 인간을 사랑했다.



라이트노벨은 내 인생의 포부를 연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라이트노벨 작가라는 꿈을 점지한 경외로운 지침과도 같다.


라이트노벨 매우 훌륭하다.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두 번 정독한 책은 라이트노벨이다.


라이트노벨을 읽고 난 펜을 들었다.


이 책 이후로 내 인생에선 그 어떤 책도 라이트노벨의 하위호환일 뿐이었다.



그것은 비단 같은 라이트노벨뿐만이 아닌 노인과 바다로 말할 수 있는 고전의 열풍에서부터 도도도 다다다 도도도 디같이 인터넷 하위에 머무르는, 속된 말로 싸구려 10센트 소설과도 맞닿아 있다고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이건 너무 식상하니 다른 말로 해보자.


나는 이 대회를 빌려 츠지무라 미즈키 작가의 「오더 메이드 살인 클럽」에 대해 쓰고자 한다. 이 책은 일본의 어느 작가가 쓴 라이트노벨이다.


이 소설은 보이와 걸이 만난다.


이 소설은 라이트 문예다.


이 소설은 한국에서 인기가 없다.


이 소설은 그 흔한 독자 리뷰조차 전무하다.


이 소설은 살인을 사주한 여고생 앤과 그녀의 사주를 받아들은 도쿠가와 쇼군 주니어 즉 도쿠가와의 이야기를 그렸다.


여기까지가 이 책을 소개하는데 대강 필요한 지식이라고 생각한다.


소재는 그 당시 나온 다른 책에 비해 자극적이다. 다른 말로는 신선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인물은 단조롭기 그지없다.


보이 밋 걸의 표본과도 같으며 이 소설의 주인공 '앤'은 평범한 소녀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다만 평범한 라이트노벨, 그러니 라이트노벨을 읽지 않는 대중이 으레 떠오를법한 라이트노벨에 비춰본다면 철저하게 다르다고 말할 수도 있다.


앤은 16살 중학생 소녀이다. 


작가가 앤의 외모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없었을 수도 있다. 이 소설은 철저히 앤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소녀의 입장에서 소년을 받아들이는 여성향 로멘스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앤은 학교 폭력까지는 아닐지라도 친구 관계에 깊은 모순을 느끼고 있다.


여기서 이 책이 여느 라이트노벨과 다르다는 점을 눈치챘다면 아마 그 분은 나보다 더욱 라이트노벨을 잘 알 것이라 가히 말씀드리고 싶다.


실제로 이 책은 라이트노벨이라기 보단 순문학쪽에 가깝다고 알고 있다. 종류로 따지면 일본 소설, 장르로 따지면 일본 로멘스 소설, 조금 더 라이트노벨로서 다룬다면 라이트 문예라고도 할 수 있겠다. 


만약 여러분이 앤이라는 이름을 보고 떠오르는 빨강 머리의 소녀가 떠오른다면 그건 대체로 옳을 것이다. 실제로 주인공 앤과 빨간 머리 소녀 앤은 이 소설 속에서 거의 동일시된다.


앤의 어머니는 빨강 머리 앤을 좋아한다. 자신의 딸이 중학생이 됐는데도 말이다! 


빼어난 미인이지만 그녀는 그저 그런 평범한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그 이유는 단순 명료하고 어쩌면 허무하기까지하다.


"딱히 결혼할 상대가 없으니까."


물론 앤의 어머니가 저 문자 그대로 말한 지는 필자는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지금의 내가, 그러니 무시 못할 세월을 지난 내가 기억하는 앤의 어머니는 저 문장 하나로 일축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아니면 경외 받아 마땅한 일이다. 아직도 동심을 유지하는 순수한 어른이니 말이다.


세상의 불의에 흔들리지 않은 채, 아직 꺾이지 않은 불굴의 순백 꽃이라고 필자는 생각했다. 


왜냐면 너무 외로워보여서다.


앤의 어머니는 딸이 자신을 혐오하든 말든 딸이 지금 생판 모르는, 그러니 반에서 벌레라고 불리는 무리들에 속한 벌레들 중의 벌레 도쿠가와에게 살인을 사주했는데도 불구하고 앤이 돌아오든 말든 빨강 머리 앤을 시청하신다.


정말 문자 그대로다.


웃기지 않은가? 자신의 딸 앞에서 당당하게 애니메이션을 튼다.


그것도 앤이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그것이 딸에게, 혹은 남편에게 무슨 영향을 주는지 전혀 모르는 걸로도 보인다. 


