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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네의 그림을 좋아한다.

특히 수련을.

연꽃(수련과의 수초)은 해가 쨍쨍해야

물의 표면 위로 올라와 고고한 자태로 자신의 몸을 피워내고

해가 조금이라도 지면 제 몸 시든 것을 보여주기 싫은지

물 속으로 홀연히 침잠해버린다.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명확히 아는 주체적인 꽃이랄까.

모네는 그런 연꽃을 자신의 화폭에 묵묵히 담아냈다.

말년에 '연꽃이 떠 있는 수면' 을 주로 그렸던 모네의 그림은

늘 나에게 편안함을 주고 단정한 마음을 품게 해준다.


이 책에서 말하는 모네 그림의 큰 특징을 두 가지 들자면

1. 자연의 빛을 그대로 화폭에 담고자 했던 점

2. 특정한 대상 자체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대상 사이에 있는 것(덮개)을 그리고자 했다는 점이다.

2. 와 같은 것을 모네는 덮개(enveloppe)라고 부르며

우리 주변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거나 만질 수 없어서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졌던 요소들,

공기 바람 빛 안개 온도 시간 분위기 등에 주목했다.


이 요소들은 세상의 모든 사물들을 감싸고 있으며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 없이 변하는 순간성을 지닌다.


결국,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다양한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인상' 의 표현은 모네를 인상주의 대표 화가로 이끌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그림의 대상으로 삼은 모네 덕분에

그의 작품을 통해 미술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왜 신은 인간에게 모든 걸 주지 않는 것인지.

줄곧 생활고에 시달리다 지베르니에 겨우 자리를 잡고

명성을 쌓아가던 모네는 점차 시력을 잃어갔다.

빛에 따른 색과 인상에 주목해온 모네에게 닥친 커다란 위기였다.

하지만 모네는 나빠진 눈으로 이전과 같이

보이는 그대로 그림을 그려내었다.


형상은 불분명해지고

색감은 강렬해지고

붓질은 거칠어졌다.


그런 상태로

현재 오랑주리에 소장되어 있는

대장식화 <수련> 을 그리게 된다.


곡선의 공간에서 물의 풍경이 사람을 감싸주는 듯한 느낌의

오랑주리의 전시는 모네의 의도대로

많은 이들에게 평화로운 마음을 선사해주지만

정작 모네는 이 작품을 완성하지 못한 채 눈을 감았고

죽기 직전까지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설치를 거부했으나

사후에 상속자의 결정으로 인해 오랑주리로 그림이 보내졌다.

같은 배경을 두고도 시시각각 달라지는 자연의 빛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와 시간 분위기를

화폭에 담고자 했던 모네.


어쩌면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자신만의 언어로 은근하게 풀어내는 작가들의 작업과

모네가 해온 작업이 비슷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예술의 영역은 장르나 형태를 불문하고

보여지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

주제가 되거나 배경이 되곤 한다.


더 나아가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끈질긴 애정과 정돈됨을 가진 이가 더 나은 예술작품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초기 인상주의가 그러했듯이 시대를 앞서가는

사조와 예술은 가끔 비웃음 거리가 되기도하지만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만의 것을 잃지 않고 계속 해나가는 것이다.


예술에 절대적인 기준이란 없으므로

자신의 예술에 가해질 수 있는 별 거 아닌 비판들은 

사뿐히 즈려밟고 지나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비단 예술의 영역 뿐만 아니라 삶 자체가 그렇지 않을까.

모네가 평생 자신의 빛을 좇아 그림을 그렸듯

우리는 우리만의 빛을 좇아

나만의 것을 지켜가며 삶을 영위해 갈 작은 책임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고싶은 지베르니 오랑주리.

다음엔 이 책을 들고가서 읽으며 그림을 감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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