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노가타리 시리즈에 대한 강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편을 건너뛰고, 3편만 보셔도 내용 이해하는 데 지장이 없습니다.


III. 픽션을 더욱 픽션으로

1) 말장난

언어유희를 포스트모더니즘만의 전유물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언어의 불안정성, 그리고 언어를 기반으로 하는 세계에 대한 불확정성에서 출발합니다. 과잉된 기표로서의 언어유희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애용하는 기법 중 하나입니다.

모노가타리 시리즈에는 수도 없이 많은 말장난이 등장하지만, 단순히 ‘말장난이 자주 등장한다’는 새삼스러운 말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대신, 말장난이 이야기의 기승전결에 결정적인 포인트로 작용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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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죠가하라는 사이비종교에 빠진 모친에게 시달리던 중, 게의 신에게 ‘오모이’(무겁다)를 빼앗겼다고 합니다. ‘무거움’을 빼앗겼으니,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진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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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게의 신이 빼앗아 간 것은 ‘무거움’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엄마에 대한 기억과 추억, 즉 마음(‘오모이’)을 빼앗아 갔던 것입니다. 엄마를 애써 외면하려는 심리기제를 직시하는 순간, 센죠가하라는 다시 예전의 몸무게를 되찾습니다.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말장난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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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네카와는 길을 걷다 호랑이(토라)를 만납니다. 이 호랑이는 굉장히 성질이 사나워서 하네카와가 머무는 곳마다 불을 질러 버립니다.

사실 그것은 ‘빼앗겼다’(토라레타)는 질투심이 만들어낸 환영입니다. 자신과는 피가 이어지지 않은 부모를 향한 질투이기도 하고, 아라라기를 빼앗아간 센죠가하라에 대한 질투이기도 합니다. 이를 인식하는 게 사건을 해결하는 첫 걸음이 되지요.

이야기는 언어로서 존재합니다. 언어야말로 이야기의 알파와 오메가인 셈이죠.

니시오 이신은 말장난을 통해 ‘이건 물리적인 현실이 아니라 언어로 구성되는 픽션일 뿐’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싶은 것처럼 보입니다. 



2) 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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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가타리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포스트모던한 에피소드를 고르자면, 단연 『미끼이야기』와 『사랑이야기』입니다. 위 두 에피소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날조’되어 있습니다. ‘믿을 수 없는 화자’를 활용한 서술트릭입니다.

『미끼이야기』는 나데코가 ‘쿠치나와’라는 뱀신의 부탁 겸 협박으로 봉인된 신체(神體)를 찾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사실 ‘쿠치나와’라는 뱀신은 나데코 앞에 나타난 적이 없었으며, 신의 힘을 원한 나데코가 자신의 행적을 합리화하기 위한 망상에 불과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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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힘을 얻은 나데코는 얀데레로 각성하여 짝사랑 상대인 아라라기와 연적 센죠가하라를 살해하려고 합니다. (어찌어찌 졸업식까지 미뤄지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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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사기꾼 카이키 데이슈가 이 사태를 수습하는 내용이 『사랑이야기』입니다. 작중 화자인 카이키는 대놓고 믿을 수 없는 화자입니다.

이 일에서 너희들이 얻어야할 교훈은, 책에 적혀 있는 문장 따윈 전부 사기라는 점이다.
- 『사랑이야기』 10p

바로 첫문단에 등장하는 문장입니다. 거짓말쟁이 카이키 데이슈가 화자라는 것만으로 ‘날조’가 시작된 것이기는 합니다만, 제목이 괜히 『사랑이야기』인 것은 아니죠. 여기선 두가지 사랑이 날조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나데코의 사랑입니다. 여기서 나데코의 얀데레(아라라기를 향한 광적인 집착) 역시 날조된 것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폭로됩니다. 진심으로 사랑했다기보단, 닿을 수 없는 절벽의 꽃을 좋아하며 자기만족에 빠졌던 것이죠.