실제로 앤의 어머니는 미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앤의 입을 빌려 미인이다.


그녀는 토스트에 꿀을 바른다고 한다. 이거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실제로 토스트가 아니라 버터일 수도 있다.


다만 아직도 이 소설, 그 중 앤의 어머니를 떠오르면 난 꿀이 생각난다.


너무나도 곱고 아름다우며, 투명하고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나는 아카시아 꿀 말이다. 


그래서 너무나 슬펐다.


그러나 당시에는 슬프지 않았다.


왜냐면 그 당시 난 철저한 '남성 독자'의 입장으로 앤의 엄마를 바라봤기 때문이다.


앤의 설정을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존재로서 말이다. 


그 당시 엄마를 바라보는 앤이 어땠을 거 같냐라고 묻는다면 난 슬펐을 거다라고 답한다.


앤.


철저하게 미국인의 이름을 부여받은 일본인의 신분을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소녀의 감성으로 보자면 그건 썩 유쾌한 감정은 아니었을 거 같다,


심지어 앤이라는 이름은 어머니가 지어준 거다.


즉 그녀의 어머니는 딸과 앤을 동일시 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지금에서야 어렴풋이 느껴진다.


그래서 자살을 결심했을 지도 모른다. 앤이 말이다.


학교 안에서는 자신이 속한 무리의 리더 세리카라는 애에 의해 철저히 휘둘리는데 반해 자신은 그저 또 다른 친구 세리자와 (난 이 친구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으니 세리자와라고 명명하겠다.)의 "미안하다."라는 말에 안심하는, 즉 폭군과 박쥐 사이를 오가는 자신이 혐오스러웠을 수도 있다.  


아니면 자신은 농구부, 즉 리얼충들의 무리에 편승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리얼충들중 가장 뛰어난 리얼충 소년 (아마 야구부 였던거 같다.)에게 사랑받고 있었고 우연히 그 소년의 고백을 찼고 또 우연히 세리카가 리얼충 소년을 좋아하고 있었다.


이것은 정말 기막힌 우연이 아닐 수 없다.


난 농구부고 


난 리얼충이고


난 리얼충 소년에게 고백받았고 


난 그 리얼충 소년을 찼고


난 세리카가 그 소년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물론 가상의 인물들의 이야기지만 이것에 나, 그러니 여러분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를 대입해보면 매우 이질적임을 알 수 있다.


난 리얼충이 아니었다. 난 음침하고 친구도 없었다. 난 독서를 좋아했다. 겉으로는 고결한 척하지만 누구보다 섹스판타지에 목말라있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여러분의 상상력에 맡기고 싶다. 너무나도 잔혹한 진실이라고만 말하고 싶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그러니까 독자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정말이다. 머리로는, 지식으로서는 확고하였지만 지금의 내가 보면 그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필요 없는 계산식과도 같았다. 


같잖은 허례허식을 치우면 행동만이 남는다.


그리고 그떄부터다. 다시 말해 책을 첫 번째 완독하기 직전 100페이지까진 도쿠가와의 이름은 내 이름... 즉 독자의 이름으로 치환되었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너무나도 잔혹한 현실이기도 했다.


왜냐면 도쿠가와는 나와 비슷하다고 스스로 믿었기 떄문이다. 


그는 벌레 무리 중 아마 공기 쪽을 담당했던 거 같다. 


벌레 무리들 중에서도 존재감 없는 벌레.


혐오감이 없진 않지만 덜한 벌레.


뭐랄까 이건 말이지.


너무 슬픈 일이다.


혐오감이 없진 않지만 덜한 벌레


이 대목이 말이다.


아니 애초에 이 문장이 맞는지조차 모르겠다.


혐오감이 없진 않지만 덜한 벌레라고 착각하는 가장 추한 벌레


진실이다. 


아니


망상이다. 


헛소리이며, 부정적이며, 자기파괴적이다. 


다만 나는 이 사실만을 알고 있었다. 


두 번째 책을 정독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무언가 단단히 착각한 벌레는 펜을 들었으며 그는 지금까지 단 한 편의 소설조차 제대로 된 완결을 내지 못했다. 


그저 인터넷이라는 허상의 공간을 떠돌며 추천수 0과 1에 울고 웃는 나날을 보내다 그저 그런 엽편에 위안을 얻으며 지금에 이르렀다.


누군가는 날 비웃을 것이다.


