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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의 <인생><허삼관 매혈기>를 읽고 눈물콧물 쏟으며 감명 깊었던 나머지, 한동안 위화의 글만 파고 싶었지만 읽고 싶은 책들이 밀려 있어 미루고 미루던 찰나, 위화의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을 읽었고 너무 좋은 나머지 연달아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간다>를 읽었다.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은 세계 곳곳에서 위화가 강연한 것을 기록한 강연문을 모은 것으로 작가로서의 위화를 다루고 있고 글쓰기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치과의사로 일하던 위화가 소설가가 된 과정, 작가가 되고 싶었던 이유, 잡지에 원고를 투고한 과정, 어떻게 작가가 되었으며 어떤 경위와 발상에서 작품을 구상했는지 배경, 문학 작품의 감상법 등을 설명한다. 옛날 이야기 들려주는 할머니 얘기 듣는 것처럼 긴장하지 않은 상태로 아주 쉽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이외에도 독붕이들에게 흥미진진한 내용들도 대거 포진되어 있다. 위화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가와바타 야스나리>,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함정에 빠졌을 때 그를 구원의 길로 인도해준 <프란츠 카프카>, 중국 문학의 아버지 <루쉰>의 막대한 영향력, 그 외 그에게 영감을 주었던 <제임스 조이스>, <윌리엄 포크너>, <도스토옙스키> 등등 많은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모옌>과의 이야기도 수록되어 있다. 특히 모옌과는 기숙사 같은 방을 썼다고 하니 그 방의 아웃풋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갑자기 가슴이 웅장해졌다.



위화와 모옌을 뛰어넘는 룸메이트 원투펀치 아웃풋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한참 빠져있었다. 그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기묘함을 뒤로 한 채 책의 후반부에는 글쓰기 외에 인생에 대한 그리고 문학의 역할에 대한 위화의 생각도 담겨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적인 틀 안에서 순수하게 미를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산물로써의 문학의 사회적 역할을 다뤄야 하는가? 정답을 알 수 없는 이 문제에 대해 위화는 사회적 참여를 강조한다. 그동안 위화는 작품에서 계속적으로 사회를 담으려 시도해왔다.



그리고 그 사회적 참여를 위해 본격적 사회 고찰 에세이를 작성한 것이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라는 에세이집이다. 이 에세이집은 당연히 중국에서 출판금지 되었지만 운 좋게 우리나라에선 출간되었다. 중국 사회를 잘 나타내는 10개의 키워드를 선정하여 위화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사회, 문화 의식을 다룬다.



과거 중국의 역사는 혁명의 역사로 그 혁명은 주로 다른 것을 같게 하려는 역사였다. 문화대혁명으로 평등을 추구하는 경향은 정점에 이른다. 위화는 교사들에 대한 비판 대자보를 통해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위화는 자신에게 담배도 내어주고 잘해준 교사를 비판 대상에서 제외했고, 교사는 왜 당신만 비판 대자보가 없냐고 한바탕 깨지고 들어와선 이렇게 얘기한다. “높이지 마. 평등. 평등이 최고란 말이다.” 이 한 마디로 중국의 과거가 어땠는지 축약할 수 있다.



문화대혁명의 시대가 지나가고 정치체제의 탄압과 억압은 유지되는 가운데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다.’라는 덩샤오핑의 경제 개방정책 덕에 오랫동안 억압된 무형의 힘이 개방과 동시에 터져나와 중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산채(원래 의미에서 벗어나 짝퉁을 지칭하는 단어)’, ‘홀유(거짓·허풍·사기 등을 지칭하는 단어)’의 단어들이 중국 사회를 설명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되었다. 도덕적 부재의 문제인지, 약자들의 사회 엘리트들에 대한 유쾌한 반란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회현상들이 중국을 혼란케 한다. 아니, 중국을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혼란케 한다. 왜 중국은 산채와 홀유에 너그러운 것인가? 정치영역에선 상방이 막혀 새로운 혁명이 절대 불가능하니 경제 분야로 억압된 힘을 표출하여 나름의 전복을 꿈꾸는 것인가? 대륙 특유의 기상이자 호방함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



예전에 <명견만리>에서 중국의 수많은 벤처기업의 성공과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정부차원에서 제공하는 창업기회와 선배 사업가들의 조언 등 창업시스템을 보고 감탄했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을 보고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은 지역 발전을 성과로 더 높은 정치 권력에 다가가려는 지방 관료들의 이익과 부를 쌓기 위한 개인의 이익이 맞아떨어지는 지점에서 이루어지는 허풍과 과장을 통해 일으키는 벤처사업의 성흥이, 즉 홀유의 결과가 운좋게 창업의 성공이 되는 밑바탕이며 이를 통한 경험의 축적이 창업시스템으로 구축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갑자기 책을 통해 불현듯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향을 통해 과거의 일을 떠올리듯 오랫동안 잊고 있던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대학교 1학년때였나 교내에서 중국 유학생들이 투닥거리던 일이다. 둘이 뭐라 하더니 갑자기 한참 떠들던 남학생이 손으로 여학생의 엉덩이를 쓸었고 여학생은 중국인 특유의 억양으로 남학생에게 또 뭐라 했지만, 엉덩이를 훑은 후 지은 남학생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원하는 여자를 얻기 위한 대륙인 특유의 기상과 호방함인가? 아니면 단순히 도덕적 기준을 잃은 어린 양인가? 그 미소에서 나는 현재 중국인의 모습을 본 것 같았다.



이상으로 나의 중국의 역사·문화에 대한 어설픈 이해와 감상이였지만, 책 읽는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보자면 아주 즐거웠다. 위화는 격동하는 시대를 산 문화대혁명 등 역사적 사건에서 비롯된 자신의 경험 또는 매혈과 같은 사회적 문제에서 나오는 웃지 못할 이야기(검색해보니 놀랍게도 우리나라에서도 매혈이 합법이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웃들의 이야기 등 친근한 소재들을 토대로 작품을 창조해냈다. 모든 훌륭한 작가가 격동의 시기를 사는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경험이 훌륭한 작가에게 큰 영감을 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격동의 시기를 거친 위화의 글쓰기는 마법과도 같다. 위화에 의하면 문화대혁명 시기에 제대로 된 학교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다보니 구사할 줄 아는 문자가 상대적으로 적었고 그 상태에서 글쓰기를 시작했으니, 어려운 단어를 쓸 줄 모르고 그 상태에서 글쓰기가 굳어지니 자신의 글은 항상 쉽다고 한다. 위화의 말대로 위 책들에 실린 글은 전체적으로 쉽고 이해하기 용이하지만 함축하고 있는 내용들이나 문제들의 함의는 생각하면 할수록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것이 위화의 마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