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감상문은 유난히 분량이 많다. 교수놈이 A4 2페이지는 써라해서 그렇다. 어차피 크게 중요한 과목도 아니고 지금은 학점이 필요없기 때문에 적당히 대충 썼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저서인 <음악의 시학>은 그가 하버드 대학교에서 강연한 내용을 엮어낸 책이다. 총 6장과 에필로그로 구성된 책은 그가 평소에 가진 음악에 대한 가치관, 현대 음악들에 대한 견해로 구성되어 있다. 양이 많은 책은 아니나 하버드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어서 그런지 기초 지식에 대한 설명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그에 따른 이해의 어려움이 약간 있었다.


 책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1장에서 그는 자신이 강의의 제목에 시학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 강의에 대한 전체적인 개요, 그리고 자신의 가치관을 요약해서 설명한다. 2장에서는 음악의 현상, 다시 말해 음악이라는 예술이 가지는 다른 예술과 구별되는 특성, 그리고 이러한 특성이 음악에 부여하는 성질에 대해 설명한다. 3장에서는 음악의 구성에 대해 다룬다. 그리고 이러한 구성을 작곡가가 음악을 만들 때 유의해야 할, 그리고 지켜야 할 그러한 규칙들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4장에서는 음악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스타일에 대해 설명하며 음악의 전기에 대해 말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을 설명하며 그는 당시의 음악 세계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얘기하며 견해를 드러낸다. 5장은 특이하게 러시아 음악에 대해서 다루는데 러시아라는 혼돈에 빠진 나라가 여러 사건들을 겪으면서 그 음악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설명한다. 6장에서는 연주와 해석에 대해 얘기하며 연주자와 해석자의 차이,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이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작곡가가 남긴 유산을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앞의 내용들을 간략히 요약하고 음악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강의를 끝마친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그의 음악을 제대로 감상해보지 않아 그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이전에 [봄의 제전]을 잠깐 들어본 경험에 따라 ‘상당히 난해하고 복잡한 음악가‘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멜로디나 리듬이 잘 파악되지 않고 곡의 구성도 어딘가 기묘하여 뭔가 자신만의 기법을 이용하여 독창적인 그런 작곡가처럼 다가왔다. 기존의 질서를 부수고 현학적인 예술을 하는 사람 말이다.


 그러나 막상 그의 저서를 읽어보면 스트라빈스키에 대한 이런 생각은 잘못되었음을 알게 된다. 책 전체에서 그가 가장 강조하고 있는 주제는 전통이다. 그의 입장에 따르면 음악은 규율에 따라 탄생하는 예술이다. 정해진 틀 안에서 작곡가는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여 작곡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무조건적으로 전통을 고집해야한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특정 형식과 규칙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틀을 잡아 한계를 그어두고 그 속에서 시대에 맞게 변화를 주는 것이 그가 주장하는 바이다. 다시 말해 구조를 지속시키기 위해 이를 상황에 맞게 바꾸며 창작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견해이다.


 그렇기에 그는 기존의 틀을 아예 부수는 작곡가들이 잘못되었다고 말을 한다. 그들이 하는 것은 순간적인 임팩트를 주기 위한 과장된 표현일 뿐 새로운 음악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러한 방식은 생명력 없는 움직임일 뿐이라 말한다. 오히려 그러한 참신함은 서양 음악을 파괴하는 행동이라고 그러한 음악가들을 비판하면서 말이다.


 “내 경우를 보자면, 작업에 들어가면서 무한한 가능성들을 마주할 때 일종의 공포감을 느낍니다. 그럴 때면 나에게 뭐든지 허용된 것 같은 느낌이 들죠. 모든 것이 나에게 허용된다면, 최선도 최악도 그러하다면, 어떤 것도 나에게 저항하지 않는다면, 노력이라는 것 자체를 생각할 수가 없을 테고 나는 그 무엇에도 기반을 둘 수 없으니 그때부터 모든 시도는 무위로 돌아갈 겁니다.” 스트라빈스키는 이러한 말을 통해 최소한의 규칙에 얽매인, 큰 구조 안에 가두어진 세계에서만 제대로 된 작곡이 가능하다고 말을 한다. 지나친 자유는 그저 혼돈을 가져올 뿐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유롭지 못한 작곡은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음악가는 떠오르는 영감을 붙잡고 이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작곡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스트라빈스키의 생각에 상당히 공감한다.


 어떠한 예술이든 무언가를 표현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그리고 그러한 목적을 수행하려고 한다면 최소한의 지켜져야 할 규칙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소설을 보자면 스토리, 등장인물 등 작가가 쓰고 싶은 내용은 자유자재로 써도 상관없으나 최소한의 규칙은 지켜져야 한다. 예를 들어, 시작하자마자 첫 페이지에서 주인공을 없어버리고 소설을 끝내서는 안 된다. 주인공이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소설이 기능을 하는가 말이다. 마치 음악에서 멜로디를 거세해버리고 리듬만 남겨두는 것과 같다.


 내가 주로 듣는 음악은 헤비메탈 부류의 음악이다. 이러한 음악들을 들어보면 대체로 리프라는 짧은 단위로 이루어져 있고 이러한 리프들을 연결하고 바꾸며 곡을 만든다. ‘리프를 연결하며 곡을 만든다.‘라는 규칙을 두고 곡을 만든다면 그 속에서의 변화는 큰 상관없는 것이다. 리프를 더 무겁게 만들던, 빠르게 만들던, 꼬아서 혼돈스러운 느낌을 주던, 다른 악기를 넣어서 여러 리프를 동시에 연주하던 위의 규칙을 지키기만 하면 창작자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때론 이러한 규칙을 무시하고 곡을 만드는 밴드들이 존재한다. 아예 리프가 실종되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뚝뚝 끊기게 만들어 리프의 존재 이유가 사라지는 곡들도 존재하고 더 나아가 박자를 미친 듯이 쪼개고 온갖 음표를 잔뜩 우겨넣어 혼돈 그 자체인 무언가를 만드는 밴드도 존재한다. 과연 이러한 밴드들의 방식이 옳은 것인가? 이러한 곡들은 스트라빈스키가 말한 순간적인 임팩트를 주기 위한 파괴 행위에 불과한 행동일 뿐이다. 특정 예술을 다루는 구조가 있다면 그 속에서 변화를 추구해야한다.


 사람들은 흔히 자유가 있을 때 진정한 예술이 나온다고 믿는다. 예술가의 상상을 제한해서는 안 되고 최대한 자유롭게 두어야 한다고 말이다. 현대 미술과 같은 부류도 그러한 맥락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림을 찢고 무언가를 부수고 의미 없어 보이는 걸 전시해두거나 거대한 도화지에 점 하나 찍어두고 각종 해석을 곁들이는 그러한 행위 말이다. 대체 이러한 종류의 것들을 예술이라 불러야할까? 제대로 된 형태 없이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거기에 각종 의미부여를 해야 예술인 것일까?


 흔히 지나친 자유는 방종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예술의 자유도 그렇게 생각해야한다고 본다. “혁신은 전통과 함께 갈 때에만 생산적일 수 있다.”라는 스트라빈스키의 말처럼 전통의 존중 없이 마구 뻗어나가는 예술은 예술이 아닌 인간의 의미 없는 몸짓인 것이다. 진정한 아름다운 예술은 규칙과 함께일 때 가장 크게 나타난다. 과거의 틀을 버려야 가능한 창조성은 너무나도 연약하여 미래에 도달하지 못하고 땅에 떨어질 뿐이다. 정해진 구조 안에서 최대한 자신의 역량을 펼쳐내는 행동이야 말로 예술가가 가져야 할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