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 고선지, 흑치상지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뭘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각각 신라, 고구려, 백제 출신으로 당나라에 가서 높은 벼슬에 오르고 성공했다는 것이다. 머나먼 이국 땅게까지 가서 성공했기에 우리는 이들을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입증한 사례로 자랑스럽게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당나라때 중국에 가서 성공한 선조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기억하고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나라와 비교적 교류가 적었던 일본에도 그런 사람이 있는데 '아베노 나카마로'라는 사람이다. 그는 일본에서 당나라로 유학해서 공부했는데 학문이 뛰어나 당나라 현종의 황자와도 교분이 두터웠고 당나라 문인들과도 폭넓게 교제했다. 한 일화에 의하면 그가 오랜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려고 했을 때 배가 난파되었는데 이 소식을 듣고 당나라의 대시인 이백이 '아베를 곡한다'는 시를 지었다고 한다. 다행히 아베는 살아남아 당나라로 귀환하여 '조형'이라는 이름으로 당 조정에서 '비서감'이라는 고위벼슬에 오르고 장관까지 지냈다. 물론 일본사람들도 이 사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우리나라와 일본만이 아니다. 토번(지금의 티벳)이나 거란, 돌궐, 심지어 중앙아시아나 이란에도 당나라에서 출세한 사람들이 있다. 이쯤 되면 정말 대단한 것은 신라가 아니라 당나라였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다양한 출신지를 가진 인재들이 모두 당나라를 위해 일했으니 말이다.
남의 나라에 가서 성공한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의 신화는 요즘도 사그러들줄 모른다. 미국에서 세계은행 총재로 취임한 김용 총재도 한때 대단한 화제가 되었고, 올랑드 대통령이 임명한 프랑스의 플뢰르 펠르랭(한국명 김종숙) 문화부 장관도 남의 나라에서 성공한 자랑스러운 한민족의 DNA로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이 두 케이스에서 정말 대단한 것이 우리 민족일까? 그 우수한 인재들이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대답은 자명하다. 정말 대단한 것은 사실 그 우수한 인재들을 자기 나라에서 성공하게 만든 미국과 프랑스인 것이다.
이 책은 내내 관용의 현실적인 힘과 개방성의 효과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관용과 개방성을 어떻게 한국사회에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이르면 사실 대답이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남의 나라에 가서 성공한 우리 민족 출신자를 자랑스러워 하는 전통은 가지고 있지만, 남의 나라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성공하는 것을 대견스러워하는 전통은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5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이라는 우리의 전통은 너무 쉽게 우리와 남의 경계를 가르고 타자를 배척하는 힘을 발휘하곤 한다.
하지만 그 순혈주의 속에 계속 젖어 사는 것이 과연 우리의 미래를 위해 좋은 일일까? 거듭 이야기하지만 도덕적인 사해동포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순혈주의의 전통으로 우리가 과연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현실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보통 경쟁력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항상 등장하는 정답이 이른바 '혁신'이라는 것인데 3부의 대영제국 편이나 4부의 네덜란드 편에서 살펴본 것처럼 '혁신'도 관용이나 개방성 없이는 발을 붙이지 못하는 법이다. 낯선 것을 두려워 하지 않고 다양한 사고방식과 문화를 뒤섞어야만 진정한 '혁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덜란드와 영국은 승리했고 스페인은 몰락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안에 이미 들어오고 있는 다문화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가는 단지 도덕적인 문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생존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일 대학의 폴 케네디 교수가 인터뷰 도중 일본의 불관용성이 가진 문제점을 지적한 부분을 소개하면서 이 이야기를 마치고자 한다. 이 인터뷰에서 일본이라는 단어를 한국으로 바꾸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것은 아마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관용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민 정책을 개방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고 있습니다. 만약 많은 컴퓨터 기술자와 상인, 은행가를 일본에 받아들인다고 합시다. 일본 시민권을 주거나 원한다면 일본 여권을 발급해줍니다. 이것이 일본을 위한 현명한 일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아니라며 단일한 일본 민족, 일본 문화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민자를 원하지 않습니다.
영국과 비교해 볼까요? 일본과 영국은 비슷한 크기의 섬나라입니다. 영국에는 일본을 뛰어넘는 제조업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국은 열린 사회입니다. 많은 인도의 인재들이 영국에 있습니다. 영국 병원에서 의사로 일합니다. 또 대부부의 전문 간호사들이 인도나 동아프리카 케냐 출신입니다. 이들은 매우 뛰어난 의료 교육을 거쳐 어려운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영국에서 최고 수준의 의사와 간호사들은 뱅골이나 케냐 출신입니다.
영국은 현명한가요? 당연합니다. 많은 전문 의료진을 갖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은 또 러시아의 금융 전문가들을 영국으로 데려왔습니다. 러시아의 수학자들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현명한 이민 정책이 영국을 가하게 만들 뛰어난 전문가들을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2500년의 역사는 말하고 있다. 강대국을 만든 리더십의 실체는 힘이 아니다. 관용과 개방을 통한 포용이다. "제국은 말 위에서 건설되었지만, 말 위에서 다스릴 수는 없다."는 몽공 제국의 오랜 경구는 묻는다. 당신은 진정한 '강자의 조건'을 가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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