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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위대한 인물들의 속마음 같은건 이해하지 못하죠.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은 잘 이해합니다.


평범한 사람에 대해 글을 쓸 땐

저 자신에 대해 쓰는 느낌이에요.


위대한 사람을 쓰는 건 제 얘기 같지가 않습니다.

뭔가 어색하죠.


평범한 등장인물을 다룰 땐 그 사람들의 운명을 알고

그들이 느끼는 행복이나 불안 그리고 고통도 압니다.


평범한 사람의 일상이 어떤지도 잘 알고요.

그래서 평범한 등장인물을 다룰 땐 제 얘길 하는 느낌이죠.


그런 글을 쓰는 게 제 포부이자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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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원래 치과의사였는데요

치과 일이 정말 싫었어요


1978년부터 1983년까지 5년간 치과의사로 일했습니다.


치아를 거의 1만개쯤 뽑았을거예요

의사였을 때는 온종일 치아를 뽑았습니다


충치에 충전재를 채우고 의치도 만들어야 했죠

다들 제가 의치를 만들 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실력이 꽤 좋았어요


의치를 감쪽같이 만들었거든요

그리고 지금도 보는 눈은 아주 좋습니다


누군가 이를 드러내고 웃는 것만 보아도

진짜 이와 가짜 이를 한눈에 구별할 수 있어요


겨우 5년 일했지만 아직도 가짜 이를 바로 알아볼 수 있죠

치과의사를 하면서 익힌 기술입니다


전 발치나 충치 치료 의치 제작도 잘했어요


당시 중국에선 모든 직업이 똑같이 박봉이었습니다


치과 의사의 수입은 월 32위안에 보너스도 없었죠

5년간 문제없이 일했습니다


하지만 치과일이 정말 싫었고 결국 치과의사를 그만 두었죠


저는 전부터 문화관에서 일하고 싶었습니다

문화관 사람들은 맨날 길거리를 쏘다니며 놀고 있는 것 같았거든요


너무 부러워서 왜 일을 안하냐고 물었더니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게 자기들 일이라고 하더군요


1980년대 초반 중국에서는

치과의사도 가난했고 작가도 가난했어요


그런데 치과의사는 가난하고 일도 고됐죠

어차피 가난할거라면 자유라도 있는게 낫지 않겠어요?


저도 그런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준비하고 문화관으로 이직할 방법을 고민했죠

그래서 소설을 썼습니다


소설을 발표하면 문화관으로 이직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소설을 써서 발표한 뒤 순조롭게 문화관으로 이직했죠


그렇게 작가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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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작가가 되고 싶었던 진짜 이유들 중 하나는

직장에 출근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문화관에서 일하기 시작했던 때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요


매일 지각했죠


그리고 한 달쯤 뒤부턴 오후에 출근하기 시작했습니다

출근 시간을 점점 늦춰서 오후에만 출근했어요


그렇게 오후에 출근하다가

다시 두세 달쯤 지난 뒤부턴


일주일에 한 번 출근했어요

또 몇 달 뒤에는


월급날에만 출근하기 시작했죠

1980년대에는 월급을 직접 수령해야 했거든요


현금 지급이라 서명을 해야했습니다

지금은 카드로 송금해주니 그럴 필요가 없죠


그렇게 월급날에만 출근했더니

문화관 사람들이 점점 제 존재를 잊어갔어요


그러다 잊지 못할 사건이 생겼죠

당시 문화관에서 직원들에게 자전거를 줬어요


일하러 교외에 나갈 때 필요했죠

그땐 자전거가 아주 중요한 재산이었습니다


그런데 문화관 동료들이 자전거를 받았는데

저만 못받았어요


출근을 거의 안하니까 저를 그만 잊어버린겁니다


그때 어머니가 잔뜩 화를 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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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안 된다고 했죠

자전거를 받으러 가면 제가 일을 안 하는 게 들통나니까요


자전거를 안 줄 정도로 저를 잊어버린 게

잘된 일이라고 말씀드렸죠


매달 월급만 안 까먹고 주면 되니까요

문화관에 들어간 후 저는 간부 신분이 되었어요


1980년대 중국에선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간부를 해고할 수는 없었어요

저는 태평하게 일을 안나갔습니다


제멋대로 살았어요

다들 절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절 혼내고 욕하던 상사도 나중엔 절 받아들였죠


제 무책임한 모습에 익숙해진 겁니다

1980년대는 그랬습니다

지금은 불가능한 일이죠


사회주의가 남겨 준 최고의 추억입니다

출근을 안 하다니 지금은 꿈도 못꾸죠


사흘만 지각해도 바로 잘릴 겁니다


저희는 사회주의 끝자락에서 가장 좋은 시절을 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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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자랐습니다

