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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 나오는, 먼 나라들의 대성당. 대성당을 설명하는 영국인. 영국인이 설명하는 대성당. 대성당을 바라보는 주인공. TV에 있는, TV 너머에 있는 대성당. 여기에는 없는.

무엇도 볼 수 없는 맹인. 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로는, 무엇도 알 수 없는 맹인. 대성당을 볼 수 없는 맹인.

그들에게 없는 대성당.


대성당은 그들의 곁에 나타나지만, 사실 실제론 있지 않는 것이다.

주인공도, 주인공 곁의 맹인도, 실제로 세워진 대성당을 감각할 수 없다. 그들은 단지 TV에 비친 대성당의 형상을 바라볼 뿐이다.

대성당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은 무엇도 느낄 수 없다.

주인공은 맹인에게 대성당을 설명해주려 하지만, 맹인은 무엇도 느낄 수 없다.


맹인은 문득 제안한다.

종이와 펜을 가져오지.

맹인은 TV 너머에서 대성당을 끄집어오기로 한 것이다.


맹인은 앞을 볼 수 없고, 그는 누군가의 삶도 볼 수 없다.

하지만 똑똑한 맹인은 다른 방식으로 삶을 감각하는 법을 알았다.

그는 테이프에 자신의 삶을 녹음한다. 주인공의 부인도 테이프에 자신의 삶을 녹음한다.

복사된 삶이 두 사람 사이를 오갈 때 그들의 삶은 교차하고,

그들의 삶은 나타나고,

맹인은 삶을 느낀다.


주인공과 맹인의 손이 포개지고,

종이에 선이 그어질 때.

선이 이어져서, 막연한 사각을 이룰 때.

사각에, 지붕이 올려지고, 그것이 첨탑이 될 때.

맞닿은 첨탑 사이로 나타나는 대성당.


노인은 종이에 그려진(움푹 패인) 선을 만지고,

그것을 느낀다.


브라운관 TV의 빛을 빌려 일렁이고 있던 대성당은

이제 포개진 손을 빌려 두 사람의 공간에 나타난다.


주인공은 눈을 감고

자신이 실내에 있지 않다고 느끼며 말한다.

"이거 끝내주네요."


그는 들었을 것이다.

그들이 있는 공간이

종탑에 잠겨드는 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