이것은 하늘 위 태양처럼 손으로는 가릴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 벌레의 심정이 어떨까 가히 추측을 해보건데 엄청나게 오만하지 않을까 한다. 


자신이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철저히 부정한 채 언젠갸 대작을 쓸 수 있다는 헛된 망상에 빠져 또 글을 쓰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이건 대체로 옳은 말이다.


70억 인구 + 지난 한 세기 동안 발견되지 않은 수많은 미공개 명작들 /  미겔 데 세르반테스 + 도트토예프스키 + 박경리 + 츠지무라 미즈키 + 노벨 문학상 작가 + 노벨 문학상을 받기 전에 죽은 작가들 = ???


저 어마무시한 숫자 속에서 1등부터 3등이라는 다소 비현실적이고 어처구니 없는 공식을 수학에 대입하면 아마 절망의 나락까지 떨어질 거 같아서 지금은 답을 내지 않았다. 


다만 확실한 건 지금도 인구는 늘고 있으며 늘어난 인구만큼 경쟁자들 또한 많아지고 있는데 반해 파이는 정말이지... 터무니 없을 정도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유쾌한 해답에 정말 무릎을 치지 아니할 수가 없다. 


정자 시절 치뤘던 경쟁은 우수울 정도로 터무니 없다. 


이건 마치 동해에 떨어진 개미가 우리 콧 속으로 들어와 혈관을 물어 뜯는 것과 다름이 없으며, 아마 이보다 더욱 극악이지 않을까 추측하는 바이다.


다만 더욱 비참한 불행은 아직 우리를 지나가지도 않았다. 


그건 바로 저 식에 라이트노벨은 잡히지도 않는다는 거다.


라이트노벨을 개척한 선구안적인 작품이라 칭송 받는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은 보이지 않는다. 


웬만한 고전 명작에 비견하여 부족함 없는 수익을 낸 소드 아트 온라인은 고려 대상도 아니다. 


라이트노벨을 넘어서 라이트문예, 또는 청년 라이트 노벨의 탄생을 알린 늑대와 향신료는 두 작품에 비하면 비루해 보일 정도다.


그럼 다른 작품은 어떻겠는가.


노벨문학상 선정 위원회원들은 Re:제로를 알까?


명망 높은 대학의 문학 교수들은 거미입니다만?을 찬양하는 글을 한 명의 독자로서 인터넷에 투고할 수 있을까? 


비범한 필력과 압도적인 스토리로 한국 출판 문학계를 찍어 누르는 기성작가가 있다면 어디 한 번 노벨피아에 '저열'하고 '환상적'아며 '더러운' 섹스 소설을 써보아라고 종용하고 싶을 정도다.


물론 이는 극단적인 예시에 불과하다.


능력은 없는 주제에 현실이 바뀌기만을 바라는 저열한 종자의 망상이다. 


다만 아직도 선명히 기억할 뿐이다.


능력은 없는 주제에 어떻게든 기어오르려는 한 등신에 대해서.


재능과 노력이라는 벽 아래서 울고 있는 어느 험프티 덤프티에 대해서


남들 다 가는 편하고 넓은 길을 가지 못하고 늘 이상한 지름길만 추구하다 멀어진 동지들을 바라보는 어느 홍대병 환자에 대해서


다만 나는 이렇게 선언하는 바이다.


그저 그런 책들 사이에서 반짝이던 아주 별난 책을 쥐어 든 순간 고요한 들판엔 폭풍이 휘몰아쳤다고.;


그 폭풍으로 말미암아 한 양치기 소년의 인생은 날아간 양들과 함께 나락으로 치솟았다고.


양이 바람에 날라갔다는 사실을 외쳐봤자 언제까지나 거짓말쟁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인간들을 혐오하고 경멸한 순간 양치기 소년은 깨달았다고.


네 놈들이 인생의 정상을 향할 때


나는 끝 없는 심해를 향하겠다고.


네 놈들이 정상을 찍고 내려올 때면


아마 난 그 누구보다 밑바닥을 향하고 있을 거라고. 


그 순간 벌어진 격차는 가히 해저 2만리를 넘어서리라고.


그리고 추잡한 비포장 도로 끝에 서있는 한 그루 떡갈나무를 갈망하는 모든 이를 위해 호탕한 건배를 나누겠다고


그렇다.


바로 당신과 마시고 싶다.


언젠가 떡갈 나무 아래에서 두 손 맞잡고 만나는 날이 오기를! 


그리고 나를 손가락질했던 수많은 사람에게 이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