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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리 감명 깊게 읽은 책은 아니다. 마이조 오타로가 순문학과 장르소설(추리소설, 라이트노벨 등)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 소위 중간문학에 가까운 작가라 그럴지, 일본 현대 순문학을 읽을 때 느껴지는 뭔가 얄팍한 느낌이 여기에서도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예전부터 그러한 느낌이 어떤 것인지를 파악하고자 노력했지만, 얻은 결실이라고는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혹은 <상실의 시대>)를 읽을 때 그 느낌이 가장 강했다는 기억 뿐이다. 이것을 나는 문학 시리얼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어쨌든, 첵스 초코나 오레오 오즈를 간만에 먹으면 맛있는 것도 사실이다. 즐겁게 읽은 것은 사실이라 그 생각을 일단 남겨두려 한다.



마이조 오타로의 글들은 대체로 메타적인 아이러니를 주는 데에 상당히 특화된 느낌이었다. 파우스트계 작가들이 상당히 스타일리쉬하게 글을 쓰며 글의 내용을 어떤 세상 속의 일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글 속의 일이라는 느낌이 들만큼 빠르고 극단적으로 몰아가던 것처럼, <인간의 제로는 뼈>에서도 그런 미묘한 이인증을 유도하는 감이 있다. 주인공은 자신의 남동생과 꿈 이야기를 하며 현실보다도 더 현실적인 이야기에 대해 망상을 하며 현실 세계를 이야기의 '코드'에 맞게 빠르게 재단해 분석하고, 대체로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덕분에 그녀는 현실을 현실로서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이야기 역시 이야기로서 받아들이지 못한다. 현실을 그 위에 자신의 눈이 덧씌우는 이야기의 흐름으로서밖에 받아들일 수 없어 그 속의 "뼈"를 갖지 못하고, "뼈"라는 것이 존재하지도 않는 자신의 이야기는 그보다 훨씬 더 허망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판타지가 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타협이 나온다. 자신의 세계가 현실과 갭이 느껴진다고 하면 그 갭을 좁혀가고자 현실을 바꿔나가야 한다는 대사는 본디 이상주의적인 주인공이 어떠한 숭고한 목표를 이야기하며 해야 할 말이겠지만, <인간>에서 그것은 단지 세카이계로 이행할 수 없는 자아의 한탄일 뿐이다. 그녀는 세상의 어떤 것이든 그려낼 수 있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결코 동작하지 않는다. 결국, 그녀는 꿈을 꾸던 어릴 때에도, 현실의 "뼈"에 좀 더 깊숙히 다가간 현재에도 이야기를 쓰는 데에 실패하고 그 흔적을 서랍장 속에 깊숙히 간직해둔다. 그것은 미래를 위한 준비라기보다는, 이를 차마 버리지 못하는 미련일 뿐이다.



마이조 오타로의 이인증적인 필체는 여기에서 이 글을 쓰는 저자를 한 번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인간>의 주인공은 스스로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순간적으로 어떤 모티브를 떠올리며 그것을 연기하여 오히려 자신이 그것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자기최면을 걸곤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진정 "뼈"에 맞닿을 수 없다. 그렇게 저자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한 번, 두 번 현실 속으로 다이빙해 이를 건져낼 수 있게 시도해보지만 늘 실패하고 이를 포기하도록 만든다. 그렇게 쓴 책이 바로 <인간>이다. 그러니 사실 저자는 우리에게 바로 세 번째 시도를 들이밀고 있는 셈이다. 어디, 이것은 "뼈"를 담고 있습니까?



그러나 아쉽게도 자기최면은 이번에도 실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