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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애 첫 라이트노벨이었던 작품입니다. 4번을 읽었던가 5번을 읽었던가 정확한 횟수는 기억 나지 않지만 집요하게 읽고 또 읽어보았습니다꼭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것처럼 불현 듯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곤 하죠아직도 눈을 감으면 17살의 소년소녀가 서로 등을 기댄 채 아련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서점에서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반쪽달이라는 단어가 제 가슴에 날아와 깊숙히 꽂혔었네요반달이라는 흔한 표현이 아니라 반쪽달이라니밤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반달을 보면서 나만은 반쪽달이라고 불러야겠다 다짐했었죠그렇게 부르면 매일 보던 흔한 반달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되는 듯 했으니까요.

 

책의 도입부는 이렇게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아무것도 아니다아프리카의 기아 문제라던가 어딘가의 전쟁 같은 것에 비교하면 전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이야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모호한 기억에 의존해보자면 이런 문장으로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아쉽게도 이 책은 제 손을 떠난지 오래거든요작가는 의도적으로 역설적인 표현을 사용했다고 생각합니다이 이야기는 여주인공이 죽는게 정해져있는 스토리입니다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는게 어떻게 아무것도 아닐 수가 있을까요. ‘사람이 죽는다는건 엄청난 일이구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라는 영화에서 나왔던 대사입니다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아프리카의 기아 문제보다도 어딘가의 전쟁보다도 당장 내 곁에 있던 사람의 죽음이 더 엄청난 일이죠.

 

이렇게만 본다면 아주 울적한 작품으로 생각되겠지만 그렇지만도 않습니다오히려 깔깔거리면서 읽었던 작품입니다개인적으로 세대를 불문하고 모든 10대들은 천방지축 말썽쟁이들이라고 생각합니다저를 포함해서요지금 생각해보면 도대체 그때는 왜 그런 말도 안되는 짓을 하고 다녔을까 싶을 정도예요기껏해야 17살인 주인공도 마찬가지였습니다세상에 저런 바보짓이나 하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있나 싶을 정도로 무대뽀로 터무니없는 짓을 벌이고 다니죠등장인물 중에는 야한 책을 수집하면서 간호사들을 성희롱 하고 다니는게 삶의 낙이었던 변태 할아버지도 있었기에 더욱이 라이트노벨 다운 분위기를 맛볼 수 있었죠.

 

정말 신기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당시 읽어본 책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보통 무겁고 슬픈 소설은 쭉 무겁고 슬펐지 갑자기 가벼워지거나 웃음이 터지게 만들지 않았거든요그런데 이 책은 미친 듯이 웃기게 읽히기도 하고 한 없이 슬프고 가슴 먹먹해지기도 했어요울면서 웃으면서 깜짝 놀라면서 답답하고 화가 나고 욕을 하기도 했죠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감정을 이 책으로 느꼈다고 해도 좋을 정도예요.

 

4권을 읽었을 때 정말 가슴이 미어지는 듯 했습니다여주인공이 죽은 이후의 삶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정말로 그 이후의 일을 쓴 건지 아니면 남주인공의 꿈인지는 알려주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아무리 비극적인 순간이 찾아와도 인생은 계속되죠잊지 못할 것 같던 순간을 잊고 살아가는 것에 배신감을 느껴야하는지 아니면 잊고 잘살아서 다행인건지갈피를 잡지 못하고 나는 어떤 기분을 느껴야하냐고 작가에게 물어보고 싶었습니다지금 생각해봐도 진짜 완결은 4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게 끝나버린 것 같은 절망감을 안겨주었던 에피소드였습니다.

 

마지막 권의 표지 일러스트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주인공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너무 노골적이라는 느낌도 있고 서점에서 마지막 권을 계산대에 올려놓기가 많이 부끄러웠던 기억이 나네요많은 여운을 안겨준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10대 시절에 읽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20살에 읽었어도 이런 감정을 느낄 수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그 나이였기에 그 인물들에게 깊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덕분에 티보가의 사람들을 읽어보기도 했었지요.

 

그대의 정신상태는 무감각인가 욕정인가 연애감정인가

그 어느것이든 내가 보기엔 세번째에 가까운 듯 하오

앞의 두개에 비해 훨씬 그대다우니까

요즘의 내 침울함을 용서해 주길 바라오

나는 불완전한 존재임이 분명하오

벗이여 괴로운가?

우리는 너무 많은 생각을 하오

 

여주인공이 티보가의 사람들 내용을 인용하여 남주인공에게 고백했던 장면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수첩에 보라색 볼펜으로 적어두었었죠실제 티보가에서는 전혀 다른 문장이라서 실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번역의 차이인지 인용하면서 다른 내용을 적은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최근 라이트노벨 대회를 계기로 이런저런 추억도 떠오르고 생각도 많아지네요내게 이토록 감동과 추억을 안겨주었던 장르가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 같은거요.

 

우리의 이야기는 아무것도 아니다아프리카의 기아 문제라던가 어딘가의 전쟁 같은 것에 비교하면 전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이야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이트노벨은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걸까요위대한 고전 작품들을 생각하면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그래도 말이죠. <반쪽달이 떠오르는 하늘>을 읽었던 기억을 다른 고전소설을 읽었을 때 느껴질 감동과 바꾸자고 제안한다면 저는 절대 바꾸고 싶지 않아요제아무리 위대한 작품을 가져오더라도 말이에요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저는 <반쪽달이 떠오르는 하늘>을 읽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