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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경향이지만, 대체로 중남미 문학들은 불안한 정치 현실과 치안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다소 돌려서 표현하곤 한다. 소비에트 치하의 환상문학(판타지 혹은 SF)이 그 우회적인 표현으로 기묘한 색채를 풍기듯, 중남미 문학의 이 특이한 표현 방식은 <백년의 고독>, <뻬드로 빠라모>, <세계 종말 전쟁> 등의 다양한 글에서 빛을 발하고 중남미권역 밖에서도 영향을 주고 있다. <우리가> 역시 그 영향이 물씬 묻어나는데, 그 영향은 사실 이 중남미 마술적 리얼리즘 전통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오히려 간접적으로, 세계에 닿은 영향력에게 자신 역시 영향을 받은 듯한 간접적인 방식으로 드러난다. 좀 더 보편적인 장르문학으로서.
<우리가>에서 인물들은 대체로 이중적인 고통을 느낀다.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등의 남미 국가들에서 끔찍한 치안과 정부의 간섭, 마약으로 찌든 삶으로 인해 몰리며 염증을 느끼다가도, 그 현실적인 고통이 어느 순간 비현실적이고 기괴한 주술 혹은 미신과 뒤얽혀 있다. 시작은 단순히 자신이 느낀 현실적인 고통을 어떻게든 극복해보려는 시도였을 뿐이었다가도, 그 끝에서 이 모든 일상성을 유지하려는 시도를 뒤집어버리는 조우를 하곤 한다. <이웃집 마당>의 아이가 그 예시로, 주인공은 그 아이를 도와줌으로서 자신이 일상적인 무의미에 찌들리느라 돕지 못했던 다른 아이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있으리라 믿으며 이웃집에 잠입하지만, 그곳에서 그녀가 만나는 것은 결코 그녀가 생각한 학대당하는 아이의 모습이 아니다.
물론 언제나 <우리가>에서 사회적인 측면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경향이 강한 것은 사실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흡사 범죄 소설을 보는 것처럼 사건을 따라가다가도, 어떤 초현실적인 공포와 조우하며 이 사건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실타래로 엉켜버리곤 한다. <검은 물속>에서 끔찍하게 썩어가는 강과 그 강 주위에 사는 빈민들이 경찰에게 살해당하는 일은 결코 해소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이 단점으로 보일 때도 종종 존재하기는 한다. 갈등이 전혀 해소되지 않은 채 그대로 방치되며 끝나는 듯한 구성이 공포스럽지 않을 때면, 이 결말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실에는 물론 해답이 없지만, 글에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과 별개로 페미니즘적인 색채가 묻어나는 글들이 종종 있는 것도 사실이다. 표제작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이 가장 그런 느낌이 강했는데, 글 자체에서 밝히듯 아르헨티나나 다른 중남미 지역에서 인도나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볼 법한 분신 사건들이 생기는 것은 괴상하며, (검색해보니 아프가니스탄에서 실제로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을 아름다움을 강요하는 제도적 폭력에 대한 은유로 보더라도 <우리가>에서 느껴지던 사회와의 밀접한 연관성이 이곳에서 빈약해지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굳이 따지자면, 저자가 말했듯 밸러드나 클라이브 바커와의 연결고리보다는 크로넨버그의 영화가 생각난다. 일상이 되고자 하는 기괴의 시도가 어떻게 현실을 전복하고자 하느냐, 라는 점에 있어서.
어쨌든, <우리가>는 상당히 흥미로운 소설집이다.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생각해보며 읽고 있으면, 사실 우리는 기분 나쁜 것을 실제로 두려워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통속적으로 비유해보자면 오랫동안 방치하던 집안을 청소하다가 별 생각 없이 열었던 종이 상자에서 완전히 썩어 곰팡이가 문드러지듯 피어 있는 형체를 발견했을 때의 공포와 비슷하지 않을까. <학기말>에서 다루는 공포는 초현실적인 유령의 존재보다도, 그 유령에 반응하는 인물이 어떻게 자해를 하느냐에 달려 있다. 호러와 귀신은 공포스러운 것 이상으로 기분 나쁘고 역겨운 것이었다.
이거 재밌게 읽어씀
https://youtu.be/Wmh1jMJPSmo
여기서
따온 거구나