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24b0d121e09c28a8699fe8b115ef046c60f0294699ea



밸러드의 추천사를 보고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지만, 밸러드보다는 PKD 생각이 더 많이 나던 소설이다. 그리고 <안녕 샤를로테>도. 밸러드의 멸망하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이보다는 조금 더 희망차고 구체적이었으며, 소녀(the girl을 굳이 여자라고 번역했다는 역자의 후기는 분명 편파적이다. 비록 the girl이 영어에서 미성년이 아닌 여성에게도 쓰인다고 하더라도 역자는 분명 후기에서 그녀의 어림을 강조하는 듯한 저자의 뉘앙스를 느꼈다고 밝혔고, 이를 알면서도 굳이 이렇게 번역했다는 건 역자가 번역한 다른 소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만하다)에 대한 페티시즘은 밸러드가 <크래쉬>, <폭력 전시회Atrocity Exhibition>에서 보여준 것보다 좀 더 노골적으로 포르노스럽다. <아이스>의 서사 진행 역시 밸러드보다는 PKD가 많이 생각나는 방식이다. 물론, 그 어떻게 그런가,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일 터이다.



<아이스>는 기묘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핵겨울을 전제하듯 온 사방에서 냉기가 몰려오고 영원한 동결이 서서히 세계를 뒤덮어가는 와중에 화자는 소녀를 찾아 돌아다니고 소녀는 그녀의 남편 혹은 주인인 남자에게 속박되어 끌려다니거나 사라지고 죽으며 번번히 화자에게서 도망친다. 이 과정에서 단순히 믿을 수 없는 서술자라고 부르는 게 민망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화자는 자신의 상상과 회상을 자연스러운 다음 장면으로 이어가며 어느새 이를 기존의 서사의 흐름에 '실제로' 일어난 일인양 덧붙인다. 이 독립적인 세계 속에서 소녀는 늘 새롭게 발생하여 화자의 시선에 들어오며, 어떤 경우에는 화자가 그의 시선으로 누군가를 소녀, 하나의 팜므 앙팡femme enfant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모든 세계에서 소녀는 대체로 희생되거나 억압되거나 남용되며, 그 끝은 늘 좋지 않다.



이따금 <아이스>의 전체 이야기가 냉전의 핵 공포증에 시달리는 화자가 정신 속에서 겪는 심리적인 모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서문에서 말하듯 얼음ice는 마약의 일종인 메스암페타민을 지칭하는 속어이기도 하고, 애나 캐번은 약물 중독으로 인한 정신병에 시달리다가 <아이스>를 유작으로 남기고 사망했다. 온 세상을 얼어붙게 만들며 화자가 도망치도록 만드는 아이스가 약물에 대한 은유라고 하더라도 이상할 점은 전혀 없을 테다. 그런 점에서 <안녕 샤를로테>가 생각나는 소설이기도 했는데, 만일 이것이 그녀의 혼란스러운 정신 속에서 무언가를 찾기 위해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고 이를 극복해보려는 시도의 연속을 표현하는 글이라면, 화자가 지금 이 순간의 현실처럼 떠올리는 대안적인 현실과 기억들이 현실과 합치되는 순간들은 마치 병렬적으로 분열된 채널을 돌리는 것과 같을 것이다.



<안녕 샤를로테>의 마지막은 서술자 찰스가 자신의 세계의 끝 앞에서 선언하는 말로 축약된다. "결국, 이 이야기는 고난을 극복하는 종류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포기하는 이야기일 뿐." <아이스>에서 멸망하는 세계를 화자는 단 한 번도 해결하려 노력하지 않고, 수많은 국가와 국민들 역시 그저 그나마 좀 더 상황이 아직 나은 곳, 아직은 죽음의 냉기가 닿지 않은 곳으로 도망치는 것만을 생각한다. <아이스>는 기어이 여자를 다시 찾은 화자가 그녀와 최종적인 화해를 하고 이 얼음으로 뒤덮이는 세상 속에서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안녕 샤를로테>와의 섬뜩한 공통점이 느껴졌다. 물론 <아이스>와 <안녕 샤를로테>가 사로잡힌 공포와 불안의 원인은 서로 다를테지만, 그것이 표현되는 방식은 매력적으로 비슷하다.



P. S. 지금 생각하면 버로스의 <붉은 밤의 도시들>이 떠오르기도 하는 소설이다. 나중에 이러한 작품들에서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좀 더 종합적으로 비교해보며 분명하게 파악하고 싶은 욕망이 있지만, 지금은 아닐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