그땐 책을 읽을 수 없었죠


수많은 문학 작품이 파괴되었습니다

물론 극히 일부 작품들은 비밀스럽게 보존됐어요


다들 낡은 신문지로 책을 싸서 옷 속에 숨겼습니다

이렇게 품고 다니며 서로 몰래 빌려주곤 했죠


보통 책 한 권을 이틀 만에 봐야 했어요


그것도 긴 거죠

가끔은 하루 만에 봐야 했어요


책을 읽으려는 사람이 많아서

하루 만에 읽고 돌려줘야 했어요


그 책들은 보통 앞뒤로 10쪽이 넘게 비었어요

책을 빌려 읽던 사람들의 심보가 고약했습니다


읽다가 낱장이 떨어지면 붙여놔야 하는데 안 그랬거든요

자기는 이미 읽었으니까 그냥 놔둔거예요


그래서 책이 점점 얇야졌죠


그땐 소설을 읽으면 시작과 결말을 알 수 없었어요

제목도 작가도 몰랐죠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끝나는지가 미궁이었죠


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도입부를 모르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결말을 모르는건 정말 괴롭더라구요


밤 늦도록 이야기가 어떻게 끝났을지 생각했죠


등장인물들에게 결국 어떤 일이 생겼는지 계속 궁금해했습니다


<인터내셔널가>의 가사에는 이런 구절이 있죠


"어디에도 구세주는 없노라"

"우리들 스스로 구하자"


잃어버린 페이지를 찾을 방법은 없었습니다

먼저 책을 읽은 사람들이 참 못돼 먹었죠?


책을 읽다가 페이지가 떨어졌는데

뒤에 읽을 사람들은 신경도 안쓴겁니다


그래서 전 결말을 상상하기 시작했어요

한 가지 결말을 상상해 보고


마음에 안들면 또 다른 결말을 떠올렸죠


제가 생각한 결말은 모두 할리우드 스타일이었어요

모두가 해피 엔딩이었죠


순수한 10대 소년 시절이라

등장인물들을 행복하게 그렸습니다


제 소설에는 죽는 사람이 없었어요

나중에야 사람들이 생을 마감하는 내용의 소설을 썼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전 그렇게 어릴적부터

상상력을 키우는 훈련을 한 것 같습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해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어떤 경험을 하든 모두 삶의 양분이 된다는 겁니다


문학 작품을 많이 읽는 것도 도움이 되죠

책을 읽지 못하거나 도입부와 결말을 모르더라도 상상하고 또 상상했죠


이 경험이 일종의 문학 창작 연습이 됐죠

제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덕분에 저는 작가가 된 뒤 쉽게 글을 쓸 수 있었어요

제 유년기에 매우 감사합니다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다들 학교에 다니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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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초등학교 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어릴 땐 선생님을 무서워했거든요


선생님이 입만 열어도 벌벌 떨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니 선생님들이 학생을 무서워하더라고요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 생각나네요

작은 강가를 따라 걷는데 건너편에 중학교가 보였죠


제가 곧 가게 될 학교였는데 정말 충격받았어요

수많은 남학생들이 창틀에 앉아있었거든요


아예 뒤돌아 앉은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칠판 앞에 서 있는 선생님은 보지 않고

자기들끼리 장기를 두고 있었죠


선생님은 교단에서 수업을 진행하는데

다들 떠들기만 하고 아무도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았어요


그곳엔 저와 같은 골목에 살던 한 살 많은 형이 있었어요


제게 가까이 오라고 하더니

자기 신발을 땅에 떨어뜨렸다면서

저더러 좀 주워달라고 하더군요


그 형에게 물었어요

"지금 수업 중 아니야?"

"맞아 수업 중이야"


중학교는 이렇구나!

내가 바라는 즐거운 삶은 중학교부터 시작이구나


지금의 중학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각각 3년씩 다니지만

그땐 각각 2년씩 총 4년 과정이었습니다


전 그 4년 동안 학교에 잘 다니지 못했어요

그래서 제가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아는 한자가 많지 않았습니다


쓸 줄 모르는 한자가 상당히 많았어요

그러다보니 제 글은 간결했습니다


그 후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제가 유명한 작가가 되자


중국 비평가들이 제 간결한 글을 칭찬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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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는 한자가 많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말했죠

아는 한자가 많았다면 간결하게 쓰지 않았겠죠


제 소설이 영어로 출판된 뒤 미국 학자들이 제게 말하더군요


"영어로 번역된 작가님 글이 헤밍웨이의 글과 비슷하네요"


제가 말했죠

"헤밍웨이도 단어를 많이 몰랐나 봐요?"


여기서 마오쩌둥 주석이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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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계속 바뀝니다


제가 어렸을 땐 읽을 책이 없었고

그나마 가끔 읽는 책에는 결말이 나와 있지 않아서

직접 결말을 상상하다가 글을 쓰는 능력을 키웠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창작을 연습한 겁니다


아는 한자가 별로 없어서 글을 간결하게 쓸 수밖에 없었고

그게 저의 문체가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