두 번째는 센죠가하라의 사랑입니다. 센죠가하라가 카이키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정말로 그를 이용해 먹으려는 속셈이었을지도 모르지요. 다만, 뉘앙스로 보았을 때 그녀가 카이키를 좋아했다는 게 정설이라고 봅니다. 본인은 죽어도 인정을 안 하지만요.

하나는 사랑을 했다고 날조하며, 다른 하나는 사랑을 하지 않았다고 날조합니다. 그것이 『사랑이야기』에서의 날조입니다.


사실 믿을 수 없는 화자를 활용한 서술트릭은 라노벨에서 은근 자주 쓰이는 기법입니다. 특히 하렘물 같은 데서 주인공의 속마음을 숨기고 메인 히로인을 감출 때 많이 사용하죠.



3) 육체

먼저 오쓰카 에이지의 육체론을 설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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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쓰카 에이지는 데즈카 오사무의 『승리의 날까지』라는 만화를 만화적 리얼리즘의 탄생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전까지, 만화의 인물은 그저 ‘기호’에 불과했습니다. 톰과 제리에 나오는 톰처럼, 몸이 짜부되기도 하고 분쇄기에 갈리기도 하지만 어차피 기호에 불과하므로 다음편에선 아무렇지 않게 평상시 모습대로 돌아오는 거죠.

데즈카 오사무는 만화 속 인물이 피 흘리고 고통받는 장면을 보여주며, 단순한 인물 그림에 현실적인 인간의 신체를 투영합니다. 이는 만화사적으로 큰 전환을 가져왔습니다. 기호의 덩어리일 뿐인 만화도 리얼리즘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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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라기는 데즈카 오사무 이전의 육체를 갖고 있습니다. 인간의 신체가 아닌 언제든지 재생하고 변형될 수 있는 기호로서의 육체를 가진 것입니다.

이는 흡혈귀의 권속이 되어 얻은 특이체질이라는 설명이 붙어있기는 합니다만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건 아라라기가 기호로서의 육체를 가진 덕에, 모노가타리는 지극히 픽션다운 픽션에 머무르게 된다는 점에 있습니다.

사지가 절단되고, 갈비뼈가 나가고, 온몸이 불타도 다시 복구되니, 현실의 육체로는 연출이 불가능한 장면이 가능해지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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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작품으로 『체인소맨』이 있습니다. 주인공 덴지도 재생이 가능한 데즈카 오사무 이전의 육체를 갖고 있습니다. (실제로 『체인소맨』이 『모노가타리』를 오마쥬한 장면이 있다고도 하더군요.)

덴지는 그저 욕망에 몸을 맡기며 몇 번이고 몸을 내던집니다. 어차피 재생이 되는 몸이므로, 육체에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이건 그저 이야기 속의 ‘기호’일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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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가타리』와 『체인소맨』을 볼 때는 그들의 고난을 블랙코미디로 읽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진지하면 지는거죠. 이건 어디까지나 픽션이니까요.


다만, 한가지 주의할 점은 육체는 재생이 되어도 고통은 그대로 받는다는 설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데즈카 오사무 이전의 육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반쪽짜리인거죠.

『모노가타리』에서는 종종 고통에 몸부림치는 주인공의 내면을 보여주지만, 사실 이건 주인공의 매력을 어필하는 멋부림에 가깝습니다.

소년이 소녀를 구하는 과정에서의 통과의례이며, 남들과는 차별화된 자의식을 뽐낼 권리를 부여하는 편리한 설정인 셈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상업논리 속에 포스트모던한 픽션과 근대문학의 내면성이 공존하는 이율배반적인 상태로 포착하고 있습니다. 설명이 필요한 대목인데, 글이 길어졌으니 이쯤에서 끊어야겠군요.

이제 본격적으로, 라노벨이 갖는 필연적 모순을 다음 장에서 논하고 결론으로 들어갈까 합니다.



[시리즈] 라이트노벨을 방패로 때리기
· 라이트노벨을 방패로 때리기 : 『모노가타리』 비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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