放浪하는 한 젊은 碧眼 女人과의 對話

--씨드니에서



  放浪의 女人

  담배 한 가치 노나 주겠니?


 

  좋아. 이왕이면 내가 피우던 걸 받아 피워라.


  放浪의 女人

  그러자. 그 대신 강 건너갈 차비도 좀 보태 다우. 나는 시방 그 「돈」이라는 게 한 닢도 없다.


 

  그러자. 그런데, 그럼 넌 도대체 무얼 가지고 사니?


  放浪의 女人

  그림이다. 눈에 보이는 것 중에는 그래도 이쁜 것이 있어서 그걸 그리고 산다. 날아가는 새, 피는 꽃, 머흐는 구름덩이, 그런 게 제일 좋아 그리고 산다. (그네의 한 팔에 끼었던 그림책 한 권을 내게 건넨다.)


 

  (크레용으로만 그린 그 유치한 그림책을 주욱 한번 훑어보고 나서)

  야! 이건 모두 코훌쩍이 어린애가 그린 것 아니냐?


  放浪의 女人

  얘! 너는 그럼 뭐니? 난 어린애 때 마음이 본마음이라 그걸로 그린다. 어쩔래?


 

  네가 맞은 것 같다. 으떻냐? 어디 꽃수풀 속으로나 한번 같이 들어가 볼래?


  放浪의 女人

  좋다. 그러자. (그래 둘이는 나란히 걸어가서 어느 수풀 속의 꽃나무 그늘에 선다.)


 

  (한참 동안 침묵한 뒤에)

  얘. 입이나 한번 맞추어 보자.


  放浪의 女人

  (그네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대어드는 내 가슴을 두 주먹으로 떠밀어 내며)

  뭐이 이래? 마음속에 알량한 여드름이나 송알송알 돋아내가지고?

  저만큼 넹큼 비켜서지 못할까!

  나하고 네가 만일 친구가 되려거든

  나이를 좀 더 많이 거꾸로 먹어라.

  그래, 한 아홉살이나 열살쯤이 되거들랑

  그때 보자. 굳바이! 이 여드름쟁이 멍청이야!



- 『서으로 가는 달처럼...』 (1980)




책 이야기: 서정주는 『한국의 현대시』에서 이상의 대표작으로 <소영위제>를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