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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그는 내일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전 존재를 다하여 거부했어야 마땅할 내일을. 이 육체의 반항이 바로 부조리다.” (시지프신화)

현대인은 미래의 행복을 담보로 현재를 영위함여-죽음 또한 다가올 미래라는 불변의 사실을 망각하고. 삶과 죽음의 부조리를 체험한 인간은 충실한 현재만이 자유일 수 있음여.

드루실라의 죽음을 겪은 칼리굴라는 삶/죽음의 부조리를 인식함여.

“로마 제국 전체에서 오직 나만이 자유로워. 자 기뻐들 하라, 마침내 너희들 앞에 자유를 가르쳐줄 황제가 나타났도다.”

절대권력의 로마황제 칼리굴라로 체현한 뫼르소가 광기 속에서 부조리의 교사가 됨여. 귀족들의 가족을 죽이고 아내를 겁탈하며 부조리를 가르치지만 그들은 여전히 부조리를 인식하지 못함여. 삶의 무대장치가 무너지기는 커녕 공포에 각색된 연기를 하는 귀족들. 타자들과 단절된 칼리굴라는 더욱더 고독에 신음하며 권력의 논리를 극단으로 펼치며 죽음을 맞이함여.

“삶이란 건 말야, 만약에 네가 진심으로 그 삶을 사랑했다면, 그렇게 경솔하게 목숨을 걸지는 못했을 거야.”

부조리의 사막에서는 인간이 신이고 세계가 낙원이 됨여. 그렇기에 카뮈에게 나가 아닌 ‘우리’의 연대 의식이 요청된 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봄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